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래동화 중에는 우매한 당나귀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불상을 지고 길을 가던 당나귀가 사람들이 자기 쪽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목에 건 불전함(佛錢函)에 돈을 넣어주니까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건방지게 우쭐대다가 그만 불상을 떨어뜨려 깨뜨리고 만다. 당나귀는 마부에게 채찍으로 실컷 얻어맞는다.
이와는 달리 성경에는 예수님을 태우고 그 소임을 다한 충직한 당나귀가 등장한다.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환영하였는데도 당나귀는 그 환영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것을 알고 조용히 목적지까지 간다.
지도자 및 사회 지도층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자신의 결심을 바탕으로 선출되었거나 임명된 사람들로서, 예수님을 등에 태워 모시고 가는 당나귀에 비유될 수 있다.
그들은 충직한 당나귀로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등에 모신 예수님인 국민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자신을 위해 일을 한다면 주제를 모르고 건방지게 우쭐대다 불상을 떨어뜨려 실컷 얻어맞은 우매한 당나귀의 신세가 된다.
그들이 충직한 당나귀가 될 것인지 우매한 당나귀가 될 것인지는 그 자신이 판단하고 선택한다. 물론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고 또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유감스럽게도 지도자 및 사회 지도층 중에는 우매한 당나귀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자신의 등에 진 불상, 즉 법에 의해 부여된 권한이 없어지는 순간에 사람들이 우매한 당나귀에게 절을 하거나 목에 건 불전함에 돈을 넣어주지도 않고 패듯이, 이런 지도자 및 사회 지도층에게는 비난만이 기다린다.
법에 의한 권한은 그 직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부여된 것이지 그 직의 권리를 향유하도록 부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우매한 당나귀와 같이 행동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더 나아가 법에 의한 권한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설쳐대는 이들도 있다.
역사에서 우매한 당나귀와 같은 지도자 및 사회 지도층이 간혹은 떼거리로 오직 법에 의해 부여된 일만을 하는 충직한 당나귀를 몰아내려고 온갖 모욕과 추잡한 짓거리를 하였지만 그것도 유한(有限)이었다. 또 우매한 당나귀와 같은 자들이 국민을 무시한 채 세치의 혀로 조금의 스스럼도 없이 저지른 죄는 역사기록에 주홍글씨로 적혀있다.
이와 같이 세상 어느 역사에서 보더라도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고 사초개서(草事改書)를 하는 등으로 잘못을 일시 덮었지만, 후일에 그 잘못은 낱낱이 드러났다.
자신이 맡은 바가 공적인 자리, 예를 들면 얼마 전의 LH 등과 같은 공공의 자리라면 선공후사(先公後私) 하지 않으면 부패로 패가망신 한다.
그러니 지도자 및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 특히 사회에서 큰 책임의 자리를 맡고 있는 자들은 우매한 당나귀가 아니라 충직한 당나귀가 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 직에 따른 권한이 없어지는 순간에 채찍만이 기다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억겁(億劫)의 공든 탑도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각오로 일순간의 흐트러짐도 없이 부여된 권한을 그 직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만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深 · 思 · 翁 (심사옹)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