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尹 “면목 없고 늘 죄송했다” 朴 “취임식 가능하면 참석”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대구를 찾아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났다. 지난달 24일 박 전 대통령이 사저에 입주한 지 19일 만이다... 이 ‘만남’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와 속내는 여러 갈래일 것이다. 이제 먼 훗날 역사의 냉정한(?) 평가를 남겨두게 됐다. 그리고 바로 이 날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12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이달 내 국회서 통과시켜 다음 달 3일 국무회의에서 공포하는 일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12일 이른바 ‘검수완박’을 내용으로 하는 검찰개혁 법안을 4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당론을 확정했다... 근간에 여러 언론과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膾炙) 되어 동네 강아지와 길고양이들도 고개를 끄덕인다나 어쩐다나. ‘검수완박’(檢搜完剝)... 그 이유와 목적과 목표와 저의까지 너무나 잘 알려졌기에 간단하게 적고 넘어가기로 한다. 이 나라에 '문주주의'(文主主義)의 씨를 뿌린 분과 그 졸개들, 그리고 '대장동'의 대장과 그 언저리들이 가막소에는 절대 갈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 아니던가. 그러나... 즈그들끼리 당론(
우리의 전래동화 중에는 우매한 당나귀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불상을 지고 길을 가던 당나귀가 사람들이 자기 쪽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목에 건 불전함(佛錢函)에 돈을 넣어주니까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건방지게 우쭐대다가 그만 불상을 떨어뜨려 깨뜨리고 만다. 당나귀는 마부에게 채찍으로 실컷 얻어맞는다. 이와는 달리 성경에는 예수님을 태우고 그 소임을 다한 충직한 당나귀가 등장한다.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환영하였는데도 당나귀는 그 환영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것을 알고 조용히 목적지까지 간다. 지도자 및 사회 지도층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자신의 결심을 바탕으로 선출되었거나 임명된 사람들로서, 예수님을 등에 태워 모시고 가는 당나귀에 비유될 수 있다. 그들은 충직한 당나귀로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등에 모신 예수님인 국민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자신을 위해 일을 한다면 주제를 모르고 건방지게 우쭐대다 불상을 떨어뜨려 실컷 얻어맞은 우매한 당나귀의 신세가 된다. 그들이 충직한 당나귀가 될 것인지 우매한 당나귀가 될 것인지는 그 자신이 판단하고 선택한다. 물론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고 또 올바른
기원전 221년 처음으로 대륙의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는 도량형(度量衡)의 통일(統一)이었다. 길이·질량·부피의 단위가 어디서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생긴다. 그래서 시황제는 정복지마다 달랐던 도량형이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여겼으며, 그것이 영토를 합치는 것 이상으로 제국에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렇듯 시황제는 도량형을 통일함으로써 산업과 문화, 더 나아가 국가 발전의 기틀을 닦았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1894년 갑오개혁 때에 새로이 도량형을 통일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도량형이 제 마음대로라면 결국 힘이 있는 자의 이득으로 될 수밖에 없고, 그 손해는 백성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암행어사들은 마패(馬牌) 이외에도 관리들이 도량형을 속이지는 않는지 알아보기 위해 유척(鍮尺)을 들고 다녔다. 저녁 퇴근 시간에 친구와 들른 주점의 삼겹살 1인분의 정량에 차이가 나면 짜증이 난다. 그런데 근간에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의 잣대를 보면서 염량세태를 느낀다. 척도가 엿장수 마음대로 때와 장소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다른 듯하다. 일부 인사들은 특
진(晉)헌공이 여희(~기원전 677)에 속아 태자 신생을 죽였는데 그 위기가 중이(진문공)에게도 바로 미칠 상황이었다. 이에 진문공은 가신들과 적 나라로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개자추(介之推)(달리 개추(介推), 개자(介子)라고도 함)는 진문공을 수행하며 충언에다 헌신을 다해 모셨다. 진문공이 신하 중 하나인 두수(頭須)의 배신으로 먹을 것이 없어 허기져 있을 때 개자추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고깃국을 끓여 주군을 받드는 “할고봉군(割股奉君)”을 하였다. 물론 진문공이 적 나라로 도피할 때에 개자추와 아울러 호언·호모·조최·선진도 함께 하였으며, 이들의 목표는 진(晉)으로 하루속히 돌아가서 국정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진문공이 19년의 방랑을 끝내고 진후(晉侯)가 되었을 때, 개자추를 제외하고 탐천지공(貪天之功)하는 4명 등에만 녹봉이 내려졌다. 하지만 개자추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초연히 노모와 함께 면산에 은거하였다. 그의 노모 또한 사정을 알고서 오히려 웃으면서 "역시 내 아들이야. 암! 선비가 공로를 다투는 건 소인배와 같음이니라"고 하며 독자(獨子)와 함께 한 것이다. 후일 진문공은 이를 깨닫고 개자추를 면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강간·약탈 등 두 달 넘게 이어진 소련 점령군 병사들의 비행과 만행에 격분한 신의주 시민들과 학생들은 1945년 11월 23일 소련군의 총탄을 맞서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소련 측 군사보고서에 따르면, 그날 100백여 명의 학생들이 학살당했고, 7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신의주 학생 의거’··· “소련군이 맨주먹인 어린 학생들을 전투기까지 동원하며 무력 진압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당시 소련군의 여러 만행(蠻行)과 관련해서는 이런 사실(史實)을 간과(看過)할 수 없다. 김일성은 이런 일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소련의 산업 설비 반출에 협력하기도 했는데... 세월이 흘렀다. 세기(世紀)가 바뀌었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부차와 이르핀, 호스토멜 등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민간인 시신을 최소 410구 이상 수습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의 집단 학살과 처형, 성폭력, 고문 등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집단 성폭행을 포함해 총구를 들이대고 위협하거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강간당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역사가 반복(反復)된 건지, 그 나라와 군대가 자랑스런(?) 전통을 제대로 잇는 건지 아리송할 뿐이다. 지난 세기(世紀) 이 땅에 진
“키에르케고르”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한 것과 같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처럼 불행한 것은 없다. 그래서 어느 때나 사람들은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새로운 구세주를 갈망한다. 그 때마다 자신이 세상을 구원할 미륵불이라 하며 나타난 자가 예전에도 있었으며 현세에도 있다. 그들은 경률론(經律論)을 독송하고 의식주(衣食住)를 보시하고 계행(戒行)을 수양하는 등을 한 현존의 미륵불이라 하였으나, 사람들에게 풍요와 안녕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오히려 빈곤과 불안을 가져다주었다. 근간에 우리나라에도 우주의 모든 상서로운 기운을 지닌 듯이 외치며 나타난 한 무리가 있었으며, 평등·공정·정의를 외치며 나타난 또 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어떠한 역경도 이겨나갈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 하였으나, 그렇지 않았다. 모두 미륵불인 것처럼 외쳤지만 사람들에게 자비를 나타내 보이기보다,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며 모두 위선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위선의 태양’과 ‘마지막 잎새’ 태양은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너무 뜨거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그 빛은 눈을 멀게 만들 수도 있기에 인간은 언제나 다른 사물을 통해 태양을 본다. 이는 결국, 인간
인간이 져야 할 무거운 짐들을 지고 험준한 히말라야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오르내리는 지상에서 가장 슬픈 짐승인 '좁교'가 있다. 이 짐승은 인간에 의해 저지대의 물소 암컷과 고지대의 야크 수컷의 이종교배를 통해 태어나서 평생 일만하다가 생을 마감하면서도 지중해 연안에서 짐을 나르는 노새와는 달리 후손도 낳을 수 없다. 인간에게 콩 한 톨도 짐으로 느껴지는 히말라야의 험준하고 높은 계곡과 능선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내리다가 실족하거나 다리가 부러져 죽기도 하면서도 먹는 것은 거친 풀뿐이다. 이와 같이 '좁교'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슬픈 짐승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인간사회에서도 왕권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투표에 의해 선출된 자가 국민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선거운동 기간에는 국민을 하늘과 같이 받들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찬 바닥에 엎드려 꾸벅 절도 하였지만, 당선이 되고나서는 변한다. 헌법과 법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선서하였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의 이득을 향유하는데 그 권한을 행사한다. 국민들로부터 비난이 아무리 많아도, 듣기보다 외면하면서 자신이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국민은 따르기만 하면
“시험발사 승인한다. 3월 24일에 발사한다. 조국과 인민의 위대한 존엄과 명예를 위하여 용감히 쏘라!” ‘백도혈통’(百盜血統) 3대 세습독재자의 ‘명령’에 따라 드디어 북녘의 대륙간탄도탄 ‘화성-17형’이 날았다. 그리고 현장에서 짖어댔다고 했다. “어떠한 군사적 위협·공갈에도 끄떡없는 막강한 군사 기술력을 갖추고 미 제국주의와의 장기적 대결을 철저히 준비해 나갈 것... 나라의 안전과 미래의 온갖 위기에 대비해 강력한 핵전쟁 억제력을 질량적·지속적으로 강화하려는 결심은 확고부동하다...” 여러 언론매체에서 “뉴욕과 워싱턴 등 미(美) 동부 주요 도시 동시 타격 역량”을 떠벌리고 있다. 과연 ‘백도혈통’(百盜血統)이 양키나라와의 한판 승부를, 더구나 ‘목숨을 걸고’ 벌릴 것이라고? 그 대륙간탄도탄을 비롯한 북녘 핵미사일의 최종적·궁극적 표적이 이 나라 수도 ‘서울’이라는 사실은 이미 고전(古典)에 속한다. 한반도 ‘적화’(赤化)의 강력한 지렛대라는 게 적확(的確)한 지적일 게다. 어찌 됐든 간에... “북한의 이번 발사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ICBM 발사 유예를 스스로 파기한 것... 유엔 안보리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강력히 규탄한
마침내 당선(當選)되셨구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축하는 “아닙니다”로 가름합니다. 그 뜻을 충분히 헤아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당신은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백성’(百姓)이 뽑아준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인민’(人民)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서울’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호남’(湖南)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영남’(嶺南)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경기’ ‘강원’ ‘충청’ ‘제주’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여성’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남성’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젊은이’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늙은이’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가난한 사람’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부자’(富者)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노동자’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기업인’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군(軍) 간부’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병사’(兵士)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양키나라’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신은 ‘뛔국’이나, ‘로스께’나, ‘왜국’(倭國) 대통령이 아닙니다. 특히나, 그 무
· 이번 대선은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5년만에 다시 치루어지는 선거이다. 문재인정권은 지난 5년 동안 적폐청산이라는 ‘한국판 정치 숙청’과 돈뿌리기 ‘사육형 정치’를 통해 불안정한 권력을 유지해 왔다. 이번 대선은 자유대한민국의 존폐 여부와 관련된 중대 선거이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경우, 여당은 국회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 변경과 북한과 연합을 추진하기 위해 개헌에 착수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될 경우 합법적으로 대한민국의 체제 변경이 이루어질 것이다. 정권 재창출을 향해 나가던 문재인정권은 불공정의 대명사가 된 ‘조국 사건’이라는 암초에 부딪히게 된다. 조국 사건 수사에 나선 윤석열 검찰총장을 쳐내려는 과정에서 윤석열 총장의 격렬한 저항과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합쳐져서 윤석열 총장은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 박근혜 전대통령은 자신의 탄핵과 수사 문제를 ‘합법성’(legality) 차원에서만 볼 수 없고 '정당성'(legitimacy)의 문제도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고 최근 그의 책에서 지적한 바 있다. 박근혜 전대통령이 윤석열 후보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표명하느냐 하는 점도 이번 선거의 향방을 가르
군사외교안보정책의 상수로 작용하는 지정학측면에서 볼 때, 대한민국은 서남아-중앙아시아-동북아를 잇는 유라시아대륙의 오른 쪽 맨 끝부분에 붙어 있는 특이한 돌출 형 반도국가 모습을 취하고 있다. 국제정치학자들의 관점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손 치더라도, 한반도는 중국의 머리 뒤를 겨냥한 ‘망치’의 모습을 하고 있다든지, 아니면 아래 섬나라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단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지정학적인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런 지정학적 요인이 말해 주듯이, 한반도는 구한말 자국 세력을 확대하려는 강대국들 간의 세력 경쟁 각축장이 되었고, 급기야 청일전쟁(1894)과 러일전쟁(1904)의 대리 전쟁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구한말 당시 대륙 국가였던 청나라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열강들의 피해국이 되었으나, 오랜 세월 조선의 종주국을 자처했던 조공국인 조선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 결과 또 다른 대륙세력인 러시아와 신흥 해양강국으로 부상한 일본과의 과도 경쟁이 불가피했다. 36년간의 식민지 조선은 해양세력과의 동맹을 포기했고, 군국주의 국가가 된 일본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연합세력에게 패전하면서 비로소 해방된다. 해방된 조선은 대륙세력의 종주국인
민족지상주의와 평화이상주의에 의한 환상적 착시현상은 우리 국가안보와 남북관계에 현실적 문제들을 적잖이 배태시키고 있다. 인류의 염원인 평화는 단순한 평화협정이나 평화 메세지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수많은 전쟁의 역사를 통해서 뼈저리게 경험해왔다. 민족지상주의자들의 평화에 대한 환상적 집착은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라는 얘기를 떠 올리게 한다. 왜곡된 인간의 감성은 어리석은 시행착오를 향한 배에서 내릴 줄을 모른다. 모름지기 평화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 하는 것이고, 지켜내는 것은 단순히 메세지나 협정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히틀러에게 굴종적 평화를 구걸하고 그것이 ‘이 시대의 평화’라고 믿었던 체임벌린의 평화, 2000년 6월 평양을 다녀오면서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라고 확신에 찼던 김대중의 평화, “평화는 강자의 특권이다”라고 한 윈스턴 처칠의 일갈을 새겨봐야 한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민족공조’에 대한 집착과 망상 또한 한반도에 합리적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에게 혁신적 각성제가 필요함을 일깨워 준다. 실체가 없는 민족지상주의의 환상이 남북관계에 합리적인 진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