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북한의 뮐러, 김원홍을 소환하다①

- ‘보위사령부’와 ‘국가보위부’의 갈등과 대립
- 북한판 토사구팽(兔死狗烹)... 장성택 뒤를 잇다

 

2013년 11월~12월 사이 김정은의 직접적인 지시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진행했던 장성택 행정부장의 처형에는 북한의 뮐러라고 불리우는 당시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이 있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장성택의 처형에 성공한 김원홍... 그후 2019년 6월 황병서와 함께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잠시 독일 나치의 뮐러와 북한의 김원홍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한번 살펴보자.

하인리히 뮐러(독일어 : Heinrich Müller, 1900년 4월 28일 ~ 몰년 미상)는 독일의 경찰관으로 바이마르 공화국 및 나치 독일 시기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나치 독일의 비밀국가경찰(게슈타포) 총수가 되어 유대인 학살과 관련하여 홀로코스트의 계획 및 실행에 관여했다.

히틀러는 자신의 정적들을 체포, 처형하는데 게슈타포의 뮐러를 적극 활용하였다. 수많은 공을 세운 뮐러는 히틀러의 각별한 신임속에 승승장구하였다.

 

 

뮐러는 1945년 5월 1일 베를린의 총통 지하벙커에서 히틀러를 끝까지 보좌한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히틀러의 자살로 나치독일의 모든 것이 끝났지만, 지하벙커를 지켰던 뮐러의 소재는 지금까지도 밝혀진 바가 없다. 구 소련이 붕괴되고 전범자 아이히만 등이 체포, 단죄되었음에도 뮐러의 소재는 여전히 미궁속이다.

 

바로 이같은 이유로 인해 북한의 김원홍은 나치독일의 뮐러와 같이 김정은의 정적들을 차례차례 무너뜨리며 김씨 왕조의 권력을 공고히 한 공로가 실로 크다고 할 것이다. 다만 행방불명으로 미궁속에 있는 뮐러와는 달리, 북한식 ‘토사구팽(兔死狗烹)’의 전형을 보여주는 김원홍 처형이 그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것이다.

 

               

 

북한의 뮐러 김원홍이 김씨 왕조를 위해 활약한 과정을 살펴보자.

김원홍은 원래 국가안전보위부와 항상 쌍벽을 이루며 상호간 긴장, 대립관계에 있던 ‘보위사령부’ 출신이다. 인민군 보위국이었던 ‘보위사’가 전격 보위사령부로 승격한 배경에는 바로 1993년 ‘프룬제 군사대학사건’이라는 구 소련 유학생들의 쿠데타 모의 사건이 있다.

 

 

당시 소련의 군사학교와 군사아카데미에서 유학생활을 한 군사간부들이 김일성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정변을 준비중이었는데, 이를 보위국 반탐(反貪)책임자였던 김원홍이 실무 지휘하여 일망타진했고, 그 공로로 인해 인민군 보위국이 보위사령부로 승격했음은 물론이고 그후 자신은 보위사령관-국가안전보위부장까지 승승장구했다.

 

원래 국가안전보위부의 위상과 권한이 보위사령부보다 모든 면에서 한수 위였지만, 보위부의 위상이 보위사령부에 위축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통치자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조직의 위상·권한이 전혀 달라지는 북한체제의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이 북한의 통치자로 되면서, 김원홍을 국가안전보위부장에 앉히며 보위부에 막강한 힘을 실어줬다. 그 첫번째 조치가 그간 득의양양하던 보위사령부 상층부의 부정부패행위들에 대한 척결을 단행케 한 것이었다.

 

2012년 5월 어느 날 새벽, 만수대 거리에 새로 선 건물들 옆을 지나던 김정은이 아파트 주차장에 군번호판을 단 승용차들이 주차한 것을 보고, 저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주차장의 승용차들은 어느 군부대 차량들인가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수행원이 살펴본 후 보고하기를, 아파트에는 보위사령부의 일군들이 살고 있고 주차장의 차량들도 보위사령부 소속 차량들이라고 보고했다. 대노한 김정은은 옆에 서있던 김원홍에게 ‘군인들이 왜 여기에 살고 있냐, 여기가 인민군 부대냐’ 라며 철저한 조사를 명령했다고 한다.

 

 

명령을 받은 김원홍은 체포조를 즉시 출동시켜 자신의 친정인 보위사령부 소속 입주민들을 모조리 체포하였으며, 그들이 사는 아파트는 몰수하여 영화, 예술인들에게 선물로 나눠줬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로 보위사령부를 총정치국에서 직접 관할하는 인민군 보위국으로 다시 강등시켰는데, 그 중심에 바로 김원홍이 있었다. (계속)

 

 

김 · 성 · 일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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