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던 윤 대통령의 발언과 달리 여야 협치는 사실상 공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취임 1주년이 며칠 지났다. 그 어간에 여러 언론매체에 오르내린 화두(話頭)가 바로 ‘협치’(協治)다. 많이 배우셨다는 전문가, 글깨나 쓴다는 문장가, 꼰대면서도 아닌 척하는 원로 등등이 지적질과 함께, 칭얼대고 계신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승만은 친일 매국세력의 아버지이고,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했던 독재자입니다... 친일 매국세력의 아버지, 인권침해 독재자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습니다...” 고개를 숙이던 떨구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집권 야당’(執權 野黨) 대표의 저 심연에 깔린 이 나라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의 일단이 저러하다고 한다. 과연 그 족속들과의 ‘협치’(協治)가 이 나라의 제대로 나갈 방향과 일치할 수 있을까. 그저 ‘누이와 매부’가 함께 해 처먹는 짝짜꿍 정파(政派) 놀음, 즉 ‘협잡’(挾雜)에 다름 아니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발언을 공전(空轉)시킨’ 주인공의 선택을 크게 존중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1일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 징계
어둡고 어스스한 베를린의 거리보다는 남부 독일, 특히 뮌헨의 거리는 밝고 활기차다. 라인강을 따라 배를 타고 올라가는 강변 기슭에는 품위있고 고풍스런 고성들의 퍼레이드가 인상적이다. 목가적인 남부 독일의 전원풍경은 한마디로 낭만적이다. 그러나 이런 외향적 풍경속에 정치적 내부 불만과 지정학적 생존 위협으로 점철된 비뚤어진 독일의 질투심과 경쟁심이 존재한다. 기실 당대 문명국으로 자칭했던 영국과 프랑스의 문명론과 정반대되는 혈통과 종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화와 영웅을 동경하고, 몽상적 자연속에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는 비현실적인 군주와 유기체로 한 몸이 된 민중(Folks)을 칭송하는 정치적 낭만주의(Political Romantism)가 잉태되었다. 합리적 이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 철학자들 눈에는 신의 계시를 빙자한 교권(敎權)의 가혹한 통치 만행이 캄캄한 암흑시대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썩는 내음이 진동하는 부패한 교권에 대한 저항은 유럽 전역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피렌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신성로마제국 마르틴 루터의 종교혁명, 유토피아를 집필했던 영국의 토마스 무어 등이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새로운 시대에 대한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 이태리 도
대한민국 엔 세개의 노동조합이 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국민노조이다. 이중 가장 후발주자인 국민노조는 기득권 노조에 대한 개혁성을 뛴 합리적 사고로 노동계의 기대 속에 출발한 신생 노조이다. 한마디로 귀족 노조를 해산해야만 순진한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자세로 발족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왜 기득권을 가진 두 개의 노조가 쉴새 없이 천하를 어지럽히는 권력으로 군림했던 것인가? 아마도 찐한 맛을 즐기고 있는 일부 노조 간부들에게 밴 중독을 끊기에는 그들에겐 죽음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찐맛은 간부가 즐기고 희생과 최후의 죽음까지는 말단 근로자가 택하고 있다. 필자의 오래전 목격담을 하나 말하겠다. 행주산성 주변에 보신탕을 파는 음식점의 대낮에 노조 간부 몇몇이 모여 고스톱을 치면서, 보신탕과 술에 절어 주고받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나 이번에 철도 부지를 불하받아 차명으로 해놨다. 난 집도 전세로 살고 있다. 잘하는 짓이지 ㅎㅎ.” 마치 노동자를 위해 헌신하며 힘들게 살고 있다는 모습으로 지내야 국민들이 믿어준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식사하던 나의 귀에는 그들이 연극 준비를 위한 대사를 읊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이자들은 근로자를 대변하는
일상에 바빠 정치에 무덤덤한 일반국민들도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이들이 과연 헌법이 보장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인가 싶다. 한미 정상회담에 나섰던 윤대통령을 음해하기 위해 가짜뉴스는 물론이고, 정상적인 사실도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것이 일상이다. 온갖 불법비리로 수사를 받고 있는 당대표와 당내경선에서 돈 봉투를 남발했던 전 당대표의 만행으로 인한 위기로 정신줄을 놓았는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정신세계는 정상회복이 불가능해 보인다. 아테네의 중우정치(衆愚政治)와 직접민주주의 민주화란 미명아래 민주팔이 하면서 입만 열면 직접민주주의가 답이라 외쳐대던 좌익들의 거짓선동으로 한국사회는 언제부턴가 궤변의 ‘소피스트(sophist)’가 창궐했던 아테네 말기 희랍의 중우정치(衆愚政治) 상황과 흡사해졌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온갖 시빗거리를 모조리 투표로 결정하는 아테네의 정치관행은, 틈만 나면 뒷돈을 주고 표를 사서라도 저잣거리의 시민들을 끌어 모아 투표장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조건 자신의 당파에 유리한 쪽으로 투표결과가 나오도록 수사학과 웅변술로 무장한 선전과 선동의 달인들을 대동했다. 그 결과 이재에 밝고 영혼의 격이 낮은 여러 형태
며칠 전의 일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손주 녀석으로부터 뜬금없는 소리를 들었다. “할아버지 우리나라는 두 개의 나라로 나눠진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맨 날 맨 날 무리를 지어 싸우는 모습을 보니, 철천지원수처럼 느껴져서 그래요.” 자기네들 세계에서는 싸우고 나서도 더 친밀해지는 관계로 지내는데, 아마도 어린애들의 눈에는 정치권의 여와 야의 형태가 마치 원수진 사람들이 하는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꼴사나운 모습은 그 밑바닥에 1945년 해방 후 신탁이냐, 반탁이냐와 또한 이승만이 건국 대통령이냐, 초대 대통령이냐로 시작된 해묵은 앙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간단한 해법을 놓고 어째서 더불어민주당은 보수정권에 대해서는 타협보다도 부정적 접근부터 하는지가 궁금하다. 6·25 동족상잔은 신탁과 반탁 편에 선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를 틈타 소련과 김일성의 합작으로 일으킨 남침 전쟁이었다. 건국 대통령이자 초대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의 손으로 선택한 독립운동가 이승만 박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기에 합법적 대한민국의 대통령임이 사필귀정이다. 다만 3·15 부정선거로 4·19 학생혁명이 일어났고, 이를 자인한 이승만은 국민
지난 3월 사쿠라가 유난히 일찍 피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나라에서도 ‘죽창가’(竹槍歌)를 드높이 외쳐대는 무리가 있었다. 그 여운이 아직 가시지는 않았지만... ‘일제(日帝)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위변제’ 해법 제시에 이어, ‘한일정상회담’(3월 16〜17일)이 열렸다. 후쿠시마 원전(原電) 오염수와 독도(獨島)에 관한 괴담·악담과 함께 그 황당한 ‘죽창가’는 왜국(倭國)을 당장 집어삼킬 듯했다. “연합훈련을 핑계로 자위대의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더럽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굴욕적인 강제 동원 배상안이 강행된다면, 한-미-일 군사동맹이 기다리고 있다... 제2의 카스라-테프트 밀약이 생기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실제를 들여다보면, 그 ‘죽창’은 결코 왜국(倭國)을 겨누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왜국에다 대곤 제대로 주둥이질조차 하질 못했다. 이 나라 자해(自害)를 노린 내부 창(槍)질일 뿐이며, 국민의 분열을 노린 정치적 술수에 불과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 아니던가. 아울러 북녘 ‘백도혈통’(百盜血統)에게 크게 도움을 주는 짓거리라는 건 이미 검증된 사실(史實/事實)이다. 누군가는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일련의 조
우남의 용미전략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우남의 집권기동안 미 국무부 문서들은 우남에 대한 우호적 평가보다 우남의 권위주의 통치를 비화시켜 트집잡는 비난문서들이 다반사였다. 결국 이런 미 국무부의 평가는 대한민국 역사를 분탕질치게 만든 브루스 커밍스류의 수정주의자들에게 터무니없는 명분을 제공했다. 물론 시간이 흘러 미국과 소련의 극비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커밍스의 분탕질은 허구로 밝혀졌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좌익들의 우남에 대한 위선과 기만, 사기와 거짓말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4·19 발발이후 우남은 일주일 후 하야성명을 내고 하와이로 이주했다. 이후 고국땅을 밟지 못하고 1965년 영면한다. 3·15 부통령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가 결정적으로 우남을 하야시킨 것일까?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미국을 너무 잘 알았던 우남의 용미전략에 진저리가 났던 미국이 우남을 물러나게 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일부 지식인들은 주장한다. 우남의 거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상호방위조약에 이어 굳건한 한미동맹이 맺어졌었다. 미국은 조약에 의거 10억 달러의 대한원조를 약속했지만 이를 차일피일 미뤘던 결과, 미국의 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은 극도로 굶주렸다
대한민국 체제 소멸을 노리는 좌익들의 분탕질이 극에 달하면서 이제서야 이승만 건국대통령에 대한 재인식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나 좌익들의 역사 사기극에 기반한 터무니없는 프레임 공격과 낙인찍기로, 아직도 이승만 박사의 본심을 꿰뚫는 진정한 근대사 연구는 태부족하다. 과연 우남 이승만의 진정한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무엇 때문에 평생을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희생했을까? 청년 이승만의 탁월함과 단호한 결기속에는 과연 어떤 인과관계가 있었을까? 이미 좌익들로 인해 꺾어지고 휘어진 역사속에서 우남에 대한 사실과 진실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위인전기 수준을 넘어서는 역사사회학, 정치사상, 국제정치 차원의 융복합 학문적 접근이 불가피하다. 마르크스-레닌도 혀를 찰 정도로 사회주의사상을 벗어난 얼치기 김일성주의 좌익들이 사회적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우남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진실·사실을 밝혀가는 과정들은 산산히 흩어져버린 대한민국 국민을 다시 하나로 뭉쳐내는 동인으로 작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재필박사가 주도하는 독립협회운동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우남의 꿈은 먼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일본으로부터의 탈피였다. 그리고
“나는 인천(지역구 의원) 둘하고 C 의원은 안 주려고 했는데 얘들이 보더니 ‘형님, 기왕 하는 김에 우리도 주세요’ 또 그래 가지고 거기서 세 개를 뺏겼어” 현금 300만원씩 담긴 봉투에 관한 대화 중의 일부라고 했다. ‘그 당’의 지지난해 5월 임시‘전당(錢黨)대회’에서 벌어진 일이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다. 저잣거리에서는 지난 시절의 추억을 소환한 훈훈한 모양새라며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킥킥거리기도 한다. 반면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은 디지털 뱅킹이 워낙 발달해 소셜미디어(SNS)로 가짜 뉴스가 퍼지면 사람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돈을 뺄 수 있다”면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면 예금 인출 속도가 미국보다 100배는 더 빠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시대에 이 나라에서 돈을 ‘봉투’로 돌렸다니... 지난 시절을 겪어보지 않았을 이 나라 청춘들의 비웃음 또한 가득하다고. 기왕이면 스마트폰 뱅킹이 깔끔하지 않았겠냐며 수군거린단다. 한마디로 쪽팔린다는 거다. 칠푼이 급 꼰대에 다름 아니라는 핀잔이다. 물론 ‘푼돈’에 불과해서 봉투에 넣은 거 아니냐는 자못 심각한 반론도 어우러지고 있단다. 민주당
장 보댕 (Jean Bodin)의 주권론은 군주주권론이다. 지존의 위치에 있는 군주에게 최고의 권위를 부여해 교권(敎權)과 대등하게 대립할 수 있도록 자격을 주고자 했다. 어쨌든 왕이 다스리는 국가유형은 고대로부터 오랜 세월동안 인류사를 지배해 왔던 습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왕이 사라지고 백성들이 수 천년동안 꿈도 꿔보지 못했던 눈부신 왕좌에 비루한 백성들이 앉을 수 있게 된 사건은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다행인 것은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군주가 명예롭게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를 백성들의 대표자들이 의회를 만들어 국가를 다스릴 수 있게 만든 영국 사례가 있어서 오늘날 자유민주주의가 가능해졌다. 영국과는 반대로, 다가오는 혁명의 분위기를 직감했던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잔꾀를 내었다. 그때까지 프랑스의 하늘과 땅, 인간과 동물들을 모두 소유했던 절대군주의 자리를 내놓고 처음으로 “나는 프랑스인의 왕이다”라고 천명했지만, 혁명주동자들은 루이 16세의 마지막 말을 들어주지 않고 형장의 이슬로 만들었다. 대중의 감성과 민중혁명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서든지 아니면 혁명을 통해서든지 간에 근대국가의 탄생으로 군주의 주권은 국민주권으로 바뀌었다. 프랑스혁
지난해 5월 2일 치러진 더불어 민주당 전당대회의 대표 선출 투표 결과, 홍영표 후보가 송영길 후보에게 패한 0.59%의 근소한 표차는 송영길 측에서 뿌린 돈 봉투의 위력 때문인 것이 검찰수사에서 밝혀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핸드폰 녹음 일부에서 드러난 대화 사실을 확인한 자당의 정치인 중, 이참에 정치 후진이란 불명예에서 벗어나보려는 개혁의 신호탄을 쏘지 않을까 짐작이 간다. 벌써부터 비명계측에서는 이번 이정근 돈 봉투 사건이 영원한 지지 세력인 호남의 중심인 광주시민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더욱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의 관련 발언을 들여다 보면, 구속된 김용은 왜 호남엔 돈이 많이 들어야 한다고 했으며, 윤관석과 이정근은 호남 조직엔 돈이 있어야 통한다고 했을까? 한마디로 돈도 명예도 권력도 거부하며 청춘을 바친 광주 선열들과 그 가족들은 호남이 돈에 타락된 고장으로 비친 것에 몹시 격분하고 부끄러워 한다는 것이다. 정당의 행보에서 가장 축하의 경연장인 전당대회가 이러한 부패의 경연장으로 바뀐 현실을 마주하면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신익희-장면으로부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68년이란 긴 세월을 이어온
예년과 달리 일찍이 활짝 폈던 사쿠라가 오랜 가뭄 끝의 이틀 비바람에 꽃잎을 흩뿌렸다. 이제 ‘봄날은 간다’는 노래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올 참이다. 세월은 무심하지만, 계묘(癸卯)의 봄은 여러모로 어수선하다. 어디 어수선하지 않던 봄이 있었긴 했나마는... 양키나라와 뛔국의 기(氣) 싸움이 한창이다. 로스께가 벌인 전쟁은 끝을 알 수가 없는 가운데... 북녘 ‘백도혈통’(百盜血統)의 미사일 꼬라박기와 핵 공갈은 멈추질 않는다. 이에 맞서 동맹(同盟)의 실체를 재확인하는 한미연합훈련도 계속됐다. 이 나라 여의섬에서는 형형색색의 방탄복이 등장했다. 계절이 바뀌면, 떨어져 흩어진 사쿠라 꽃잎처럼 너덜해질 걸 가지고 별별 쑈질이다. 남조선 ‘반 미친’(反 美親) 얼간이 족속들의 괴담(怪談) 비트(beat)에 맞춘 죽창가(竹槍家)가 이어지고 있다. 한바탕 전쟁으로 왜국(倭國)을 작살 내든가, 우격다짐으로 왜국을 식민지로 접수해서 한 50년간 지배해야 한다는 기세다. 그동안 안(못) 잡았던 간첩을 솎아내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오랜만에 들려온다. 꽤 여럿이라고들 한다. 그동안 누군가들이 물심양면으로 보호(?)해준 덕에 가지가 무성하단다. 여러 곳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원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