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나고 보수 우파인 국민의힘 내부에서 눈꼴사나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에 패배했으면 자당을 지지한 국민에게 미안하고 죄송하고 패배의 원인을 교훈 삼아 더 좋은 희망을 보여주겠다고 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다. 그런데 이상민 낙선자는 국민의힘 출마자와 자기의 패배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한다. 더 꼴불견은 국민의힘 상임고문이란 홍준표 대구시장은 한 사람이라도 더 당선시키겠다고 김밥 라면을 먹어가며 밤낮없이 전국을 돌아다닌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깜도 안 되는 것이 설치고 다녔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정치자금법으로 구속 재판 중인 송영길을 석방하라고 주절댄다. 기가 막힐 노릇을 보고 있자니 이기주의에 함몰된 저들에게 인간적으로 서글픈 마음이 든다. 왜 패배의 책임이 대통령이고, 한동훈뿐인가? 중도·보수 지지자들의 동상이몽 때문이 아니겠는가? 민주주의 종주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자당의 상원의원 후보들이 선거에서 패했다고 미국민에게 무릎 꿇은 일이 있었나? 그리고 구속 재판 중인 범죄자를 석방시켜준 모습을 보았는가? 이번 4·10 총선은 조국 같은 범법자나 재판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진보파의 단결된 지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이 자는 자신의 야욕과 물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수 많은 사람을 마약 중독자로 파멸시킨 범죄자이다. 마약 수입과 탈법적인 악행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을 매수하고 사법부마저 마음대로 조정하는 죄악을 저질렀다. 그의 악행에 반대하는 세력은 살인으로 제거하여 은폐하는 수법으로 범죄 카르텔을 확장했다. 심지어 돈으로 정치 권력을 사서 불법을 합법화하겠다는 야욕의 확대는 콜롬비아 정권마저 마비시켜 암흑세계를 건설하려고 했었다. 그러기에 범죄 집단을 정치 세력화해서 자기의 범법 행위를 덮으려 하는 수작은 마침내 정부로부터 타협과 양보를 받아내어 교도소가 아닌 개인의 수형살이용 호화저택을 건축하여 활용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는 세계사에 없었던 희대의 드라마틱한 역사이며, 파블로라는 범죄 지능을 가진 악인(惡人)의 창작물이었다. 이러한 유사한 콜롬비아의 정치사가 지난 4월 10일 한국에도 수입되었다. 다만 수입품인 범죄의 상품 성격은 다르다. 그렇지만 범죄를 저지른 형사범이 정치 권력을 이용해서 자기의 죄를 합법화시키려고 창당하여 비례대표인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음은 뭐라고 변명이 될까? 그러고는 민주적 선거로 탄생한 윤석
인구(人口)에 회자(膾炙) 되는 '유행가' 가사를 읊조리며 시작한다.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이리저리 살았을 거라 착각도 마라 그래 한때 삶에 무게 견디지 못해 긴긴 세월 방황 속에 청춘을 묻었다 기구한 개인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만, 문득... 그간 믿고 살아온 이 나라,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조국(祖國) 대한민국’의 여정을 닮았다는 느낌이 확 온다. 건국(建國)·호국(護國)과 중흥(中興), 그리고 남부끄럽지 않은 민주화(民主化)... 그저 이리저리 살지 않았다. 선대(先代)들의 피와 땀, 이어서 우리 또래 세대의 희망찬 노력도 어우러졌다. 건국(建國)·호국(護國)을 이끌었던 위대한 선각자(先覺者)가 있었다. 중흥(中興)을 선도(先導)했던 혁명가가 뒤를 이었다. 그 어른들을 배우고 따라야 했던 시절에 우리네의 감정은 때론 미움이, 어느 때인가엔 연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른들이 옳았다. 언제 적부터 빚을 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노랫말마따나 ‘긴긴 세월 방황 속’을 헤매고 있는 중이다. 20세기(世紀)가 21세기로 바뀌던 즈음부터 현재 진행형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사자후(獅子吼)는 귓가에서 멀어져갔다.
우리 사회가 긴장감이 도는 형국이다. 살면서 이처럼 긴장감이 엄습해 오는 총선은 없었다. 열흘 남긴 4.10 총선을 앞두고 여야, 좌우의 대립이 극한을 달리고 있다. 삼각지 큰 도로, 한강대로를 사이에 두고 주말 저녁 무렵 여당을 지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을 지키자는 절규를 한다. 그들 대부분은 65세 이상의 노령자이다. 옷차림이 겉보이기에 허름해도 젊은 시절 한 때는 사회 각계 각 분야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날리던 어르신이다. 그런 분들이 황사가 유독 심한 주말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내일을 걱정하며 연사의 연설에 박수를 보내고 깃발을 흔든다. 그러나 그 어르신들은 환호하면서 속으로는 눈물을 흘린다. 우리가 어떻게 이룩한 이 나라인데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느냐는 한탄을 하면서 말이다. 길 건너에는 윤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한다. 워낙 큰 도로의 길 건너이기에 피켓 글자를 모두 확인할 수 없고, 그들의 구호 외침도 자동차 소음 소리에 들을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도로 양 사이의 주장이 정반대인 것은 분명하다. 건너편 무리들의 모습을 보아 어르신보다 한 세대 내지 1.5세대 차이가 나는 청장년층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제자들이다. 가까이에서 본
2022년 5월 9일 대통령직을 마친 문재인의 고향에 대해서 아직까지 미스테리로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부모님만 월남하고 나머지 친인척은 북한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니 북한 김씨 일가로부터 얼마나 많은 회유와 협박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거제면 명진리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고향 후배가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하니 당시 재경향인회 회장으로서 어찌하겠나? 2017년 필자는 재경거제시향인회 19대 회장으로서 연말마다 개최하는 거제인 송년의 밤(세종문화회관)에 문재인 후보를 초대하여 향인들 앞에서 축사를 하도록 배려해주었다. 보수 지향적인 거제향인들로부터 종북 좌파의 인물을 초대했냐고 지적하는 것을 무릅쓰면서도 ‘우리가 남이가!’ 라는 대의(大義)의 입장에서 기회를 주었었다. 본인이 태어난 곳이 거제면 명진리라는 것에 동향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은 아무도 펙트를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가 2022년 5월 9일 임기를 마치고 생가가 있는 거제면 명진리를 돌아올 것이란 기대를 저버리고 경남 양산에 아방궁 같은 집을 짓고 옮겨갔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만 아니라 배신당했다는 생각에서 문재인 前 대통령에게 생가를 두고 양산으로 간
지금 대한민국에는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세계 경제 12위국이란 희망을 안고 세계를 누비며 꿈을 펴보고 싶은 자부심은 사그라지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 현상이 뭘까? 다름이 아니라 범법자가 대한민국을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란다. 전통 민주당이란 가문에서 패가망신을 자초한 지금의 불량한 아비에 그 자식이랄까? 국회를 오물투성이로 만들겠다는 자들이 하늘을 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다니 걱정이란다. 이러한 모습이라면 아마도 4월 10일 날은 이 나라 청년들의 가슴으로는 도저히 투표장으로 가는 길을 멈추게 할 것이다! 심지어 호남인의 맹주였던 DJ 선생의 행동하는 양심마저 무색케 하지 않는가? 호남인마저 배신감을 느끼게 하지 않을까 짐작이 간다! 참으로 힘들게 이루어놓은 민주주의 또한 온전할까? 걱정이고 대한민국 전체의 불행한 먹구름이 오는 신호이다. 그러므로 4월 10일 선거는 청년들이 외면한 사상 최악의 선거가 될 것이라 생각되니 민주 선거의 후진임을 불을 보듯 뻔할 것이고 염려스럽다. 아마도 건국 이후 큰일 중에 큰일이 분명해진다! 이러한 사태의 원흉은 국민에게 혐오감을 주고 있는 범법자 당대표 한사람이 신성한 국회의 장에 입성하기 위
“개혁(改革)의 이름으로 장물(贓物)을 나누어 갖는다.” “조화(調和)의 이름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다소 뜬금없는 비교일지 모르지만, 저 글귀에다가... ‘개혁’ 대신 ‘적폐 청산’(積弊 淸算)을 써넣어 보자. 지난 ‘개 버린’의 5년간과 얼추 맞아떨어지지는 않을지. ‘조화’에는 최근 꽤 소리가 요란했던 ‘시스템 공천(公薦)’으로 바꿔 읽어 보시라. “비명횡사(非明橫死), 친명횡재(親明橫財)”가 자연스레 떠오른다고? ‘개혁’과 ‘조화’의 진정한(?) 의미... 결코 ‘바르다거나, 좋다고 할 수 없는’ 이웃 나라에서 그나마 양심과 결기를 보였던 젊은이가 있었단다. 약 35년 전 뛔국에서 벌어졌던 ‘천안문(天安門) 시위’의 주동자[당시 20세]가 저서를 통해 폭로했다고. 즉, 뛔국 ‘공산당’(共産黨)의 소행이란다. 왠지 이 시점에서 그 시사하는 바에 씁쓸할 뿐인데....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두 손을 맞잡는 동작을 해보이며) 그냥 ‘셰셰’(謝謝. 고맙다는 뜻), 대만에도 ‘셰셰’이러면 되지, 뭐 자꾸 여기저기 집적거리나...” 엊그제(3월 22일) 그 옛날 ‘당나라와 교역한 나루’(唐津)를 찾아 저잣거리에서 ‘집권 야당’(執權 野黨) 대표가 부르짖으셨
어차피 구질구질하면서 상투적(常套的)일 앞머리 넋두리는 제쳐두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듯한 경우였다고들 수군거렸다. 이른바 ‘도주’ 대사의 열흘 어간 스토리는 너무 널리 알려졌었다. 그러다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이 오늘 사퇴했고, 이종섭 호주 대사는 곧 귀국한다”며 “저희는 총선을 20여일 앞두고 절실하게 민심에 반응할 것”이라고 했다... 그 대사가 서울에 돌아 왔단다(3.21오전). 애시당초 ‘공수처’(空手處)가 이름값을 한다며 ‘헛손질’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더군다나 그 ‘도주’ 나라의 대사관(大使館)은 이 나라 공권력이 미치는 엄연한 ‘우리 영토’라지 않던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정치공작’이란 흉측한 단어를 떠올리게 한 이유였단다. 그럼에도... “공수처가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먹히지도 않을 ‘바른말’이 허공에 흩어졌었다. 그저 “소환 빨리해 달라! 달려 올 테니...”라고 재촉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었다고 한다. 앞으로 ‘도주’ 대사 껀(件)이 어디로 튈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배임과 제3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세계 경제 12위국 대한민국이 노인 빈곤율 1위라는 통계가 나왔다. 뭐가 문제이길래 산업 역전의 노인들이 빈곤에 허덕이는가? 이런 문제의 제일 큰 문제점은 노인 자신의 노후 장래를 생각하는 것보다. 자식과 가정에 전부를 희생한 대가였음이 지금의 현실을 맞이한 것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지 못한 국가를 경영한 지도자들의 근시안적인 정책도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지나친 복지정책으로 경제 후진국으로 추락한 아르헨티나 및 유럽 국가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때는 복지 호황을 누린 적이 있었기에 다행이지만 우리는 그런 기회도 누림이 없었다. 그저 가정과 사회를 위한 희생에 대한 결과를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22대 국회는 노인복지 대책과 OECD 최빈국 노인국에서 벗어나는 정책으로 시작해주길 바람이다. 한마디로 정당 간의 진영논리엔 노인복지 정책 경쟁으로 삼아 국회를 운영해주면 좋겠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공약에도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이라 했다. 노인 빈곤율 탈피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 경제 12위권의 대한민국 답게 노인이 행복한 세상을 기대하려고
의사는 환자에게 구세주다. 히포크라테스는 말한다! “환자는 나의 부모요 형제요 자매 같은 소중한 대상”이라고, 그리고 말한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지키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라고 선서한다. 세상에 수많은 직종이 있지만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란 직업은 하늘이 인증하는 천직(天職)이다. 그런 의사들이 3주째 자기의 기득권에 매몰되고 선동에 휘말려 가련한 환자들만 죽어가고 고통받고 있다. 기득권 사수만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존중한다는 것인지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닌지 의사들에게 묻고 싶다. 환자와 국민은 말한다! 의사도 사람이다. 그러니까 의사는 늙지 않고 불로장생하는 존재냐고 되물어보는 것이다. 미래에 생길 의료사고를 대비한 증원 확대는 이치에도 어긋나지 않은 주장이다. 다만 생각이 다르다 할지라도 환자 곁에서 타협점을 찾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환자 곁을 떠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의사는 다른 시위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귀중한 위치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환자와 예비환자의 바람이다. 그러므로 모든 의사들에게 명한다. 그대들은 환자의 하늘이며 생명줄의 최대 은사이다. 제발 세상 이치를 잊지 말고 자신에게도 귀중한 생명이
‘사람의 입은 재앙의 문이요(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舌是斬身刀)!’에서 나온 사자성어에 나오는 말인 즉! 4년 만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공천은 지역에 따라 당락을 좌우한다. 하루아침에 로또에 당첨된 공천 후보자가 지나간 시절에 내뱉은 말들이 죽지 않고 씨가 되어 결국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따논 로또 당첨이 휴지로 날아가는 사태를 종종 볼 수 있다. 말이란 내뱉을 땐 듣는이들에게는 시원하게 들리는지 모르겠으나, 상대성이 있는 선수와 경쟁하는 선거에 비추어 볼 때 전체적인 지지도를 좌우하게 하는 악영향을 준다. 옛말에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정치 지망생이라면 주워 담지 못하는 말을 조심스럽게 심사숙고하여 내뱉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에 담아야 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최강욱의 암컷 말, 이해찬의 장애인 비하 발언, 정동영의 노인 비하 발언, 김의겸의 허위 발언, 추미애의 김정은 대통령이라 부른 말, 도태우의 5·18 폄하 발언, 그 외 수많은 정치인과 지망생들의 말실수를 주워 담을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인성 부족한 사람과 사면복권 안 된 후보자에게는 출마 자격을 주지 않는 법률적으로
이 땅의 젊은이들아! 시대는 그대들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대한인의 숨소리는 세계 속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생동감 있게 확신을 주고 있다! 기회 또한 문 앞에 와있음을 세상 사람들이 속삭이고 있다. 일제 식민 36년과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 3년의 아픔을 교훈 삼고 찬란한 미래 세계를 놓치지 않으려는 각오가 절대적이건만 어리석음도 용서해서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된 지식에서 오해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겐 심사숙고해야 하는 찬스가 왔음을 대변해 준다. 이러한 각오는 식민지와 공산화의 길목에서 버티어낸 그대들의 부모님들의 공로가 있었고, 컸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가 초대 대통령을 가졌어도 초대 대통령이라 인정 못하는 가슴 아픈 사연을 이웃 중국의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역사를 본받아야 하는 교훈도 생각에 잠시 잠겨보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가까운 중국의 동북 삼성의 유일한 조선족 자치 정부의 연변을 가보고 우리를 돌아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조선족 대학으로 알려진 연변대학교 교정 안에 버젓이 버티고 있는 일본 주둔군의 건물이 보존되어 있음은 침략당한 과거의 아픈 현장을 교육장으로 남겨 놓은 대국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참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