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에는 사람의 죽음과 관련하여 “人固有一死 或重于泰山 或輕于鴻毛 用之所趨異<인고유일사 혹중우태산 혹경우홍모 용지소추이>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쓰는 바가 달라서다”라고 쓰여 있다. 이는 모두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삶에 있어서 헛된 죽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인간은 세상에 벌거숭이로 공수래(空手來) 해서, 인연을 일기일회(一期一會) 하여, 제행무상(諸行無常) 하며, 인연을 회자정리(會者定離) 하고, 주머니 없는 수의에 공수거(空手去) 한다. 이것이 모든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이지만, 몇 년 전에 현직 서울시장이였던 박원순과 현직 공군대위였던 심정민의 죽음이 있었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부하직원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을 매어 삶을 달리 함으로써 죽음의 무게를 홍모(鴻毛)보다 가벼이 하였다. 반면에 공군대위 심정민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가의 국민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전투기 조종간을 움켜쥐고 삶을 달리 함으로써 죽음의 무게를 태산(泰山)보다 무겁게 하였다. 서울시장 박원
유럽의 변방에 불과하였던 척박한 섬나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다. 프랑스 혁명시대에도 나폴레옹은 파리이공과 대학을 설립·운영하였으며, 많은 자금을 투입하면서 과학에 대한 연구를 적극 지원하였지만 프랑스는 산업혁명을 선도하지 못하였다. 영국은 옥스퍼드 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에서 과학에 대한 연구의 지원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산업혁명을 선도하였다. 역사학자 알프레드 크로즈비가 “태양의 아이들”이라는 책에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이유의 하나로, “장인들이 가진 기술의 가치를 인정해 준 것에 있다”고 했듯이, 영국은 “재산권으로서 특허권”을 제도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 초기의 과학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였거나 기술발전에 그다지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에 미치지 못하였다. 오히려 기술이 먼저 발전하고, 이에 자극을 받은 과학자들이 기술자들을 뒤좇아 연구를 할 정도였다. 영국의 기술혁신을 선도한 와트, 트레비식, 스티븐슨 등도 원래 과학자도 아니었다. 학교에 다닌 적이 한 번도 없거나 기초교육만 겨우 받은 기계공이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과학자들보다 앞서 기술을
거의 대부분의 언론매체에 처절한 사진들이 실렸다. 지난 2019년 11월 오후 판문점에서 벌어진 사건을 찍은 것들이다. 저잣거리에서는 ‘문주주의’(文主主義)의 진면목을 보는 듯하다고 수군거린다. 입에 게거품을 물었던 ‘사람이 먼저’는 과연 ‘어떤 사람’이 먼저였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저들이 그 ‘어떤 사람’ 이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튼... 다시 그 시절을? 상상조차 끔찍하지 않은가. 이런 와중에... “코로나 재확산에 따라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던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하루만에 재개했다...” 바뀐 시절을 대표하는 일상의 하나였다. 그걸 잠정 중단한다고 하자, ‘문주주의자’(文主主義者)들은 비난을 쏟아냈다고 한다. 한다고 해도 궁시렁, 당분간 쉰다고 해도 비난... 늘 상, 거의 모든 일에 있어 온 관행이라고나 할까. “여러 실언이 지지율 저하로 이어진다고 평가한 것 같은데 정제된 방식으로 방법을 고민하겠다는 것이 솔직할 것...” 지방선거 참패 이후, ‘그 당’의 오물(汚物) 청소를 맡으셨다는 비데위원장의 말씀이었단다. 글쎄, 그리 진심 어린 걱정과 배려가 있었다면 달리 방법이 있
지금까지는 2개의 패권주의 국가, 미·중의 군사·경제 패권전쟁은 지정학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나 이제는 첨단과학기술 패권전쟁으로 옮아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과 같은 첨단과학기술을 자국존립의 전략자원으로 진단·인식하고 그 기술의 타국이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정학적 약점을 가진 우리나라가 인류발전에 지속적인 공헌을 하면서 자주적인 존립을 보존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국가 지도자를 비롯한 지도층이 첨단과학기술에 대해 냉정하고 장기적 안목을 가졌는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진단·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중국은 국가가 통제적 지도권을 가지고 첨단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을 주도하면서, 거의 미국에 필적하는 금액을 투입하고 있으며 연구자 수는 이미 미국의 연구자 수를 넘어서고 있다. 반면에 중국이 논문·특허 등의 양적인 지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아직 핵심 첨단과학기술에 있어서는 서구 선진국, 특히 미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중국에 비해 미국은 압도적인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 많은 외국태생의 우수한 유학생과 연구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연구개발의 성과물
어차피 ‘박힌 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굴러온 돌’은 더욱 아닌 듯했다. 누군가가 주어왔다는 표현이 어울릴 거 같았다. 주울 때는 보석(寶石)처럼 보이기도 했다. 언뜻 보석으로 빛을 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근본은 ‘모가 많은 짱돌’이라는 평이 대세였다. 나이가 든 세대에서는 학벌(學閥)과 인성(人性)이 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세간의 속설을 들이대곤 했다. 그리고... 중요한 선거(選擧)가 두 번이나 지나갔다. 그런 면에서는 운(運)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재주보다는 재수가 좋았다고나 할까. 어엿한 여당(與黨)의 대표가 됐다. 그 재수가 기고만장(氣高萬丈)을 불렀는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의혹’이 불거졌다. ‘의혹’을 제기한 군상(群像)도 그 ‘주운 돌’에 비해 크게 훌륭한 인품(人品)을 가진 작자들은 아니었다는 게 저잣거리의 평이다. 한마디로 ‘갸가 갸’였다. 마침내... “성 접대를 받은 적도 없고, 증거인멸을 시킨 적도 없다” 그 무슨 ‘윤리위원회’에서 주절댔다고 했다. 그 위원회를 전한 언론 기사(記事)가 “OOO 이라고 알려졌다”는 투이고 보면 비공개가 확실하지 싶다. 그 의혹을 알고 있으나, 기승전결(起承轉結)까지 철저히 챙길 필요가 없었
배가 불룩하고 덩치가 큰 TV의 브라운관을 퇴출시킨 평판 디스플레이 산업을 살펴보자. 일본의 디스플레이 기업인 파나소닉과 샤프는 PDP와 LCD에 있어서 한 때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최강이었다. 파나소닉의 PDP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LCD에 비해 처음에는 패널의 대형화 등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였으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LCD에 있어서의 기술적 난제를 극복하고 패널의 대형화를 이뤄내면서 가격 경쟁력 등에 뒤처져 몰락하였다. 샤프의 LCD는 시장 트렌드에 바로 적응하는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놓친 투자와 중국의 LCD 및 우리나라의 OLED 등과의 가격 경쟁력 상실로 쇠퇴하고 몰락하였다. 파나소닉과 샤프가 시장 트렌드에 바로 적응하는 변화와 혁신에 실패하면서 무너져 갔듯이 일본의 다른 전자기업도 마찬가지로 무너져 갔으며, 전자왕국 일본은 그 패권을 대한민국에게 넘겨주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살펴보자. 일본은 한 때 전자왕국이었으면서 세계의 반도체 시장을 거의 제패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산업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반도체인 집적회로는 크게 스택 방식과 트랜치 방식으로 제조된다. 이 두 기술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
위대한 발명가이자 과학자인 토마스 에디슨은 동료였던 니콜라 테슬라와 전력의 송전 방식을 둘러싸고 1880년대 후반에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에서 패하였지만, 1892년에 자신의 “에디슨 전지회사”와 “톰슨휴스톤 전기회사”를 합병하여 제너럴일렉트릭(GE:General Electric)을 창립하였다. GE는 거의 130년 동안 세계의 전기 산업계를 제패하였으나, 2001년 전설의 경영자 잭 웰치가 물러난 후 20년 만에 크게 항공-헬스케어-에너지 등 3개 분야로 분할되면서 그 종언을 맞이하였다. GE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따른 시장 트렌드(trend)에 바로 적응하는 변화와 혁신에 실패하면서 몰락했다. 마치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면서 몸집만 키운 거대한 공룡이 기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멸종한 것과 같이, 발명왕 에디슨의 명성을 뒤로한 채 GE도 같은 전철을 밟은 셈이 되었다. 카메라 산업에서 코닥-폴라로이드-후지필름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코닥은 1935년에 카메라의 필름을 생산하기 시작해서 2012년 종언을 맞이할 때까지, 1970~1980년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최초로 개발하였다. 하지만 이의 활용을 주저하고 과거의 필름 시장에 대한
어느 국가나 국민을 대표하는 우두머리를 두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승계에 의한 제왕과는 달리 직간접 선거를 통해 자신의 우두머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우두머리 중에서 가장 대표가 될 수 있는 대통령은 정해진 선거법에 의해 출마해서 다른 사람보다 한 표라도 더 많은 표를 얻으면 된다. 선거에서 어떻게든 잘 기획된 전략으로 다른 사람보다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되는 대통령은 어느 누구나 힘들기는 하지만 쉽게 될 수도 있다. 다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 현실을 위한 국가유지의 관리자 보스를 넘어, 미래를 위한 국가개혁의 개척자 리더는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이것도 세상사 모든 것은 자신 스스로 행하기 나름인 것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자신 스스로 행하기 나름이다. 보스는 “개라도 권력을 가지게 되면 그를 따른다”는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말과 같이, 권력을 가지고 사람을 복종시킨다. 하지만 리더는 헌신을 통해 쌓은 성과로부터 나오는 권위로 사람을 추종하게 한다. 또 보스는 자신의 능력만을 써서 일을 추진하는 권력을 가지지만, 리더는 한(漢)나라 고조 유방과 같이 행정의 소하(蕭何), 전략의 장량(張良), 군사의 한신(韓信) 등 타인의 능력을 알아보고 써서 일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대통령 기록물이다. 대통령 기록물 지정 법률의 입법 취지는, 국내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의 외교·국방·안보 등과 관련된 기록물이 함부로 공개됨으로써 논란이 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물러나는 정권은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하고 떠나버렸다. 예를 들면, 바로 지난 정권에서도 영부인 옷값 등의 특수활동비 내역 등에 대해서는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시민단체에 의한 헌법소원과 가처분신청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국민들은 물러난 정권에서 잘한 것과 못한 것을 알고 싶어도 알 수 있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고, 또 새로이 들어선 정권조차도 물러난 정권에서 잘한 것과 못한 것의 참고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그 입법취지를 벗어난 지나친 대통령 기록물 지정은 국민에게 이득을 가져다주기보다 오히려 피해만을 남기고 있다. 근간에 약 2년 전의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서해상 피살 사건을 두고서 “실수에 의한 추락”이니 “자의에 의한 월북”이니 하고 논란이
독일의 민요에 “나는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목숨의 길이는 모른다”는 것이 있다. 그런데,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르고, 또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도 알려고 애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많다. 하지만, 모두들 자기 나이에 대해서는 조금은 민감하다.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또 몇 해 동안 어떤 일을하며 살아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몇 해 동안 어떤 보람있는 일을 하며 살아왔는지가 중요하다. 바꾸어 말하면, 얼마만큼 나잇값을 하며 겸손하게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며 살아왔고, 나이를 먹어 가면서 이승이 아닌 다른 세상을 향해가면서 바른 노자로 준비를 하는지가 중요하다. 문제는 나잇값이다. “나잇값을 해라, 나이 헛먹었나”라고 하는 말이 있다. 이는 나잇값이 비운 밥그릇 숫자에 따라 그냥 거저 얻어진 헐값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이는 그 나름대로 상당한 값이 나간다. 고래로부터 언제 어디서나 변치 않는 진리다. 나이가 많은 분에게 함부로 대하다간 큰코 다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나이가 많은 것은 적은 것보다는 그냥 값이 더 나갈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격
옛날 어르신들에 따르면 “마음 씀씀이는 넓은 바다의 물과 같고 입은 태산처럼 무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널리 마음을 쓰고 입은 무겁게 하라는 뜻으로 “입이 바로 화의 문”이라는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과 상통하는 말이다. 그래서 조물주는 가벼이 말하기보다 듣기를 중시하고, 또 말을 함에 있어서 자신을 낮추고 치우치지 말라는 뜻으로 귀와는 달리 얼굴의 중앙 아래에 횡으로 편평한 단 하나의 입만을 가지게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자가 정치인과 기업인, 언론인 등의 존안(存案) 자료를 뜻하는 이른바 ‘국정원 X파일’의 존재를 언급하질 않나, 사사건건 새정부의 국정운영에 훈수 아닌 훈수를 두는 것을 보면, 마치 영양분을 받아들여야 입을 노폐물 내뱉는 항문처럼 쓰고 있음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어느 때인가부터 탐욕을 성실한 능력이라 하고, 망언을 강직한 성품이라 하는 것이 나타나더니, 근간에는 국가의 최고위층을 지낸 자의 입에서 분뇨가 터져 나오고 있다. 마치 이렇게 하는 것이 시류를 잘 좇아 훌륭한 막후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오랜 세월을 산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지는 것은 보지 않아야 할 것은 보지 말라
사람마다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독선의 창을 통해서 무엇을 보고 느낀다. 이것은 자신의 삶의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남이 이야기 한다고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 남들을 받들기보다 남들로부터 받들려져 온 삶에서, 남의 간섭을 그다지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독선의 창이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공양이나 봉헌 등에 단 한 번도 빠지거나 지각하는 일이 없이 정진하는, 속세를 멀리한 일부 수도자, 즉 신망을 받고 있는 신부님·수녀님·스님·목사님 등에게 많이 나타난다. 또한, 자신의 글과 말만 보았을 때에 인격에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이는 일부 문필가나 학자 등에게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사회적 선망의 지위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받고 있는 일부 국회의원·장차관·판검사 등에게 많이 나타난다. 이들은 대체로 현실 세계의 일반인이 가지는 보편타당성이 결여된 독특한 독선의 창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대로만 말하고,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만 듣고, 자신이 행동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하는 것을 원한다. 이는 남을 의식하는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비롯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