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21년 처음으로 대륙의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는 도량형(度量衡)의 통일(統一)이었다. 길이·질량·부피의 단위가 어디서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생긴다. 그래서 시황제는 정복지마다 달랐던 도량형이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여겼으며, 그것이 영토를 합치는 것 이상으로 제국에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렇듯 시황제는 도량형을 통일함으로써 산업과 문화, 더 나아가 국가 발전의 기틀을 닦았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1894년 갑오개혁 때에 새로이 도량형을 통일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도량형이 제 마음대로라면 결국 힘이 있는 자의 이득으로 될 수밖에 없고, 그 손해는 백성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암행어사들은 마패(馬牌) 이외에도 관리들이 도량형을 속이지는 않는지 알아보기 위해 유척(鍮尺)을 들고 다녔다.
저녁 퇴근 시간에 친구와 들른 주점의 삼겹살 1인분의 정량에 차이가 나면 짜증이 난다.
그런데 근간에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의 잣대를 보면서 염량세태를 느낀다. 척도가 엿장수 마음대로 때와 장소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다른 듯하다. 일부 인사들은 특히 언행에 있어서 자신과 타인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달리할 뿐만 아니라, 이전과 지금의 잣대를 달리한다. 그러면서도 남의 잣대가 잘못되었고, 자신의 잣대는 늘 한 치의 틀림도 없다고 강변한다. 길가의 돌팔이 점쟁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는 않는데, 이들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한다.
바른 인격을 갖지 못한 파렴치에 언행불일치의 잣대를 가진 자에게 공익(公益)의 공적(公的) 자리는 사익(私益)의 사적(私的) 자리를 위한 디딤돌로 쓰여 질 것이다. 우리 사회에 그러한 예는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이 있었으며, 이는 상식의 잣대로 재더라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사회 지도층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는 "굽은 자로 줄을 그으면 굽은 줄이 그어지고, 곧은 자로 줄을 그으면 곧은 줄이 그어진다"는 잣대의 진리를 한 번이라도 마음에 새기게 했으면 한다.
이는 바르지 못한 마음에 바른 일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深 · 思 · 翁 (심사옹)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