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한 집단을 이끄는 성직자와 지도자는 그에 어울리는 자격을 갖추고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가 있다. 종교의 성직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지만, 국가의 지도자는 국가의 보편적 가치인 국민의 이익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와 같이 성직자와 지도자는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가 서로 다르다.
성직자와 지도자의 자격에 있어 중요한 것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성직자는 신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주관적이며 치우친 사고를 가지고 있어도 되지만, 지도자는 국익적 관점에서 국익을 지키기 위해 객관적이며 치우치지 않는 사고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또한 성직자는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을 가져야 하지만, 지도자는 이성에 호소할 수 있는 차가운 머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간혹 지도자가 성직자인 것처럼 행동하다 국토를 황폐하게 하고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지도자가 갖추고 지켜야 할 점에 대해 몇 가지 살펴본다.
지도자는 자신의 이익보다 구성원 모두의 이익이 먼저이기 때문에 자신의 자존심보다 구성원 모두의 자부심을 우선시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구성원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줌으로써 일부 구성원이 아닌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지지를 얻는다. 그리고 구성원으로부터 감성적 선동이 아닌 이성적 공감을 얻고서 어떠한 일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구성원으로부터의 이성적 공감이 아닌 감성적 선동에 의한 일시적 지지를 얻는 지도자는 독단과 독선에 이르러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특히, 지도자가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행동하고 싶은 것만 행동한다면, 주위에는 지도자의 눈을 멀게 하는 간사한 모리배가 들끓을 것이다.
지난 정부시절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에 지도자가 객관적이며 이성적인 공감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동안에, 죽창가((竹槍歌)를 부르며 반일(反日)의 죽창을 들어야 한다고 주관적이며 감성적 선동을 한 후한(後漢)의 십상시(十常侍)와 같은 모리배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지도자는 구성원 모두의 자부심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우선시하며 우왕좌왕하다가 국가산업을 아주 어렵게 하는 지경으로 내몰았다.
국가 간에는 이익이 있을 때에 선린우호(善隣友好)가 유리하지만, 그 이익이 없어지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을 헌신짝 버리듯이 그냥 버린다. 저쪽의 지도자는 객관적 판단, 이성적 공감의 행동을 하는데, 이쪽의 지도자가 그러하지 못하면서 저쪽의 지도자를 신의가 없다느니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의 바지 속의 것도 아닌 남의 바지 속의 것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손자의 화공편(火攻篇)에 “노여움으로써 군대를 일으키지 않아야하고, 분노로써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이득이 있다면 움직이고 이득이 없다면 멈춰야한다.”고 하였듯이, 먼저 자신에게 어떤 강점 및 단점이 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리고 지도자는 자존심을 버리고 타국으로부터 자국이 헌신짝처럼 버려져 국민의 삶이 피폐하게 되지 않도록 차가운 머리로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한다.
이번의 국가의 지도자는 이런 점을 늘 가까이 했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채 · 시 · 형(蔡時衡) <자유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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