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 강 · 호 인간과 침팬지는 유사한 게 많다. 그러나 그 모든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드러지게 다른 인간 특유의 행동양식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교환이다. 대개의 모든 동물이 다 그렇듯 침팬지 세계도 속된 표현으로 힘센 놈이 임자다. 욕망의 충족은 그것이 먹이든 성적 기회든 힘의 서열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인간은 교환을 한다. 인간 세계에도 힘의 서열은 있지만 인간은 욕망의 충족을 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인간은 주고받는 교환행위를 통해 충돌을 회피하며 욕망충족의 기회를 확보하는 법을 안다. 독일의 인류학자 페터 푹스(Peter Fuchs)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에겐 비즈니스 유전자가 있다. 태초에 교환이 있었다 아니 달리 표현하면 교환이 바로 인간의 태초다. 인간은 어떤 계기로 교환이라는 행동양식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로써 다른 모든 유인원과 구별되는 유니크한 존재가 되었다. 교환을 위해선 상호성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창세기 에덴에서 선악과로 눈이 열린 것은 그 비유일 수 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물은 욕망의 존재다. 욕망은 생명력의 본성이며 존재의 권리다. 그것은 그 자체로는 결코 선악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욕망의 추구는 당연히 충돌
이 · 강 · 호 이제 창세기 이야기와는 다른 각도에서 인간을 살펴보자. ‘신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과 가장 유사하다는 ‘침팬지와 인간’이라는 창을 통해서다. 침팬지와 인간, 두 영장류의 DNA는 98%까지 동일하다. 이 2%의 차이가 인간의 그 무엇일까? 그렇긴 하지만 수치상으론 좀 작아 보인다. 사실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지나치게 유사하다. 인간만의 특질로 보았던 많은 요소들이 침팬지 등 대형 유인원뿐만 아니라 그보다 덜 진화한 원숭이에서도 발견된다. “털 없는 원숭이”라니 영국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Desmond Morris, 1928~)는 인간을 아예 “털 없는 원숭이”라고 했다. 영국 포유류 박물관 관장을 지내던 1967년, 그 같은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자극적 제목만큼이나 관심을 끌면서 세계적으로도 히트를 쳤다. 하지만 당시 반발도 좀 세게 일었다. 인간을 그저 ‘짐승’인 양 다루냐는 것일 터였다.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독특성이 “털이 있고 없고“에 있다 하면 좀 짓궂기는 하다. 인간이 스스로를 지나치게 특별하게 여기는 데 대해선 경계가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차이를 아는 게 곧바로 오만은 아니다. 유사해 보이는 존재와의 차이를
정 · 영 · 희 겨울에 내리는 눈 끊임없이 밤을 채우듯 바람은 겨울을 채워갔다. 동구 밖보다 더 먼 곳에서 온듯한 눈송이를 세어 보지도 않고 초라한 가지위에 바람은 서두르듯 덮어가고 잠 못드는 헛기침은 창문에 부딪쳐 찬이슬처럼 죽어간다. 이제 사랑은 끝난거다. 더 이상 외롭지 않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걸었던 주문이 펄럭이는 담요처럼 나의 잠을 재우려 노력한다. 겨울로 가는 파리한 형광등이 푸른 멍처럼 스스럼없이 주저앉고 눈물대신 한 점 죽어가는 시간들이 가슴을 타고 흐른다 깊은 밤처럼, 이제 사랑은 끝난거라고 수없이 스스로에게 위로하며 잠을 청하련다 그런데 서성였던 눈송이는 내 가슴을 떠돌다 아아, 문득 그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2020년 겨울 밤 강 나그네 밤 강 떠나는 그대 나그네 문득 소스라쳐 눈을 뜬 어둠 이름도 없는 또 한사람 세상을 떠나고 그 메마른 영혼 눈이 되어 이 강을 부딪고 또 부딪치는데 나를 두고 떠나가는 그대 나그네 고요히 안아주던 두 손은 바람이 되고 바라보던 미소는 눈물이 되어 흐르고 또 흐르는데...... 그렇게 떠나는 그대 밤 강 나그네 서러운 등대는 마지막 젖은 몸을 태우고 깊은 슬픔은 절망의 파도로 높아 가는데 꿈꾸는 늙은
산타 할아버지는 어쩌다가 우리들 몰래 양말 속에 선물을 두고 가셨을까? 너무나 아름다운 그 마법같은 크리스마스 스토리가 사실이라면... 놀랍게도 이를 역사라고 주장하는 동방정교의 전통을 기반으로, 동화같은 얘기가 나와 소개한다. 대체 어떤 사연일까? 지난 10일 미 「월드트리뷴 라이프」지에 크리스마스 특집인 "몰래 다녀가는 선물전달자, 성 니콜라스, 아동 희생과 이교도 음란과 끝까지 싸웠다"는 Bill Federer의 근사한 칼럼이 실렸다. 내용이 너무 길어 간추려서 소개한다. "86년 그분을 섬겼으나, 저를 선대(善對)치 않으신 일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나의 왕 되신 구주 예수님을 어찌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 AD 155년, 그의 신앙을 부정하지 않으면 죽이라고 명한 로마 재판관 앞에 서서,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늙은 폴리카르포스는 이렇게 맹세했다. (이후 화형으로 순교함. 기자주*) 초기 기독교 300년간, 교회는 수도 없이 혹독한 세속권력의 박해를 받았다. 3세기말 가장 탄압받던 교회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 성 니콜라스다. 카톨릭의 성 베드로처럼, 그리스정교(동방정교) 최고의 성인(聖人)은 성 니콜라스다.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이나 독일의 성 보니파
이 · 강 · 호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다. 그래서 역사서의 첫 장은 인간의 기원에 관한 것인데 대부분의 경우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인류의 첫 조상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진정한 관심은 인간의 진화론적 연대기가 아니다. 인간 진화의 발자취는 역사이기보다는 생물학의 영역이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이 아니라 그 주역으로서의 인간의 어떤 면모다. 때로는 신화의 상징과 비유가 그 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구약 창세기의 에덴동산 이야기가 그런 경우다. 창세기는 서사의 첫 장에 어울리게 “태초에”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인간의 이야기는 창조의 여섯 번째 날부터 펼쳐진다. 에덴동산 이야기 신은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여 에덴동산에 살게 했는데 그들은 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고 그 벌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밖에 나돌아다니기도 힘들게 만든 코로나 때문이든, 귀차니즘 때문이든, 가당찮은 페미니즘으로 조장된 남녀간의 어이없는 반목 때문이든 ... 이유야 어찌됐든 인간관계, 그중에서도 특히 남녀관계 전반이 어려워졌다. 특히 놀랄만큼 많은 젊은이들이 연애를 힘들어(?)하는 시대다. 일본의 "초식남" 스토리는 이제 우리에게도 상식일 만큼 청춘남녀의 상열지사가 사라지는 것에 일본인들이 공포를 느끼게 된 건 오래된 일이다. 우리나라도 아주 모범적으로 그들 사회를 잘 따라가고 있다. 지난 3일, 일본 온라인 매체 "겐다이비즈니스"에 이 문제에 대해 아주 기지 넘치는 어드바이스를 제공하는 칼럼 한 편이 실렸다. 생명보험업계 세계 톱 6%의 좁은 문으로 알려진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 백만달러 원탁회의) 」에 지금까지 수백명의 부하를 보내 온, "영업의 신" 하야카와 마사루씨가 자신의 탁월한 세일즈 경력을 통해 터득한 나름의 법칙들을 남녀관계에 적용해 흥미롭게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이상적인 파트너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에도 사랑에도 통하는 중요한 법칙 「理想のパートナー」など存在しない!?…仕事にも恋愛にも通じる大事なオキテ」" 이라는 제목의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1947년 출판되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하여 탈고할 때까지 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의사로 등장하는 인물 「리유」의 서술로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사태에 대비해 세운 대책들이 불충분하다는 것은 보나마나 뻔한 일이었다...유행병이 제풀에 그치지 않는 한 당국이 생각해 낸 조치들로 다스려질 일이 아니었다” 제1부에서는 동네 쥐들이 햇볕 속으로 나와 죽어가더니 이어서 이상한 증상의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전염병에 대한 경계심이 「오랑」 시민들 사이에 퍼져 나간다. 급기야 도시폐쇄 명령이 내려진다. 등장인물 리유는 사태의 진전을 이렇게 예고한다: “이 세균은 괴상한 것인데요...사실에 있어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사태에 대비해 세운 대책들이 불충분하다는 것은 보나마나 뻔한 일이었다...유행병이 제풀에 그치지 않는 한 당국이 생각해 낸 조치들로 다스려질 일이 아니었다.” 카뮈는 부조리에 대한 그의 메시지를 리유의 입을 빌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합리주의적 능력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들을 파악하고 변변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다. 코로나 팬데
빌보드는 29일(현지시간) 예고 기사를 통해 방탄소년단의 새 미니앨범 'BE'가 이번 주 빌보드 200에서 1위로 데뷔했다고 밝혔다. 빌보드가 인용한 닐슨뮤직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0일 발매된 'BE'는 발매 첫 주 24만 2천장 상당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중 실물 앨범 판매량이 17만 7천장으로 점수 대부분을 차지했다. 디지털음원 다운로드 횟수를 앨범 판매량으로 환산한 수치(TEA)가 3만 5천장, 스트리밍 횟수를 앨범 판매량으로 환산한 수치(SEA)가 3만 장으로 집계됐다. 빌보드는 전통적인 음반 판매량에다 스트리밍 횟수와 디지털음원 다운로드 횟수를 앨범 판매량으로 각각 환산한 수치를 합산해 가장 인기 있는 앨범 순위를 낸다. 음원 10곡을 다운받거나 1천500곡을 스트리밍한 경우 전통적인 음반 1장을 산 것으로 간주한다. 빌보드는 'BE'의 실물 앨범이 한 가지 버전으로만 나왔지만 높은 판매고를 올린 사실에 주목했다. 빌보드는 높은 앨범 판매고를 기록한 다른 앨범들이 구성 방식을 다양화하고 전용·한정판 등을 선보인 것과는 달리, 'BE'는 디지털 앨범과 '디럭스 에디션'이라 불리는 한 가지 버전의 CD로만 이용 가능했다고 보도했다. 첫 주 34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본부장 김대근)와 국립제주박물관(관장 김유식)은 18세기 조선시대 지방관의 제주 고을 순력을 그린 국내 유일의 기록화첩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의 문화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를 지난 11월 20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국립제주박물관 강당에서 개최했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는 1702년(숙종 28년)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이형상(李衡祥)이 제주도내 각 고을을 순력(巡歷, 봄과 가을에 지방관이 관할지역을 순회하면서 방어실태의 점검과 군민풍속을 친히 살피는 것)한 내용과 여러 행사 장면 등을 제주목 소속 화공 김남길(金南吉)에게 41폭의 채색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유배인 오시복에게 설명을 쓰게 한 후 만든 기록화첩이다. 이날 세미나는 보물 제652-6호로 지정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의 연구 성과를 재고찰하는 동시에 국보 승격의 타당성 확보와 공감대 확산을 위해 마련됐다. 총3부로 구성된 세미나는 1부는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의 지도학적•역사적 가치를, 2부는 회화사적•건축학적•문화재적 가치를 주제로 발제와 토론으로 이어졌다. 제3부는 발표자•토론자 및 관련 분야 전문가가 참여한 종합토
그동안 티베트에 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숙원이었다. 그곳의 비현실적인 하늘, 맑디맑은 구름, 광활한 초원은 신비한 유혹으로 가득 차 있다. 첫 줄기의 성결한 햇살이 하얀 주봉을 내리칠 때, 신산 성호가 아침 햇살에 차례로 비칠 때, 산사의 금빛 지붕이 밝게 빛날 때, 포탈라 궁전에 황금빛 옷을 입고 그 위엄을 드러낼 때 특히나 더욱 매력적인 곳이 바로 티베트다. 1949년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티베트는 정교일치(政敎一治)를 기본 통치철학으로 치리하는 사실상 정치적 독립국가였다. 마오쩌둥은 티베트의 독립적 지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막기 위해 티베트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고 중국의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1950년 10월 6일 중공군의 티베트 침공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티베트는 독립국가에서 하루아침에 중공군 관리하에 놓인 일개 자치구가 되었다. 1959년 3월 10일 달라이 라마의 납치 가능성이 제기되자 항의는 무력 충돌로 격화됐다. 17일 포탈라궁 앞에는 부녀자가 대부분인 수천 명의 시위대가 공산당 정권의 점령과 압제에 항의하며 집결했다. 몇 시간 후, 무장한 진압대와 시위대가 충돌했다. 로브링카샤 궁 안에 있던 달라이
이 · 강 · 호 종교와 철학, 그리고 과학 한때 (특히 서구문명에서) 인간의 정신활동의 정점에는 종교와 철학이 함께 했다. 물론 철학은 종종 종교를 비웃고, 종교는 더 자주 신앙이라는 형태로 철학과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종교는 철학을 폐기처분하기보다는 신학이라는 형태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쪽으로 나아갔다. 신학의 시대, 철학은 그 시녀가 됐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철학의 굴욕이 아니었다. 신학은 철학의 신성화였으며 신앙의 철학화였다. 철학은 신앙에 지팡이를 쥐어줘 폭주를 막고, 신앙은 철학에 신성한 망토를 걸치게 하여 통속화를 막고 있었다. 신학은 신앙과 철학의 긴장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학이 제도와 체제가 된 종교의 ‘이데올로기’로 화하면서 위기가 왔다. 경건함을 잃고 성찰을 멈춘 도그마에 신앙은 신뢰를 상실하고 철학은 존경을 버렸다. 고삐를 잃은 신앙은 전투적 메시아니즘에 빠져들고, 답을 찾는 자들은 이제 신학 없는 철학을 향해갔다. 계몽주의는 그에 대한 답이었고, 신학은 그렇게 정신의 왕좌에서 밀려났다. 철학은 처음에는 그것이 자신을 위한 해방인 줄 알았다. 상실했던 고대의 명예를 회복하고 다시 한 번 정신의 왕좌로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