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전(前)... 그들보다 못한 인간을 그들과 동급으로 취급·비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통탄한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 나라 강아지들에게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시작한다. + + + + + + 정부와 집권당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우리 수산물을 공개적으로 먹는 것은 괴담을 잠재우는 데 도움 될 수 있다. 대통령과 장관들도 자주 수산시장과 횟집 등을 찾아가 수산물 안전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안심할 때까지 ‘횟집 회식’을 계속하기 바란다... 아무개 일간지 사설(社說) 중에서 따왔다. ‘꼬라지’라는 표현은 이때 쓰는가? 나라 꼬라지가 영 아니올시다가 됐다. 국내외 유수(有數)의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졸지에 ‘돌팔이’ 취급받아 돌을 맞고... 급기야, 이른바 ‘괴담’(怪談)을 잠재우기 위해 국군통수권자가 보란 듯이 횟집 ‘먹방’을 해야 한다네... 참으로 재미있는(?), 아니 어이상실의 상태가 돼버렸다. 여러 방송의 개그(gag) 프로그램이 잇달아 막을 내리는 건 어쩌면 순리(順理)다. 개그맨 대신 ‘개구(犬口, 개주둥이)맨’들이 설쳐대는 세상이니... 그 까닭이야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저잣거리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단다. 아무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유명한 르네 데카르트 (Rene Descarttes : 1596-1650)의 회의론 (Skepticism)과 “이성은 감성의 노예”라는 명제로 유명한 스코트랜드 경험주의철학자 데이비드 흄 (David Humme : 1711-1776)의 회의론은 다르다. 데카르트는 끊임없는 회의 또는 성찰을 통해 더 이상 회의할 수 없는 진리에 도달해야 한다고 한 반면, 흄은 절대적 진리에 대한 체계적인 검증을 통해 그 어떤 철학적 독단도 막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강렬한 느낌을 주는 현실에 대한 인상이 인간의 뇌를 지배하는 관념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하고, 나아가 이런 관념에 대한 믿음이 수정불가한 지식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인간이 믿는 대부분의 지식은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늘 감성적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흄의 철학적 회의론 (Philosophical Skepticism)에 대한 현실적인 비유로 흔히들 마거릿 미첼의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예화로 잘 사용한다. 그 이유는 소설보다도 1939년에 제작된 할리우드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인류최초로 사회계약을 통해 만들어진 국가(Commonwealth)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역설했던 영국철학자 홉스(Thomas Hobbs : 1588-1679)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괴물들의 형상을 빗대어서 시민들이 쉽게 자신의 정치철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발휘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인 척박하고 위험한 자연상태(State of Nature)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합의와 계약을 통해 만들어진 강력한 국가의 힘과 권위가 개인의 존엄성, 재산, 생명권을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위대한 상상력은 저서 <리바이어던>의 책 표지에서 십분 발휘되어졌다. “수평선 물위로 떠올라 천지를 호령하는 듯 빛나는 왕관을 쓴 거인이, 오른손에는 권력의 칼과 왼손에는 종교적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들고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거인의 몸에는 작은 개인들의 얼굴이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성경에서 묘사된 괴물 리바이어던(leviathan)은 아시아의 황룡과 비숫한 바다괴물로, 입으로 불을 뿜고 긴 꼬리로 헤엄치며 그 어떤 예리한 창이나 칼로도 괴물의 비늘을 꿰뚫을 수 없는 불사의 창조물이다. 사실 홉스가 살았던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 잘못된 판단...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 “시진핑 주석의 지도하에 중국몽(中國夢)이란 위대한 꿈을 한결같이 이루려는 확고한 의지를 모르면 그저 탁상공론일 뿐...” 이미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膾炙)된 어록(語錄)이기에 경위 설명은 따로 필요가 없지 싶다. 이 나라 의전(儀典) 서열 8위라는 ‘집권 야당’(執權 野黨)의 대표... 뛔국 외교라인의 국장(局長)급이라는 대사(大使)... 내정간섭(內政干涉)의 판을 벌려준 자리... 등등 격식(格式)과 구설(口舌)은 굳이 따지지 않기로 한다. 단지 저잣거리에서는 이렇게 수군거린단다. “개딸 아범이 언제 그렇게 겸손하고 다소곳한 자세를 보인 적이 있었나... 이번에 비로소 인간적인 진면목(眞面目)을 보았네.” 물론 ‘두 밍(明)’의 만남으로 한-중관계의 민낯과 속살이 따블로(double) ‘밝게’(明) 드러났다는 평(評)은 일반적이다. 차제에, ‘남조선’을 뒤덮어온 뛔국 공산당의 짙은 먹구름을 재차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는 귀엣말도 오가고 있단다. 더하여, 이 나라에 사는 뛔국 인민에게 주어진 ‘지방선거
자유민주주의체제의 핵심 키워드는 자유, 평등, 인권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적 가치를 표방하는 개인, 시민, 국민은 이들 핵심 키워드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화로운 관계를 영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서구에서 발현되어 5백년 정도의 계몽주의 역사를 거친 후에도 수많은 혁명과 전쟁을 경험하면서 완성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아시아의 신생국이 짧은 기간동안 소화해 내기란 어렵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국가건설 (Nation-Building)은 이룩했지만, 이를 경영 하기 위해 필요한 소위 공덕심(Civic Virtue)을 갖춘 시민과 국민을 양성하는, 국민건설(People-Building)을 완성하기에는 난관이 많았다.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장점이자 단점은 자유주의 자체가 궁극적으로 다원주의 성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사회 내부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얼치기 이념 성향들도 얼마든지 인정되고 수용된다는 점이다. 다만 엉터리 이념주의자들의 성향을 간파하고 국가와 사회 운영의 중심에 깨어있는 시민과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서 이들을 걸러내고 제도권진입을 막음으로써 자유민주주의란 열린사회는 균형을 유지하고 지켜진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은 총 31개 칼리지(Colleges)로 구성되어 있다. 각 칼리지들은 독자적인 재정 및 학사운영을 한다. 그래서 유서깊고 재정상태가 좋은 칼리지들의 입학성적과 그렇지 못한 신생 칼리지들의 성적차이는 상상외로 크다. 입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에 맞추어서 명문 1지망 칼리지에서 그렇지 못한 3지망 칼리지까지 3개정도의 칼리지들을 성적순으로 응시한다. 캠브리지 대학은 공립이지만 재학생들은 졸업장을 수여하는 University와 자신이 소속된 College에 따로 각각의 등록금을 낸다. 그래서 동일한 시스템의 옥스퍼드대학을 제외하고, 다른 영국대학의 학비보다 두배 정도 높다. 캠브리지를 관통하는 캠강의 다리를 건너서 칼리지 내정 캠퍼스로 직접 들어가는, 남쪽의 “수학의 다리” (Bridge of Massmatics)를 가진 퀸즈 칼리지부터, 북쪽의 “한숨의 다리” (Bridge of Sigh)를 가진 세인트존스 칼리지까지 강을 따라 이어서 있는 6개 칼리지들이 대부분 상위권 5위안에 들어가는 명문 칼리지들이다. 캠브리지 대학은 영국 청교도의 성지이다. 청교도 급진주의자들이 도저히 온건한 청교도인들과는 같이 공존하며 살수 없다고 결심해, 메이플라워호를
혁명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을 발판으로 산업혁명에 성공한 구미열강들은 넘쳐나는 부(富)로 과대 생산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어딘가 자신들의 생산을 소비시키고, 지속적인 생산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식민지역들이 간절히 필요해졌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들의 근대국가 건설과정에서의 가치신념인 자유주의적 인권개념을 내팽개치고, 신의 의지를 욕되게 할 수는 없다는 양심의 소리를 지우는 것이었다. 국가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명분으로 탐욕스런 관료들이 제일 먼저 식민지 개척을 위한 제국주의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나갔다. 그리고 자본과 이재를 밝히는 서민과 노동자계층들까지도 연합해서, 자신들의 욕망과 신분상승의 가능성을 채워줄 수 있는 식민지 개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어쨌던 자신들의 행동을 선화시키는 적절한 대의명분이 필요했는데, 그들의 영민함은 바로 자유주의 내부의 기독교 개념과 식민지 개척을 연결시키는데서 찾았다. 원시적 야만에 빠져서 하나님이 창조한 위대한 문명을 모르는 지구촌 변방지역의 원시 부족 같은 <나시옹> (Nation)들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신 앞에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는 소위 신의 은총을 받은 “백인들의 소명의식”(White Man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인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 공화주의, 민주주의라는 3가지 정치체제의 혼합물이다. 한때 <역사의 종말>을 쓴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자유민주주의야말로 신의 형상을 닮은 인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선의 제도라 칭송하며, 이로써 인류의 모든 역사적 진보과정은 끝이 났다고 말했던 적도 있다. 물론 후쿠야마의 주장이 나오자마자, 헌팅턴(Samuel Huntinton)의 <문명충돌론>이 나오고, 정치적 낭만주의에 기반한 각국의 독특한 민족주의 창궐로 인해, 자유민주주의 이후의 세상도 결코 만만치 않는 역사적 갈등과정이 노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문명을 인류가 받아들이면서, 과거와 비교해 넘쳐나는 경제적 풍요로움과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과거역사가 누리지 못했던 오랜 평화시대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인류는 1천년이 넘는 인고의 시간을 가졌다. 자유주의의 기원을 찾아가보면 그 역사적 과정은 1215년 영국의 대헌장 (Magna Carta Libertatum)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헌장은 영어로 “The Great Ch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쳐난다. 이 나라 국민(國民)들에게 커다란 보람과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고 한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그저 주민(住民)들’이나 ‘남녘 인민(人民)들’이야 울화통이 터질 테지만... 바야흐로 ‘집권 야당’(執權 野黨)의 막바지 전성시대가 펼쳐지는 중이다. 드라마틱하다. 담대(膽大)하고 다양(多樣)한 ‘대장동’의 스토리가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꾸준히 선사한다.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 언제 적 구수한 고향 내음을 새삼 일깨워 준 ‘돈봉투’. ‘코인’인지 ‘코가 꿰인’인지... 세종 할아버지나 사임당 할머니가 그려지지 않아도 엄청난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중이다. 여기저기서 살(肉) 더듬이들도 설쳐대며, 이른바 ‘민생’(民生 사람살이)의 은밀한 멋과 맛까지 풍겨준다. 이런 세트 메뉴와 더불어서... 양곡관리법, 간호법, 방송법 개정안, 학자금 대출 이자 면제법, 노랑봉투법 등등... 진짜 ‘민생’(民生 민주당 살리는) 법안들을 신속·적절·과감하게 몰아붙인다. 사사건건 그 무슨 ‘거부권’을 유도해서 정치적 ‘반사 이익’을 볼 거란다. 이미 그 저의와 실체를 여러 언론에서 까발려서 과
인간의 생각과 가치는 긴 세월속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초감성적 인성을 지닌 시인의 세계와 표현력은 한마디로 변화무쌍하다. 영국 왕실 계관시인이자 영국의 낭만주의를 선도했던 윌리엄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의 시 <무지개> (A Rainbow)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특히 시 구절중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란 표현은 수백년을 이어서 작금에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대표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인간의 영혼을 노래했던 시인은, 노년에도 무지개를 보고 아이의 마음처럼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이는 이미 죽은 영혼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순수한 영혼에 대한 주관적 명제가 다소 과격했다. 그랬던 시인은 파리에서 기거하던 중 1789년 프랑스혁명과 광장의 기요틴(단두대)으로 이어지는 인민재판을 직접 목도하게 되었다. 그후 그의 표현력은 점점 보수적으로 또는 현실적으로 달라져 갔다. 말년의 시인은 “남아있는 삶의 희망은 가느다란 풀잎 위에 맺힌 아침이슬처럼 헛된 것이다”고 묘사하거나, “희망이야말로 퀘퀘한 좁은 골목 여기저기 쳐져있는 거미줄같이 불편하고 볼썽사나운 기대”라고 표현하
선동과 기만에 능숙한 얼치기 지식인들이 주도했던 해방 전후사로부터 연연히 이어오는 대한민국 운동권 종북 좌익들은,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라고 늘 선전, 선동해 왔다. 당연히 이들 좌익들의 첫 번째 정치적 목표는 한마디로 번영하는 자유대한민국의 파괴였다. 친일에 붙어먹은 기회주의적 매국노들이 산업화를 이용해서 사회기득권이 되었다면, 이제 차별받고 착취당했던 민중과 노동자가 대한민국을 합법적으로 절단 낼 단계가 되었다고 좌익들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때 바다이야기 비리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문정권 5년 동안 주식, 부동산, 코인 조작 및 사기로 나라가 거의 거덜났다. 광주의 아들이자 이재명의 황태자였던 김남국 의원의 코인 조작은 아마도 깃털에 불과한 것 같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져야 하는 20-30 청년들중 일부는, 물질주의에 빠져 코인 한탕주의를 도모하다가 김남국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의 실패와 손실을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신적 가치가 이토록 타락했다면, 어쩌면 대한민국 파괴를 노리는 좌익들의 뿌리깊은 사회공작들이 이탈리아 공산당 창시자인 그람시 (Antonio
자유주의 아버지 존 로크 (John Rocke) 사상이야말로 지구촌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원리이자 근간이다.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자유주의 사상가였던 로크는 정치와 법철학 외에 의학, 농학, 과학 분야에도 탁월한 업적을 남긴 천재였다. 방대한 로크의 정치사상은 자연법, 소유권, 계약 등의 3가지로 쉽게 요약할 수 있다. 독실한 청교도 신자이기도 했던 로크는 신이 인간에게 자연법, 그리고 양심과 이성을 주었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은 적절한 균형을 이루면서 서로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설사 삶의 과정에서 분열이나 갈등이 생긴다 하더라도 인간의 이성은 갈등을 중재하고 분노를 해소할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런 로크의 성선설과 선한 자연 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관계로서 거칠고 험악한 홉스 (Thomas Hobbs)적 자연 상태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로크가 국가, 정부, 시민사회에서의 계약관계를 중시한 것은, 자연 상태에서 갈등과 분쟁은 당사자들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데, 국가, 정부, 시민사회와 계약을 맺어 개인의 권한을 위임하면 이들이 확실한 심의관 노릇을 해주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의 천부적 가치와 생명, 재산과 자유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