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惡靈)과 좌익(左翼)은 프라다를 입는다.

- 시민의 공덕심(Civic Virtue)과 국민건설(People-Building)
- “Palace 27”의 상업적 마케팅 성공과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자유민주주의체제의 핵심 키워드는 자유, 평등, 인권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적 가치를 표방하는 개인, 시민, 국민은 이들 핵심 키워드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화로운 관계를 영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서구에서 발현되어 5백년 정도의 계몽주의 역사를 거친 후에도 수많은 혁명과 전쟁을 경험하면서 완성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아시아의 신생국이 짧은 기간동안 소화해 내기란 어렵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국가건설 (Nation-Building)은 이룩했지만, 이를 경영 하기 위해 필요한 소위 공덕심(Civic Virtue)을 갖춘 시민과 국민을 양성하는, 국민건설(People-Building)을 완성하기에는 난관이 많았다.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장점이자 단점은 자유주의 자체가 궁극적으로 다원주의 성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사회 내부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얼치기 이념 성향들도 얼마든지 인정되고 수용된다는 점이다. 다만 엉터리 이념주의자들의 성향을 간파하고 국가와 사회 운영의 중심에 깨어있는 시민과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서 이들을 걸러내고 제도권진입을 막음으로써 자유민주주의란 열린사회는 균형을 유지하고 지켜진다. 결국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시민과 국민을 양성하는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실질적으로 자유주의 안에는 인간의 신에 대한 초월적 믿음이 존재한다. 자유로운 한 개인이 깨어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과 그로 인한 자기반성을 통해 세상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품는 것이다. 가족, 친구, 직장과 연계된 소속집단, 사회공동체 등에 대한 사랑과 연민, 그리고 시민사회의 정의와 공정을 통한 사회적 신뢰 형성, 나아가 사적 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과 이타적인 보편주의를 통한 사회적 관용과 포용성의 확대는, 개인과 신이라는 사이의 초월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결코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따지고 보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만들어냈던 계몽주의 철학자들이나 자본주의 이론가들의 지혜에는 성서적 요인들이 상당히 크게 자리잡고 있다. 좌익들이 그렇게 힐랄하는 자본주의 (Capitalism)는, 타인을 위하지 않으면 공멸하는 다시말해 이타심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되는 장치들이 작동되어 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소위 금문율(Goldern Rule)로 대변되는데, 이는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성서상의 금문율과도 일치한다. 그래서 칼 마르크스의 저서 <Capitalism>은 자본주의라고 번역하지 않고 <자본론>으로 번역한다.

 

 

문민시대 이후 민주적 이념의 다양성이란 어설픈 정치적 구호 아래 봇물 터지듯이 제도권으로 밀려 들어온 좌파 운동권 세력들은, 일단 대한민국의 가치를 망가뜨리는데 집중했다. 빈부격차와 경제적 독점관계를 강조하면서, 대한민국을 물신주의에 빠진 천박한 국가와 국민이라는 사실을 세뇌시켰다. 겉으로는 상업주의적 물신주의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상적 현실이라는 풍토를 만들었고, 안으로는 교육, 노동, 언론을 통해 물신주의와 타락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세력들을 양성시켰다. 그 결과 작금의 개딸이라는 확증편향의 이념집단과 전체주의적 이중사고를 하는 독특한 좌익세력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에는 호텔을 아파트로 개조해서 한 채에 몇백억 하는 초호화 오피스텔들이 이미 많다. 14억 인구중 4백만명 정도가 백만장자들이 되었고 이들은 인민과 차별되는 초호화 주거지를 선호한다. 그래도 중국은 별문제가 없다. 당 영도의 계급사회인 중국에 자유, 평등, 인권이란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권력을 앞세운 야수와 노예같은 천민들이 거주하는 야만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내내 중국을 찬양하고 지금도 야당 대표가 서울 주재 중국대사에게 쩔쩔매는 그런 세상이 되어서 그런지, 서울에도 중국과 비슷한 불평등을 즐기는 부호들만을 위한 호텔급 아파트가 생겼다. “Palace 27”은 상업적 노이즈 마케팅으로 한방에 절판했는데, 문제는 이들이 추구하는 상업적 물신주의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가장 거칠게 파괴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가치인 자유, 평등, 인권을 완전 무시하는 반대한민국적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물신주의에 빠진 국민들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도 하다.

 

 

문정권이 만들어낸 코인, 주식, 부동산 투기 지옥에서 허덕이는 국민들이 만약 코인, 주식, 부동산을 통해 불법이거나 합법이거나 간에, 자본을 획득한 인간들을 무조건 동경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군과 학교에서 기율은 이미 무너졌다. 금지옥엽으로 떠받들어져 자란 자식들이 부모의 권력과 재력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학교에서 폭력과 권세를 스스럼없이 행사한다면 그런 세상이야말로 지옥이다. 양심과 도덕의 성역이 깨어지고 모든 사회적 합의와 규범이 파괴되는 세상이야말로 지옥 그 자체다.

 

보수주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는 의식있는 올바른 사람들이 방관한다면 악(惡)은 번성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두려움(Fear)은 인간의 행동과 의지를 막아서기 때문에 절대 두려워하지 말라(Fear Not)고 덧붙였다.

 

종북 좌익들이 먹칠해 놓은 대한민국을 다시 고쳐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어쩌면 가장 빠른 시간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고위층이었던 분들, 그리고 성공한 상업세력들부터 소위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현해보자. 아직도 대한민국 지도자층의 고결한 도덕심과 국민에 대한 온정이 남아있음을 보여줄 때, 물신주의에 빠진 대한민국은 그제야 지옥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강 · 량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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