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프랑스 혁명이후 갑자기 인간의 이성이 종교가 되었다. 문명적으로 소외되었던 독일과 자격지심의 러시아로부터 창궐했던 좌익 사상가들의 인류사와 인간개조 노력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충우돌하다가 결국 소련이라는 공산전체주의로 귀착했다. 그러나 이 공산전체주의 제국도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역사속에서 내부모순으로 인해 멸망했다. 하지만 공산주의 사상가들의 역사적 흔적은 아직도 수많은 연구과제로 남아있으며, 민주주의의 한 기형으로 21세기에도 사상적 변이과정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도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모택동의 사상집들은 여전히 좌익지식인들의 서재에서 보물단지로 취급받고 있다. 필자는 공산주의 이념으로 이어졌던 허무주의와 무정부주의 시대에 출판된 도스트옙스키의 소설 <악령>이 묘사하는 위선과 기만, 사기와 거짓에 기반한 반인륜적인 악마적 선택에는 별다른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혁명가 교리문답이 통용될 수 있었던, 지금으로부터 2백년전의 극단적인 이념대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첨단기술 시대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창궐했던 소위 문재인 주사파 정권은 짐짓 이념적으로는 설명이 되질 않는데, 뭔가 희한한 이념의 기형아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은 평소 주말보다 되레 매출이 상당히 늘었다” ‘광우뻥’ ‘사드 전자뻥’ 등 그간의 각종 괴담(怪談)과 관련, 경험에 의해 학습된 이 나라 ‘국민’(國民)들... 왜국의 후쿠시마 ‘오염수 뻥류’ 괴담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반면, 이 나라에 거주하는 ‘인민’(人民)들과 일부 ‘그저 주민(住民)’들은 아직도 괴담(怪談) 아닌 ‘귀담’(貴談)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래서 그런지, 이 나라 ‘집권 야당’(執權 野黨)의 비명(悲鳴)에 가까운 외침이 애처로울 지경이라는 수군거림이 들린다. “핵 오염수 방류는 태평양 연안 국가에 대한 전쟁 선포... 일본이 이웃 나라 눈치를 보며 방류를 망설일 때 이런 패악질을 가장 합리화하고 지지한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 딱히, 통수권자를 지목하는 이유야 너무도 뻔하다. 하지만 뛔국과 북녘의 목소리를 들을라치면, 그 ‘궁극적 본색’ 또한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중국이 24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은 ‘처리수’로 표기) 방류에 항의하며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日 식당에 항의 전화 1000통, 일본인 학교엔 돌·계란 투척... 中 반일 감정 확산” 여기에
지난 2008년의 일이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은 미국산 소고기 파동을 기억하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광우병이란 가짜뉴스를 퍼뜨려 갓 들어선 이명박 정권을 탈취하려는 의도는 마치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사용하는 포플리즘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수법에서 나온 벤치마킹이다. 이러한 수법으로 또 한 번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일이 24일에 실시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이다. 세계가 공인하는 IAEA 국제원자력 기구에서의 종합보고서엔 "사람의 건강과 해양 환경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인증과 한국 방사능계의 권위자 정병진 원자력공학과 교수의 증언도 무시한 채 국민만을 선동하는 집회야말로 사회주의 대국인 중국과 같은 내로남불의 비겁함을 보여주는 작태이다. 권위 있는 유튜브 WhyTimes(8/25)에서 ‘中 핵잠수함 대만해협서 침몰 과정(過程)’이란 뉴스를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이는 후쿠시마에 비할 바가 아닌 엄청난 바다의 재앙이 될 것이다. 왜 이러한 뉴스에 민주당과 좌파들은 우둔한 척할까? 초록은 동색이라서 그런가? 우리는 방사능 속에서 살고 있다. 그 농도가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인체에 심각성을 따진다고 한다. 이럴 때 YS 명언이 생각난다. 사람의 머리는
근대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들고 끝내 아테네를 멸망시킨 희랍의 민주주의를 경멸했다. 또 희랍의 최고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민주정(民主政)을 우민정치(愚民政治)로 규정하고 경계했다. 그래서 중세이후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불러온 것이 바로 로마의 공화주의(共和主義)였다. 그러나 권력의 공공성과 권력분립을 강조하는 로마의 공화주의에는 귀족정, 군주정, 제정 등의 체제요인들이 잔존했다. 이런 고전적 공화주의와 달리, 피렌체의 철학자 마키아벨리는 군주를 대신하는 국가의 통치자로 등장한 시민들이 주관하는 시민적 공화주의(Civil Republicanism)를 최초로 발현시켜 근대로 향한 문을 열어젖혔다. 기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자유주의, 공화주의, 민주주의라는 세가지 정치체제가 혼합되어 있다. 근대의 산물인 개인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영국의 자유주의는 천년도 넘는 기원을 갖고 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는 영국의 자유주의가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를 한 몸으로 붙여나가는 기나긴 정치적 여정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혁명을 통해서 또는 점진적 개혁을 통해서 왕이 권좌에서 사라지고, 군주 주권을 대신해 국민(People)이 국가의 주권자가 되었는데,
“세계 GDP 32%... 한미일 ‘안보·경제 블록' 탄생” “한·미·일 전방위 협력 질적 도약…과제도 만만찮다”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이하 ‘캠데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관련 사실로부터 뒷얘기, 평가·전망·과제·대안에 이르기까지 언론 보도가 넘쳐난다.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서 한·미·일 삼국 정상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은 대한민국이 과거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일방적인 도움을 받던 관계에서 미국·일본이라는 강대국과 함께 공동의 문제에 대응하는 대등한 관계로 변화한 것이다... 이 나라 국민들의 자부심을 자극하기 충분한 어느 논객의 평가가 있었다. 경제 안보를 다지고 성장 기반을 닦을 역내 다자 경제협력체로서의 출범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먹고 사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 분석도 빠지지 않았다. 반면에... 한국이 얻을 경제적·안보적 실익은 불투명한 반면, 한·중관계 악화에 따른 부담은 커졌다... 이런 어깃장도 어김없이 ‘개X에 보리알 끼듯’했다. 아무튼... 언론들의 호들갑(?)만큼이나 반도(半島)를 둘러싼 새로운 차원의 국제정치가 막을 올렸다는 사실은 틀림없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방끈이 짧고
미대통령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벌어진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3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은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내 안보위협에도 3국이 공동대응하는 안보협의체 창설에 합의했다. 그리고 첨단기술,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경제안보분야에 대한 협력 강화안을 문서화했다. 이런 거대한 변화의 징후는 이미 윤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 노정되어 있었다. 윤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국가 정체성과 국제안보에 관한 포석을 세밀하면서도 담대하게 국민들에게 알렸다. 먼저 1919년 상해임시정부로 인한 국내 건국 논란들을 “자유민주주의 건국을 위한 위대한 여정”이란 현명한 표현으로 잠재웠다. 또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을 거듭 언급하면서, 자유대한민국 정체성 확립과 열린 사회의 적들에 대한 경계심을 높였다.(공산전체주의란 표현은 경제적 용어로서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제도는 항상 정치적으로 전체주의를 표방한다는 의미를 한 단어로 함축시킨 것이다.) 또 거대 야당의 탈레반식 반일선동에 맞서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의 중요성과, 특히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지원하고 있는 7개 유엔사 후방기지의 안보 역할을 강조했다. 한미
대한민국 기업가로서 현찰이 많기로 소문난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께서 인생 말년에 통 큰 기부를 하고 있음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회장이 태어난 전남 순천 죽동마을에서는 초등학교 동창에서부터 중·고·대학교 동창생과 군 동기까지 많게는 1억원에서 몇천만 원씩 기부를 하였다니, 항간에 사람들 입에서는 이런 것을 두고 로또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말한다. 이중근 회장이 최근에 자기 주변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모습을 보니, 부자는 돈만 버는 욕심꾼이 아니라 없는 자에게도 베풀 줄 아는 것이라고 주변의 재벌들에게 일깨워 주는 교훈이다. 참으로 보기 드물 게 시리 사람 사는 보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벼락 거액의 돈을 거머쥔 산간벽지의 죽동마을과 운평리 6개 마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리면서도 이유 불문하고 마냥 부러운 생각만 난다. 반면에 이회장과의 인연이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은 먼 발취에서 멍 때리며 쳐다보고 있지 않을까. 어떤 느낌이 일까? 궁금해진다. 인생은 결국 이세상을 떠날 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하고, 무소유(無所有)라고 하지 않나. 부영건설 하면 대한민국에서 임대아파트 건설사로 유명한 것은 세상이 다 안다. 소규모의 건축업에서 운
8월 15일은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광복절이며, 올해는 78주년이었다. 우리 민족이 감당한 불명예에서 벗어난 뜻깊은 날이다.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취임 후 두 번째 맞이한 역사적인 날로서 경제인의 사면부터 먼저 단행하여 경제 불황에서 희망을 불어넣어 보자는 결단이 돋보였다.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과욕이 부른 잘못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의미여서 당사자들은 감사할 따름이겠다. 하지만 불명예를 가진 모든 국민은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한 번쯤 짚고 가자! 대통령께서도 발상(發想)의 전환으로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몇 가지 제언 해 본다. 해마다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형 실효에 대한 사면과 복권 그리고 특별 사면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올바른 가치관을 바꾸는 기회가 되었다면 윤석열 대통령만이 배짱 있게 결단할 수 있는 것이 하나 또 있다. 먼저 인간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인간성 회복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다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발생한 형사적 처벌에 대해 재론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거두절미하고 국가에 대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통 큰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 기회는 현 법률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범죄 경력 기록
영국이 품었던 천년에 걸친 자유주의 역사는 과연 신의 은총이었을까? 바다라는 거대한 방어벽을 친 영국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의 내정간섭과 대륙의 포식자들로부터 일정 부분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결과 수많은 대륙의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다. 이들의 학문과 기술, 종교적 자유를 보장해 주었던 영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급속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고, 급기야 산업혁명을 통해 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했다.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했지만, 영국의 청교도 정신과 자유주의 사상에 기반한 법과 제도를 그대로 답습했던 미국은, 20세기 초 자유, 민주, 공화의 세요소가 결합된 복합 정치구조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구촌의 이념과 문명을 선도하는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저서 <역사의 종말과 마지막 인류>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성찰하는 영혼을 가진 인간과 사회만이 가질 수 있는 신의 은총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태초에 신이 첫 번째 인류(The First Man)를 창조했고,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인류
태풍으로 무더위가 한풀 꺾인 듯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행여 이 글이 ‘읽는 분’들께 다시 무더위를 안기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너무 크게 열 받지 마시길 바라며... + + + + + “‘존경하는 박근혜’라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 “아무 잘못이 없지만 (검찰이) 또 오라니 가겠다” “쌍방울과 이재명은 대체 무슨 관계인가. 나도 모르겠다. 인연이라면 내의를 사 입은 것 뿐...” 두 손의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갖가지 큰일을 벌렸다고 알려졌다. 큰일이란 큰집에 가야 할 일이라고 한다. 바로 그 ‘집권 야당’(執權 野黨) 대표이자 ‘개딸 아범’님의 어록(語錄) 중 일부란다. 인구(人口)에 회자(膾炙) 되는 말 따먹기와 말 돌리기가 어디 이뿐이랴. 급기야... “뭐라고 얘기해도 전쟁보다는 평화가,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긴 전쟁보다 낫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 말마따나 역대급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게다. 이렇듯 그간에 쌓은 많은 언(言)과 행(行)의 업보(業報)들로 말미암아 이 나라 법정(法廷)이 뜨거워지고 있다고... 더불어서, 한껏 차려입었던 방탄복도 너덜너덜해졌다는 요즈음인데...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대장동 실무자인 고(故)김문기
<전쟁론>으로 유명한 독일 군사전략사상가 클라우제비츠 (Carl von Clausewitz)는 나폴레옹전쟁 당시 12세 나이로 전쟁에 참여한 이후 나폴레옹군의 폐망까지 전장을 누볐다. 이후 프러시아 육군사관학교장을 맡으며 저술 활동과 교육을 통해 수많은 명장들을 육성해, 독일육군을 최강의 군대 반열에 올려놓는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정치사회적 변혁과 전쟁의 시대적 전환과정을 목격했던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 대한 정치사상적 인식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베를린대학에서 2년 동안 정치철학 연구에도 몰두했다. 고전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을 시도했던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 마키아벨리의 분별력(Prudence) 개념을 도입했다. 즉, 당면한 시대정신을 읽고, 운명의 여신을 제압하는, 지도자의 탁월한 능력을 <전쟁론>에 포함시켰다. 클라우제비츠는 인간 감정에 따른 관념론적 절대전쟁 또는 무한전쟁과 인간들의 생존을 위한 상호작용이 작동하는 현실적인 제한전의 차이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 비판철학에서 찾았다. 그리고 위대한 서사시 또는 영웅의 이야기로 시작해, 인간의 욕망과 자만에 기인한 고통과 피의 결과로 종결되는 전쟁인
지난 5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가 들어서고 나서 우리의 헌법은 잠시동안 실종되었다 한다. 한 마디로 정치적 진영논리에 휘둘리어 정의·평등·공정의 추(錘)가 좌충우돌한 기억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민생의 걸림돌이 되어 부득이 해결해야 하는 민사재판은 기약도 없이 멈춰서야 했고,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민생활의 스케줄은 코로나 팬데믹과 같이 확신조차 없다. 최소한 2년이란 기나긴 시간을 민사재판에 매달려본 사람이라면 김명수란 대법원장의 운영 미숙이 얼마나 잔인한 법의 유린이었는지 알 것이다. 헌법은 한 국가의 길이며 생명이다! 이러한 엄숙한 헌법이 자격 미달인 한 사람의 손에서 5년이란 세월을 법의 존재감이 없었으니, 국법(國法)은 만신창이가 되어서 기절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가 성숙되지 않은 미개발 국가의 국민들이 겪고 있는 법의 상실에서 얻은 마(魔)의 주머니 같았다. 보수를 지지하는 정권 아래 헌법의 존재가치를 잃지 않기 위한 좌파진영과의 일전(一戰) 상태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 만료만을 기다려왔다. 지금의 보수파에게 돌아온 업보야말로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서식하는 좌파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한 탓이 가장 크며 실수였음을 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