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韓國病(한국병)으로 일컬어지는 말들이다. 물론 좋은 점을 나타내는 수식어도 있지만, 대부분이 약점 혹은 부정적인 행동이나 근성, 습관 등을 빗대는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수식어 중 단연 손꼽히는 것은 바로 3개월 냄비근성이다. 우리나라 절기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니, 정확히 옷을 갈아입는 계절에 따라 한국인의 기억은 그렇게 갈아입는다는 뜻일 거다. 하기야 좋은 면도 있다. 쓸데없는 고민이나 걱정들을 달고 사는 것보다 3개월에 한번 씩은 철 지난 옷을 갈아입듯이 훌훌 털어버리는 것도 굳이 나쁠 것은 없다. 다만 털어서는 안되는 것도, 털지 말아야 할 것도 훌훌 모조리 털어버리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두 살배기 정인이가 하늘나라로 간지 어느덧 수개월이 지났다. 신년기자회견이라는 것을 전해 듣고는, 하도 기가 막혀 쓴 글로 정인이가 살아생전 당했을 혹독한 고통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전하려 했지만, 일상에 쫓겨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수목장 근처도 못 가본 것이 늘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명절을 며칠 앞둔 시점에 마침 양평에 계시는 선배
“세월호 사고시 기무부대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때의 일을 사찰로 단죄하니 정말 안타깝다...” 그들 조직의 수장(首長)을 지냈던 한 장수(將帥)가 남긴 유언(遺言)의 일부다. 그리고 2년여가 흘러가고 있다. 『특히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기무사의 유가족 불법 사찰’ 의혹이 무혐의로 종결되자 법조계에서는 “억울한 죽음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전 사령관은 세월호 유가족 고소로 2018년 12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성훈)의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충성’(忠誠) ‘명예’(名譽)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그들의 영원한 지표(指標)였다. 충성... 조국, 즉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자유 대한민국에 대한 절대적인 열정이었다. 다른 설명이 허락되지 않는다. 명예... 불의를 용납하지도, 그것과 타협하지도 않겠다는 강고한 신념이었다. 썩은 고기를 탐하지 않는 맹수의 기개가 넘쳤다. 이 나라의 건국(建國) 즈음부터, 이어서 전란(戰亂)에 휩싸였던 시절에, 조국 중흥(中興)의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격변의 소용돌이에서도 오직 한 길을 걸어왔었다. 조국(祖國)의 파란만장한 역
생후 7 개월 무렵 입양된 정인이, 271일 만에 세상 떠나 지난 10월 13일, 생후 16개월 아이가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차디찬 응급실에서 숨을 거두는 참담한 사건이 발생했다. 위독한 환자를 수없이 경험한 의료진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아이의 상태가 제 또래에 비해 눈에 띄게 왜소한 몸집에다 온몸이 멍투성이였고, 파열된 장기에서 발생한 출혈로 인해 복부 전체가 피로 가득 차 그야말로 처참한 상태였다고 한다. 급기야 아이는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숨진 아이의 이름은 정인,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정인이는 입양 271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의료진은 아이의 몸에 드러난 손상 흔적들이 단순 사고가 아닌 아동학대라고 판단, 현장에 있던 양모 장하영을 경찰에 신고했다. 장씨는 정인이를 숨지게 한 혐의로 현재 살인죄가 적용되어 구속 기소된 상태다. 국과수 부검 감정서에 따르면, 정인이의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 및 강한 외력에 인해 췌장이 절단된 상태라 밝혔다. 이에 일명 ‘정인이 사건’은 전국이 떠들썩할 만큼 세상에 알려져 그에 따른 국민의 공분은 전국 아동인권 단체, 특히 전국 “맘 카페” 회원들의 노력과 열정에 급기야 국회는 지난 8일
스페인 독감과 서울 동부 구치소 새해 들어서도 우한 코로나 사태는 거칠 줄 모르고 질주하는 모양새다. 그것도 수용시설에서의 확진자 속출 사태는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못살겠다, 열고보자’ 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벌금 따위가 두렵겠냐며 자영업자들이 본격적인 대정부 저항 운동에 나서는 형국은, 온 나라가 극심한 혼돈상황임을 증명하고 있다. 거기에 교정당국과 법무부, 질본의 대응방식은 기본적인 인권의식, 방역의식이 있는지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질병관리청은 갇혀있는 수용시설이니 사회 밖으로만 나오지 않는다면 뭐가 대수냐 라는 안일한 생각들을 가졌을 성 싶다. 사회 속의 집과 사회 밖의 교정시설을 왔다 갔다 하는 교도관들의 존재는 온데간데 없고, 구치소의 특성상 재판 대기자들이 수시로 사회와 수용시설을 넘나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은 비상상황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식의 인재(人災)를 양산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참전 병사들이,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악성 바이러스를 품은 채 고국으로 돌아가 사상 유래가 없는 대 참극을 빚은 일명 ‘스페인 독감’은, 당시 2년
산란계(散亂鷄), 오골계, 투계 등 보통 닭들은 우리 인간 건강에 많은 이로움을 준다. 그렇다면 ... 박범계는 과연 어떤 계일까? 추미애 후임이라는데... 박범계를 비롯한 몇몇 민주당 인사들은 흡사 "내가 곧 짐이다" 따위의 망상에 사로잡힌 듯보인다. 박범계 측근들이 지난 지방선거 당시 불법 선거자금의 권리금 1억원을 시의원 후보에게 요구하여 2명이 구속되고 처벌 받았던 사건이 있었다. 시의원 후보에게 1억, 구의원 후보에게 5천만원을 요구한 것이다. 당시 대전시당위원장이였던 박범계는 후에 비록 컷오프는 당했을망정, 선거 직후 당대표 선거에 나가 돌풍을 일으키고 싶어했다. 그런 가운데 이런 거액의 뒷돈을 요구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정가에서 이런 류의 사건은 위에서 시키지 않고서는 일어나기 쉽지 않다. 최측근과 전 비서관이 금전을 요구하는 사건이 과연 윗선인 박범계의 오더 없이 진행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결국 직접 돈을 요구한 2명만 구속되었고 박범계는 무혐의로 잘 빠져 나왔다. 당시 시의원 후보였던 김소연은 민주당에서 제명됐다. 그리고 박범계는 어이없게도 그 후보를 상대로 1억원 민사소송을 걸었다. 이유는 신용과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것이다. 박범계가 제
<아바타>와 <늑대와 춤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Avatar>(2009)라는 영화가 있다. SF영화 즉 공상과학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사실 미국의 남북전쟁과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케빈 코스트너 감독·주연의 <늑대와 춤을 Dances with Wolves>(1990)이라는 영화의 SF버전이나 다름없다. 두 이야기는 모두 평화로운 미개인과 호전적이고 탐욕스러운 문명인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다루고 있다. 탐욕스러운 문명인이 침략하기 전까지 그들 착한 미개인들은 어떠한 다툼이나 갈등도 없이 평화롭게 잘 살고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결말에는 차이가 있다. <늑대와 춤을>에선 그 착한 인디언들이 백인 침략자들에게 패배하는 것으로 끝나고, <아바타>에선 판도라 행성의 착한 미개종족들이 문명인 침략자들을 물리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 의미론적 차원에선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미개인은 선(善)이고 문명인은 악(惡)이라는 설정이다. 두 영화 모두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을 뿐 아니라 아카데미상도 휩쓸었다. 영화를 잘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긴 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런 설정에
호모 사피엔스 이번에는 인간을 침팬지와의 비교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자체로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인간의 생물학적 학명(學名)이다. 학명은 라틴어 또는 라틴어화한 낱말로 속명(屬名)과 종명(種名)을 순서대로 이어 쓰는 방식으로 표기한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도 라틴어로서, 속명 호모(Homo)는 인간, 종명 사피엔스(sapiens)는 지혜를 뜻한다. 그런데 학명은 정식으로는 속명 종명 다음에 명명자(命名者)의 이름을 붙이는 삼명법(三名法)이 원칙이다. 알파벳 표기법도 정해져 있다. 속명과 종명의 표기는 기울어진 서체를 사용하며 속명 첫 글자는 대문자로 나머지는 소문자로 한다. 그리고 명명자(命名者)의 이름은 첫 글자는 대문자로 하고 나머지는 소문자로 쓰되 기울지 않은 정자체로 쓴다. 이 원칙에 따른 인간 학명의 정식 표기는 Homo sapiens Linnæus이다. Linnæus는 명명자인 린네(Linné)의 이름을 라틴어 방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æ는 a와 e의 합성자로 라틴어식 표기에 사용된다.)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가
역시 대한민국 주류 기자들은 좌파? 진보? 아님 대깨문? 며칠 전 유승준 영상의 댓글을 보고 "역시"란 말이 나왔다. 현 정권을 지지하는 자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가재는 게 편"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유승준이 억울함, 아쉬움, 분노, 좌절, 감사, 죄송 등 다양한 감정으로 자신을 표현한 동영상을 보고 언론사 기자란 자들이, 오랜 세월 외면당한 그의 삶이나 심정이 아닌 그의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할 만한) 코멘트와 유튜브로 벌이들이는 돈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유튜브 영상 중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있다. "이런 말들은 내가 아닌 야당 정치인들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현재 야당 정치인들 중에는 이렇게 뼈 때리는 말을 하는 이는 없다. 문화예술을 하는 나로서도 연예인들의 비리는 수도 없이 봐왔고 입 다물고 있었다. 뉴스 보도가 나오기 전 사건도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가슴도 많이 아팠다. 하지만, 여권 지지자들의 글들을 보면 "돈 벌었네", "뻔한거다", "동정표 얻으려고 애쓴다", "수작이 보인다" 등의 글들이 많다. 보는 관점이 어찌 이리도 똑같은지... 한심스럽다. 21세기의 자유대한민국이 조선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권력에 빌붙어
공산당 선언이라는 악사(惡思)의 탄생 세계를 풍미했던, 아니 지금도 풍미(風味)하고 있는 공산주의의 핵심 내용은 칼 맑스가 170여년전인 1848년 발표한 ‘공산당 선언’에 모두 담겨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로 시작하는 공산당 선언은,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고, “프롤레타리아가 잃은 것이라곤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라는 글귀로 끝을 맺는다. 노동이라는 단어로 시작해서 노동으로 끝을 내는 공산주의는 어떤 종류의 맛이길래, 여기에 빠진 현존하는 공산지도자급 모두가 제 국민의 목숨을 파리 목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취급하는 걸까. 또 어떤 중독성이 있길래 한번 쥔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 누리는데 환장을 하는 것일까. 작금의 러시아 푸틴, 중공의 시진핑, 북한 김정은 처럼 말이다. 며칠 전, 러시아 야권 지도자였던 알렉세이 나발니가 러시아 정보국(FSB) 고위간부로 위장하여 실제 자신을 독살하려 했던 FSB 독극물팀 요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관련 사항을 문의했고, 이는 모든 것이 녹음, 녹화되어 유튜브 등으로 중계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러시아 당국과
"적폐청산"을 외치던 자들이 권력을 잡더니 그들 스스로 심각한 적폐 중의 적폐가 돼 가고 있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저 위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여의도 정치권은 국민들 위하라고 뽑아 줬더니 여·야 할 것 없이 국민들 머리를 짓밟고 올라서서 말만 하고 행동은 없다. 어쩌다 하는 짓거리(행동)마저도 본인들이 하던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특히 대통령이라는 사람부터 언행일치가 안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오는 23일부터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내려졌다. 최근 1주일 이상 1천명 가까운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가운데 왜 하필 23일 이후일까? 그 이유 중 하나가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의 개인전 때문이라는 추측이 만연하다. 또한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문씨가 받아 간 '코로나19 피해 긴급 예술 지원금' 1,400만원이다. 문씨 본인이 납품한 학교 수를 밝히지 않아서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전국 초중고 학교에 "코당 교육 프로그램 융합 교재"를 납품하여 많은 돈을 번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이 '코로나19 피해 긴급 예술 지원'을 신청해 서울시로부터 1,40
이 · 강 · 호 인간과 침팬지는 유사한 게 많다. 그러나 그 모든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드러지게 다른 인간 특유의 행동양식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교환이다. 대개의 모든 동물이 다 그렇듯 침팬지 세계도 속된 표현으로 힘센 놈이 임자다. 욕망의 충족은 그것이 먹이든 성적 기회든 힘의 서열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인간은 교환을 한다. 인간 세계에도 힘의 서열은 있지만 인간은 욕망의 충족을 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인간은 주고받는 교환행위를 통해 충돌을 회피하며 욕망충족의 기회를 확보하는 법을 안다. 독일의 인류학자 페터 푹스(Peter Fuchs)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에겐 비즈니스 유전자가 있다. 태초에 교환이 있었다 아니 달리 표현하면 교환이 바로 인간의 태초다. 인간은 어떤 계기로 교환이라는 행동양식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로써 다른 모든 유인원과 구별되는 유니크한 존재가 되었다. 교환을 위해선 상호성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창세기 에덴에서 선악과로 눈이 열린 것은 그 비유일 수 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물은 욕망의 존재다. 욕망은 생명력의 본성이며 존재의 권리다. 그것은 그 자체로는 결코 선악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욕망의 추구는 당연히 충돌
이 · 강 · 호 이제 창세기 이야기와는 다른 각도에서 인간을 살펴보자. ‘신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과 가장 유사하다는 ‘침팬지와 인간’이라는 창을 통해서다. 침팬지와 인간, 두 영장류의 DNA는 98%까지 동일하다. 이 2%의 차이가 인간의 그 무엇일까? 그렇긴 하지만 수치상으론 좀 작아 보인다. 사실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지나치게 유사하다. 인간만의 특질로 보았던 많은 요소들이 침팬지 등 대형 유인원뿐만 아니라 그보다 덜 진화한 원숭이에서도 발견된다. “털 없는 원숭이”라니 영국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Desmond Morris, 1928~)는 인간을 아예 “털 없는 원숭이”라고 했다. 영국 포유류 박물관 관장을 지내던 1967년, 그 같은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자극적 제목만큼이나 관심을 끌면서 세계적으로도 히트를 쳤다. 하지만 당시 반발도 좀 세게 일었다. 인간을 그저 ‘짐승’인 양 다루냐는 것일 터였다.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독특성이 “털이 있고 없고“에 있다 하면 좀 짓궂기는 하다. 인간이 스스로를 지나치게 특별하게 여기는 데 대해선 경계가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차이를 아는 게 곧바로 오만은 아니다. 유사해 보이는 존재와의 차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