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역사와 대한민국 - 1

- 자유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 영국의 대헌장에서 미국의 독립선언, 프랑스대혁명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인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 공화주의, 민주주의라는 3가지 정치체제의 혼합물이다. 한때 <역사의 종말>을 쓴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자유민주주의야말로 신의 형상을 닮은 인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선의 제도라 칭송하며, 이로써 인류의 모든 역사적 진보과정은 끝이 났다고 말했던 적도 있다. 물론 후쿠야마의 주장이 나오자마자, 헌팅턴(Samuel Huntinton)의 <문명충돌론>이 나오고, 정치적 낭만주의에 기반한 각국의 독특한 민족주의 창궐로 인해, 자유민주주의 이후의 세상도 결코 만만치 않는 역사적 갈등과정이 노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문명을 인류가 받아들이면서, 과거와 비교해 넘쳐나는 경제적 풍요로움과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과거역사가 누리지 못했던 오랜 평화시대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인류는 1천년이 넘는 인고의 시간을 가졌다. 자유주의의 기원을 찾아가보면 그 역사적 과정은 1215년 영국의 대헌장 (Magna Carta Libertatum)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헌장은 영어로 “The Great Charter of Freedom"으로 번역된다. 바로 여기서 본격적인 자유란 의미의 ‘Freedom’이란 단어가 나온다. 이후 영국의 자유주의는 계몽주의시대를 거쳐서 1688년 명예혁명으로 완성된다. 그런데 사실 로마교황청의 통치권과 중세 봉건제도하에서 발현되었던 13세기 당시의 ‘자유’는 현재 국민주권하의 일반 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Freedom’하고는 차이가 크다.

 

반면, 1200년 독일의 항구도시 ‘뤄벡’에서 발족해서 西로는 런던, 東으로는 폴란드의 단치히와 러시아의 노브고르드를 연결했던 역내 자유무역벨트였던 <한자동맹>에서 사용했던 독일어 ‘Freiheit(자유)’는 현재의 자유의 개념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전쟁과 약탈의 중세 역사속에서 16개국 187개 도시를 연결했던 한자동맹은, 비록 1669년의 마지막 이사회를 끝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469년 동안 역내 자유무역을 지켜내었다. 북유럽의 한자동맹이 지켜내었던 자유가 바로 인간사회를 연결하는 통상과 거래를 위한 자유였다.

 

 

대헌장과 한자동맹이 언급했던 자유의 개념은 모두 기독교적 보편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그만큼 자유와 자유주의의 발전은 기독교사상을 태생적 근원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 자유는 자유의식을 심장에 품은 근대적 개인의 탄생 사례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1096년에 개교한 영국 옥스퍼드대학에는 7개의 신학대학 (Colleges)이 있다. 그중 하나가 위클리프 홀 (Wycliffe Hall)이다. "종교개혁의 새벽별"로 불리우는 존 위클리프 (John Wycliffe) 성인을 기리는 신학대학이다. 1328년에 태어난 위클리프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수학했고, 역사상 최초로 헬라어로 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 일반인들에게 전파했다. 그는 교황이나 군주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권위와 권력을 사용할 경우,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권위에 복종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며, 성경이야말로 “백성의, 백성에 의한, 백성을 위한” 나라(정부)를 만들 수 있도록, 만백성들에게 널리 전파돼 읽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은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 시민들에게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 문구이기도 하다. 1863년 7월 한여름, 3일 밤낮의 전투로 6만여명의 사상자를 낸 게티스버그 전투를 기념하면서, 미국 링컨대통령이 연설했던 바로 그 내용,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란 표현의 전신이기 때문이다.

 

위클리프는 성경이야말로 믿음의 백성 모두에게 주는 하나님의 메시지라고 강조하며, 개신교의 중심가치인 신과 나(GOD & I)라는 신앙공식이 성립되게 만들었다. 가톨릭이 주도하는 일사분란한 집단의식, 권력행사로서의 제사와 기도 등을 부정하고, 걸어가면서 중얼중얼 혼자 마음속의 신과 대화하는 최초의 인류, 즉 근대적 개인이 바로 이 장면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이후 기독교적 가치를 가진 자유인들의 노력은 1776년 미국독립선언문에서의 천부인권선언으로 이어지고, 그후 1789년 프랑스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인권선언>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런데 근대적 개인의 탄생과 자유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침략으로 점철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제국주의시대는 왜, 어떻게 발생되었을까? 자유를 잉태한 기독교사상과 계몽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인류보편의 인권선언을 근대국가 건설의 핵심적 이념으로 삼았던 구미의 강대국들은 왜, 어떻게 하나같이 냉혹한 제국주의 체제로 나아갔을까?

 

강 · 량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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