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의 비관론은 21세기 코로나 팬데믹 속에 되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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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1947년 출판되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하여 탈고할 때까지 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의사로 등장하는 인물 「리유」의 서술로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사태에 대비해 세운 대책들이 불충분하다는 것은 보나마나 뻔한 일이었다...유행병이 제풀에 그치지 않는 한 당국이 생각해 낸 조치들로 다스려질 일이 아니었다”

 

제1부에서는 동네 쥐들이 햇볕 속으로 나와 죽어가더니 이어서 이상한 증상의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전염병에 대한 경계심이 「오랑」 시민들 사이에 퍼져 나간다. 급기야 도시폐쇄 명령이 내려진다. 등장인물 리유는 사태의 진전을 이렇게 예고한다: “이 세균은 괴상한 것인데요...사실에 있어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요”; “사태에 대비해 세운 대책들이 불충분하다는 것은 보나마나 뻔한 일이었다...유행병이 제풀에 그치지 않는 한 당국이 생각해 낸 조치들로 다스려질 일이 아니었다.”

 

카뮈는 부조리에 대한 그의 메시지를 리유의 입을 빌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합리주의적 능력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들을 파악하고 변변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있는 21세기 우리사회도 마찬가지 비관론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의사 리유가 환자를 보고 “「유행성 열병」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것은 곧 그 환자를 당장 끌려가도록 만드는 일이 되었다

 

“그때부터 페스트는 우리들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제2부는 폐쇄된 도시에 갇혀버린 오랑시민들의 행동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독 안에 든 뒤가 되었으며 거기에 그냥 적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질병의 무지막지한 침범은, 그 첫 결과로서 우리 시민들을 마치 사적 감정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의사 리유가 환자를 보고 “「유행성 열병」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것은 곧 그 환자를 당장 끌려가도록 만드는 일이 되었다. 그럴 때면 정말 추상과 난전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병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완치되거나 죽기 전에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작가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하여 만들어 내는 추상에 대한 경계심을 리유의 서술을 빌어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리유는 꾸준히, 그리고 새로운 각도에서, 개개인의 행복과 페스트라는 추상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그런 종류의 우울한 투쟁을, 그 기나긴 동안에 걸쳐 우리 도시의 삶 전체를 지배했던 그 투쟁을 계속 추적할 수가 있었다.”

 

기자로 등장하는 인물 「랑베르」는 취재차 오랑에 왔다가 도시폐쇄로 발이 묶이자 아내가 기다리는 파리로 탈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재난지역으로부터 혼자 빠져나가려는 랑베르의 행동에 대하여 리유는 그의 불법적 탈출기도에 공모하지는 않지만 그의 개인적 행복추구 충동에 공감한다.

 

성직자 「파늘루」 신부는 “여러 형제들, 여러분은 그 불행을 겪어 마땅합니다”라고 역설하며, 페스트 재앙이 사악한 인간들에 대한 신의 징벌이고 “그 재앙이 도리어 여러분을 향상하고, 여러분에게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한다.

 

파늘루 신부의 종교적 주장을 서술하는 리유는 오랑시민들의 신앙심에 대하여 “일요일 아침엔 해수욕이 미사에 대해서는 심각한 경쟁 대상이었다”고 그 설득력의 한계를 묘사하고 있다. 리유는 또 다른 등장인물 「타루」가 찾아와 자원봉사자들로 보건대를 구성해 페스트와 싸우자고 제안하며, “선생님은 신을 믿으시나요?”라고 묻자, “믿지 않습니다...나는 어둠 속에 있고, 거기서 뚜렷이 보려고 애쓴다는 뜻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는 “그 병으로 해서 겪는 비참과 고통을 볼 때, 체념하고서 페스트를 용인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눈먼 사람이나 비겁한 사람의 태도일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주장한다.

 

타루와 리유는 페스트에 반항한다는 의지를 공유했다. “문제는 오로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는다든가 결정적인 이별을 겪는 것을 막아주자는 데에 있었다. 그러려면 유일한 방법은 페스트와 싸우는 것이었다.”

 

장례식도 사실상 폐지되었다. 가족에게 통보는 하지만, 알려 봤댔자 대부분의 경우 그 가족도 만약 병자 곁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예방격리를 당하고 있었던 터라 발이 묶여 있었다

 

제3부는 페스트가 절정에 달한 사회상을 그리고 있다. “8월 중순쯤에는 페스트가 모든 것을 뒤덮어 버린 상태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방화와 약탈이 발생하고 절도범 두 명이 총살되었다. 등화관제가 실시되고 해수욕은 금지되었다. 장례식도 사실상 폐지되었다. “환자들은 가족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었으며 밤샘의식은 금지되었으므로, 결국 저녁나절에 죽은 사람은 송장이 되어 혼자 밤을 넘기고, 낮에 죽은 사람은 지체없이 매장되었다. 물론 가족에게 통보는 하지만, 알려 봤댔자 대부분의 경우 그 가족도 만약 병자 곁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예방격리를 당하고 있었던 터라 발이 묶여 있었다. 가족이 고인과 함께 살고 있지 않을 경우에는 그들은 지정된 시각, 그 시체의 염이 끝나고 입관되어 묘지로 떠나려는 시각에나 와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페스트는 모든 경제생활을 파괴했고, 그 결과 엄청난 숫자의 실업자가 생겨났던 것이다...그 시기부터는 사실 곤궁이 공포보다 더 절박하다는 사실을 눈으로 볼 수 있었고...” 우리의 도시에서는 이제는 아무도 거창한 감정을 품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은 단조로운 감정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끝날 때도 되었는데.’하고 시민들은 말하곤 했다.“ 모두들 겸손해졌다.” 작가는 인간이 평소에 당연시 여기는 열정과 자신감이 재앙 앞에 시험받을(tested) 때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 묘사하는 듯하다. 이 소설에서 재앙은 죽음의 위협이고, 그 위협에 처한 인간은 위협의 정체도 이유도 모른 채 허둥대고 있다.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페스트는 도시 전체를 자기 발밑에 꿇어앉혀 놓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제4부에서는 개인적 행복을 찾아 도피하려던 랑베르와 종교적 초월주의를 주장하던 파늘루 신부도 태도변화를 보이며 리유와 타루가 조직한 보건대 활동에 동참한다.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는 “2부에서 페스트에 대응하기 위해 제시된 세가지 태도, 즉 도피, 초월(체념), 반항이 구체적 경험을 통한 반성에 의해...‘반항’이라는 불가피하고 단일한 대응방식으로 집약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분석하고 있다.

 

랑베르는 어느날 리유를 찾아와, “나는 떠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있겠어요”라고 결의한다. 파늘루 신부 역시 보건대 활동에 참여하던 중 예심판사 오통의 어린 아들이 페스트 진단을 받고 부모형제로부터 격리된 채 침대에서 죽어가는 현장을 경험한다.

 

병마와 싸우는 어린애를 지켜보는 동안, 파늘루 신부는 먼저 “결국 죽는 거면서, 남보다 고통을 더 겪는 셈이지”라는 말을 내뱉었다가, 아이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자 슬며시 무릎을 꿇고 “하느님이시여, 제발 이 어린애를 구해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아이가 고통 속에 사망한 후, 강복식의 몸짓을 하고 방에서 나오는 신부에게 리유는 “허,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라고 쏘아붙였다.

 

신부는 “왜 나한테 그렇게 화를 내며 말씀하셨죠? 내게도 역시 그 광경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어요”라고 반응했다. 리유는 이 장면에서 더 많은 의지를 쏟아낸다: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당황한 신부가 리유에게 “당신도 역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계시거든요”라고 위무하자, 리유는 “인간의 구원이란 나에게는 너무나 거창한 말입니다. 내게 관심이 있는 것은 인간의 건강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건강이지요.”

 

리유는 “내가 증오하는 것은 죽음과 불행”이라고 못 박는 말도 한다. 리유가 이렇게 신부 앞에서 종교적 가치를 거부한다는 태도를 명확히 밝힌 후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인 것 같은 병으로 앓으면서도 진찰을 거부한 채 죽어간다.

 

타루는 리유에게 자신이 페스트에 맞서는 보건대를 조직하게 된 동기를 털어놓는다. 타루는 검사 아버지의 직업활동과 관련하여 어릴 적 겪었던 충격으로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참여해왔다는 것이다. 타루는 “혹 사람을 총살하는 것을 보신 일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온 후, “나는 내가 간접적으로 인간 수천명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필연적으로 그러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행위나 원칙들을 선이라고 인정함으로써 나 자신이 그러한 죽음을 야기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리유는 타루의 태도에 공감했고 둘은 가치를 공유하는 친구가 되었다.

 

페스트는 물러가고

 

제5부는 페스트가 물러가고 오랑시가 해방되는 모습을 묘사한다. 회복의 조짐은 4부 끝 부분에서 페스트를 앓던 그랑이 뜻밖에 소생하고 사라졌던 쥐들이 다시 출현하면서 나타났다.

 

보행인의 얼굴에 미소가 배어나고 등화관제가 해제되고 기차와 배가 드나들기 시작한다. 랑베르는 기차를 타고 오랑에 도착한 아내와 재회한다. 그러나 기다림과 환호가 교차하는 동안에 오통과 타루가 페스트로 사망한다.

 

많은 등장인물들의 죽음에 타루가 포함된 데에는 작가의 의도가 있어 보인다. 리유에게 있어 타루는 페스트 또는 죽음에 대한 저항의 동지였다. 타루의 죽음은 부조리에 대항하는 전선의 처절함을 강조하기 위한 작가의 플롯이 아닐까?

 

타루는 리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자신을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독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오늘날 코로나 팬데믹 환경에 사는 우리들에게 적용되는 윤리가 담긴 문장이기도 하다.

 

생명과학으로 생로병사의 비밀을 알아 낼 수 있으리라는 낙관론과 코로나 펜데믹의 끝을 장담할 수 없다는 비관론 사이에 갈팡질팡하고 있는 21세기 인류

 

전쟁, 혁명, 역병은 무지한 인간들을 숙명적 죽음으로 몰아가는 대사변을 일으키곤 한다. 소설 『페스트』는 오랑 시민들이 역병과 맞서는 비폭력적 저항을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 속에서 신을 믿지 않는 리유는 카뮈의 「부조리」 조건 속에서 행동하는 의사이다.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하지만, 아무 대답도 얻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부조리를 이해할 수도 거기서 벗어날 수도 없다. 리유는 근대의술에 의존하여 환자들과 자신의 죽음에 맞서 보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다.

 

이성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우리가 가진 유일한 도구인 이성을 들고 죽음에 저항하는 인생을 참을성 있게 살아가는 의사 리유를 통하여 작가는 부조리한 조건에 처한 인생을 드러내주고 있다. 카뮈의 문제의식은 생명과학으로 생로병사의 비밀을 알아 낼 수 있으리라는 낙관론과 코로나 펜데믹의 끝을 장담할 수 없다는 비관론 사이에 갈팡질팡하는 21세기 인류에게도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임 수 환 <편집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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