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미색으로 이름을 날린 여인이 여럿이 있다. 그 중에서도 황진이와 어우동은 어떤 면에서 너무나 대비가 된다. 그리고 이 두 여인에게는 남자가 있었는데, 황진이에게는 화담(花潭) 서경덕이고, 어우동에게는 방산수(方山守) 이난이다. 황진이는 지족선사를 파계시켰지만 화담은 평생 스승으로 존경하였다. 어우동은 태강수 이동과 혼인하였으나, 방산수 이난 등과 난잡한 관계를 가졌다. 조선 여인 중에서 이 두 여인은 크게 대비가 되지만, 이들이 상대한 남자 화담과 방산수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잘 살펴보면, 황진이는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가련한 여인에, 또 서경덕은 절조를 지킨 선비에 비유될 수 있다. 그리고 어우동은 꽃뱀에, 또 이난은 제비족에 비유될 수 있다. 지금의 시대에 이런 미색의 두 여인, 황진이 및 어우동 같은 이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화담이 될 것인지 방산수가 될 것인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 이 두 여인에 비유될 수 있는 기개와 절조 및 명예와 부귀 앞에 화담이 될 것인지 방산수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작금의 주변을 살펴보면 어려운 길을 가야하는 화담이 되기보다는 쉬운 길을 가게 되는 방산수가 되고자 하는
속설(俗說) 중에...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추측컨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欲望)과 깊게 연관이 있을 듯하다. 그 하나는 몸을 파는 것이란다. 매춘(賣春), 즉 창녀(娼女)를 일컫는다. 널리 알려져 있으니 그건 그렇다 치자. 다른 하나도 일종의 파는 일이다. 남의 비밀을 몰래 살펴 모아서 필요로 하는 작자에게 제공한다. 스파이, 첩자, 정보원 등등으로 불린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 개인들 사이에서는 크게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 반면에, 국가적인 차원이라면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는 직업 중의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그래서 그런지... 국가의 각급 정보기관과 정보요원에게는 직위의 상하를 불문하고 엄격한 최종의 ‘직업윤리’(職業倫理)가 있다고들 한다. 오가다 얻어들은 풍월이다. 인간에겐 매우 크고 중요한 욕망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이런저런 것들을 널리 알려서 남들에게 주목을 받거나,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경우도 왕왕 있단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나라의 정보요원들은 그 욕망을 억눌러야 한다. 아니, 아예 그 욕망을 없애야 한다질 않던가. 심하게는 무덤 입구에
중국 고사에 보면 “바른 군(君)이 있는데 위태로운 나라는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바른 군(君)이었다 하더라도 '바른 신(臣)'이 나오고 '나쁜 신'도 나오는 법이다. 공자는 여러 나라에서 바른 군과 신의 도리를 설파하면서 나라에 해로운 여섯가지의 신과 반대로 나라에 이로운 여섯 가지 신의 유형을 “육사신(六邪臣)”과 “육정신(六正臣)”으로 나누었다. 육사신의 경우, 역할은 제대로 못하면서 자리만 꿰차고 있는 구신(具臣)이 있고, 아첨만 하는 유신(諛臣)이 있고, 남을 잘 헐뜯고 참소를 일삼는 참신(讒臣)이 있고, 반역을 허거나 불충스러운 적신(賊臣)이 있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망신(亡臣)이 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모술수와 간언을 서슴치 않는 간신(奸臣)이 있다. 이와 반대되는 육정신의 경우, 인격이 고매한 성신(聖臣)이 있고, 마음 씀씀이가 어진 양신(良臣)이 있고, 충성심으로 가득 찬 충신(忠臣)이 있고, 매사에 지혜로이 보좌하는 지신(智臣)이 있고, 지조가 곧고 바른 정신(貞臣)이 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품이 강직한 직신(直臣)이 있다. 예전의 역사에서도 군 그 자신의 무능과 부덕으로 백성의 삶을 도탄에 빠지게 하
옛날 한양 근처 마을에 남정네들의 수명(壽命)이 유난히 짧은 ‘큰 집안’(大家)이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는 3대(代)의 청상과부가 수절(守節)하며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여름날 아침, 가장 나이 어린 과부가 대문 밖 앞마당을 쓸러 나갔다. 대문을 열어젖히고 보니, 대문짝 바깥쪽에 남자의 물건이 엄지손가락만 하게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걸레를 가져다가 쓱쓱 지워버렸다. 그리고는 혼잣말로 “대(代)를 이어 수절한다고 임금님께서 홍살문까지 내리신 집에 망측하게 시리 누가 몹쓸 짓을 했노”라며 혀를 찼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도... 대문 바깥쪽에는 그림이 있었다. 어제보다 족히 두 배는 될 만했다. 누가 볼세라 걸레로 황급히 문지르면서 “다시 이러면 관가에 일러바칠 테다!”라고 큰소리로 허공에 외쳤다. 그런데 웬 걸... 그 다음 날에도 대문에는 흉측한 그림이 여전히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전날보다 서너 배 크기로... 화가 잔뜩 난 과부, 걸레를 가져다가 씩씩거리며 그림을 지우기 시작했다. 마침 이 광경을 저만치서 지켜보던 스님이 점잖게 한마디 했단다. “마님, 그 물건이라는 게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커지는 겁니다.” 과연, 옛날에 이런
우리의 교육기관에서는 모두가 창조의 재능을 키울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지만, 합리적 이성에 따른 선택에 대한 것은 그다지 가르치지 않고 있다. 창조의 바탕이 되는 것은 재능으로, 모두가 그것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천재적 재능은 타고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경험과 노력을 통해서 계발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기관에서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갖추어야 할 아주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인 선택에 대해서는 그다지 가르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간혹 선거에서 전체 사회를 고려한 합리적 이성에 따른 선택보다, 지역사회만을 고려한 감성적 선동에 매몰된 선택이 나타난다. 아주 극소수만의 사람만이 가지는 창조는 천재적 재능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반면에 대다수의 사람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가지게 되는 선택은 합리적 이성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사회는 아주 극소수의 천재적 재능을 가진 사람의 창조에 의해 많이 변할 수도 있지만, 보편적으로는 합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의 선택에 의해 더 많이 변한다. 또한 합리적 이성에 따른 선택의 결과는 사회 구성원 거의 모두가 아닌 극히 일부의 사람만에 의해 어떠한 일이 결정될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것이 합리적 이성으로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과 전쟁 중이던 1944년에 미국 국무성의 위촉으로, 미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인의 행동과 가치관을 알고자 2년간에 걸쳐 그들의 문화를 연구하고 분석하였다. 그는 승전국의 한 학자가 가질 법한 우월의식을 스스로 견제하고 일본에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지만, 일본인에 대한 뿌리 깊은 서구적 편견과 선입관을 극복하고 연구의 결과로 “국화와 칼”을 발간하였다. 이 “국화와 칼”은 일본인의 독특한 행동과 가치관을 그들의 입장에서 올바로 이해했다는 평가와 찬사를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그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국화와 칼”에는 일본인 문화의 핵심적인 요소들인 위계질서 의식, 은혜와 보은, 의리 등이 명확하게 분석되어 있다. 초반부에는 서구인의 눈에 양립할 수 없을 듯이 보이는 일본인 특유의 모순적 성격이 잘 설명되어 있다. 특히, 공격적이면서 수동적이고, 호전적이면서 심미적이며, 무례하면서 공손하고, 충성스러우면서 간악하고, 용감하면서 비겁하다 등의 행동 양상이 잘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나타내 보이는 일본인의 민족성을 위계질서 의식, 은혜와 보은, 그리고 의리에 대한 독특한 도덕 체계, 죄의식 결여의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프리즘은 투명한 광학재료로 이루어진 삼각기둥 모양의 광학소자로 여러 빛이 혼합된 백색광을 파장별로 가르거나 하는데 쓴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파장에 따른 분포의 스펙트럼을 갖는다. 파장인 긴 빛, 즉 주파수가 낮은 적색으로부터, 파장이 짧은 빛, 즉 주파수가 높은 자색의 무지개 빛이 가시광으로 분별된다. 물론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보다 파장이 긴 적색 및 보다 파장이 짧은 자색의 빛인 비(非)가시광도 포함하고 있다. 빛은 모두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파장대의 빛은 식물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어떤 파장대의 빛은 의료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떠한 스펙트럼의 빛도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 사회는 여러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으로 백색광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빛이 그 가치를 가지듯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 또한 각자 천부(天賦)의 가치를 가진다. 그러므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살아가는데 있어서 인위적인 어떤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기준이 무너질 때 사회는 공산·전체주의의 독재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전 정부의
인기리에 공영(空營)방송에서 방영(放映)되던 코미디 프로가 2년 전(前) 이맘때쯤 막을 내렸다. ‘개그 콘서트’... 약칭 ‘개콘’이다. 그 이후 이렇다 할 코미디 프로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에... 요즘 들어 마침내 ‘개콘’보다 한 수 위의 경지를 보여준 프로를 볼 수 있는 호사(豪奢)를 누렸다. 이름하여 ‘개그 청문회’다. ‘이모’와 ‘한O 쓰리O’과 ‘난데없는 괴성’과 ‘민간인 고문(拷問)’ 등등 역대급 화제(話題)와 대사(臺詞)로 스타 탄생을 내외에 알렸다. ‘개청 스타’... 이로 인해, 여의섬 주변에서는 저들 ‘처럼회’가 ‘처참해’졌다고들 수군거리기까지 한단다. 그 이름에 개그를 나타내는 첫 글자로 ‘개’를 붙이면 어떻겠냐는 진지한 우스개도 돌아다닌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통치(統治)보다 권력이 분산된 형태의 정치, 협력형(協力型) 통치(統治)의 약자(略字)’라고 한다. ‘각 이해 관계자들이 함께 소통하고 협력하여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해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라고 길게 풀어놓기도 했다. 이른바 ‘협치’(協治)의 뜻이란다. 요즘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 중의 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면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모든 것이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본다. 어느 사회에서나 본분을 망각한 채 설쳐대는 허상의 위선자들은 늘 있었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 등의 암울한 시절에도 매일 독서와 참선으로 정진하는 스님이 계신 반면에, 낮이면 읍내에 들러 허튼 짓을 하고 저녁에 돌아오는 중놈도 있었다. 그런데도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은 누가 스님이 되고 중놈이 될 것을 알고 계셔서 어떠한 말씀도 없으셨다. 더 나아가 참배하는 사람들에게도 부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셔서 단 한마디의 말씀도 없으셨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중생의 구원을 위해 오신 날을 맞이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찾아 법당에 모셔진 불상을 보고 예를 표하고 정재(淨財)의 공양을 한다. 하지만 일부 사람은 정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재물을 공양하고 복을 달라고 하면서, 법당에서 많은 시간동안 절을 하면서도 그저 불상만 바라보다가 부처님은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간다. 마치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정진하여 깨달음에 이르라 하는데, 사람들은 복(福)을 달라고 하니 부처님의 마음과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서 거래가 성립되지 않은 것과
불경에서는 인간의 오관이 각각 색(色), 향(香), 성(聲), 미(味), 촉(觸)의 오경(五境)에 집착하여 일어나는 다섯 종류의 욕망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또 성경에서도 모든 탐욕을 경계하라고 쓰여있다. 재물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색욕의 오욕(五慾)에 있어서 인간의 기본적 도리 및 품위를 무너뜨릴 정도의 지나친 욕심을 탐욕(貪慾)이라 한다. 탐욕에 의한 누군가의 이득은 누군가의 상실로 이어지게 하고, 또 누군가의 기쁨은 누군가의 슬픔으로 이어지게 한다. 그런 후에 탐욕은 인간과 사회를 황폐하게 하고 결국에는 폐망에 이르게 한다. 특히, 사회에서의 도덕성 상실, 더 나아가 불법에 의한 탐욕이 지나간 자리에는 기강이 상실되어 구성원 모두에게 상실감의 상흔만 깊게 남긴다. 탐욕은 사회 전체를 천박하게 만들며 구성원들의 영혼조차 스스로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인간성을 파괴시켜 버린다. 얼마 전의 우리사회에 만연하던 후안무치(厚顔無恥)의 탐욕은 타인의 양심을 깡그리 박살내었으며, 더 나아가 타인의 존엄성까지도 훼손하였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는 어떠한 도덕성 상실, 더 나아가 불법도 저지르면서도 타인에 대해서는 티끌만한 아주 작은 잘못도 태산만한 아주 큰 잘못으
자연의 모든 행적이 연속적이며 그리는 곡선은 완만하듯이 어느 사람의 행적도 모두 연속적이며 그리는 곡선은 완만하다. 불연속에 급작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다. 간혹 불연속에 급작스러운 것으로 보이는 것도 시간의 축을 확대해서 보면 연속적이며 그리는 곡선은 완만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현재에 하고 있는 일의 행적을 알고자 하면 그가 과거에 한 일의 행적을 살펴보면 된다. 또 어떤 사람이 미래에 할 일의 행적을 알고자 하면 그가 현재에 하고 있는 일의 행적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현재 물러나는 정부의 책임자 거의 모두는 과거에 행한 것이 단지 정권쟁취를 위한 사익투쟁(私益鬪爭)의 행적이었지 국민이익을 위한 공익투쟁(公益鬪爭)이 아닌 삶의 행적이었기에, 무능(無能)으로 그 종언(終焉)을 맞이하고 있다. 이들은 허황하고 거짓된 말로 임명자만을 기쁘게 한 자들로 거의 모두는 주어진 지위의 소명(召命)이 아닌 주어진 지위의 권력(權力)에 취해 전문가의 견해를 무시하는 경향의 행적을 남겼다. 간혹은 무엇이 중요하고 우선인지도 모르고 큰소리로 변죽은 많이 울렸지만 거둔 것이 없었다. 특히, 한-일 무역분쟁에서는 전략의 부재에 전술조차 없었으니 그 피해는 막대하였으나, 그
퇴임을 목전에 두고 이루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소위 대통령이란 사람의 발언을 듣고 말하는 그 입을 의심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듣고 있는 나의 귀를 의심해야 할 것인지 아주 당혹스러웠다.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한 “마음의 빚” 질의에 대한 답변은 확증편향(確證偏向)의 그릇된 신념으로, 건전한 상식의 한 시민에게는 듣기가 거북하고 역겨웠다. 자신의 결심을 바탕으로 일국의 지도자가 된 사람이 난전의 사람들도 감히 하지 않는데 범죄자를 두둔하고 연민을 느낀다는 듯이 발언을 한 것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마음의 빚”과 잘 어울리는 글로 주자가훈(朱子家訓)의 “시혜무념(施惠無念) 보은불망(受恩不忘)”은 “은혜를 베푼 것은 마음에 두지 않고 은혜를 입은 것은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훈으로도 하고 있으며 지켜야 할 도리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정기편(正己篇)에 “귀로 남의 그릇됨을 듣지 말고, 눈으로 남의 모자람을 보지 말고, 입으로 허물을 말하지 않는다”는 글이 있듯이, 이번 간담회에서 있었던 것을 못들은 것으로 외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심보감의 이 말을 지키면서 세상을 살아가면, 나는 화를 면할 수 있겠지만 사회는 그릇된 길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