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2년을 맞으며

-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참혹한 전쟁
- 컴퓨터 게임하듯 전쟁을 말하는 세태
- 혼연일체만이 노예에서 벗어나는 길

 

북한군의 침략에 의해 3년간 지속된 참혹한 6·25전쟁이 일어난 지도 벌써 72년을 맞이한다.

이 전쟁에서 한국군 및 유엔군의 인명 피해를 살펴보면, 전사·부상·실종 및 포로는 대략 17만 6천명·55만 4천명·4만 3천명으로 전체 77만 3천명이었다. 전사·부상·실종 및 포로 중에서 한국군은 대략 13만 8천명·45만 1천명·3만 3천명으로 전체 62만 2천명이었으며, 유엔군은 3만 8천명·10만 4천명·1만명으로 전체 15만 2천명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민간인 인명 피해를 살펴보면, 사망·학살·부상·납치·행방불명은 대략 24만 5천명·12만 9천명·22만 7천명·8만 5천명·30만 3천명으로 전체 98만 9천명이었다. 이 수치에 포함되지 않는 기아·질병 등으로 인한 민간인의 인명 피해까지 고려한다면, 한국군과 민간인의 전체 피해는 약 2백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 발발시의 한반도의 인구는 대략 3천만명 남짓이었으며, 한국은 2천만 조금 못 미치는 정도였으니 인구의 10%가 희생된 것이다. 당시 가족 구성이 농업경제의 대가족이었음을 고려하면 4촌내에 피해자가 없는 집안이 거의 없다시피 한 아주 참혹한 전쟁이었다.

특히, 낙동강을 경계로 한 영남지방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인명 피해가 적었던 점을 고려하면, 타 지역에서는 거의 모든 집안에서 희생자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 참상은 인터넷에서 6·25 전쟁과 관련한 사진 등을 통해서 바로 볼 수 있지만, 사진으로 남지 않은 이성을 상실한 인간의 광기에 의해 저질러진 여러 참상은 더 참혹하였으며 지옥이었다. 전쟁 중에 저질러진 방화·약탈·절도·강간·살인 등은 그나마 글과 말로는 표현할 수 있지만, 집단학살과 부모·형제 등 혈육의 살상은 글과 말로는 도저히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지옥 그 자체였다.

 

근간에 지구상에서 여러 전쟁이 있었지만, 이라크 전쟁은 거의 일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혹함과 함께 특히 노약자·부녀자·어린이의 희생이 많았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도 매우 참혹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그 참상은 뉴스를 통해 보듯이 특히 노약자·부녀자 및 어린이의 희생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모든 산업시설이 파괴되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이전에 있었던 베트남 전쟁은 혹독하리만큼 참혹하였으며, 이성을 상실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광기가 드러난 지옥 그 자체였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 및 ‘플래툰’은 이성을 상실한 광기에 의해 저질러진 참상을 스크린에 비추고 있지만, 실제의 전장에서는 더 참혹하고 눈뜨고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예를 들면 임신부가 손을 잡은 아이와 함께 포탄에 맞아 창자와 머리는 터져서 피를 뿜고 사지는 찢겨져 피를 튕기며 날아가거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있었던 동료·친구·혈육이 한 순간의 포탄에 의해 온 몸이 완전히 찢겨지고 흩어져 날아가서 핏자국의 흔적조차 제대로 찾아볼 수 없는 등의 참상이다. 물론 6·25 전쟁 또한 인명 피해를 살펴보면 더 참혹하였으면 참혹했지 덜 참혹하였다고 말할 수 없다.

 

 

현재 6·25 전쟁을 경험한 분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생존해 계시는 분이 많지 않아서, 일반인들은 전쟁의 참상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인지 전쟁을 쉽게 말한다. 그리고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전쟁을 이야기 하면서도, 정작 전쟁이 발발했을 때에 스스로는 군복으로 갈아입기는 자청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히나 제2연평해전 및 천안함 피격에 따른 희생자들의 예우를 보고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개죽음의 처우를 받기보다 잠깐은 불명예지만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여기는 이가 없지 않다. 이와 같아서는 또다시 북한군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승패는 불문가지이다. 즉, 한국의 모든 사람이 노예가 되는 길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최근 6·25 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열흘이 멀다하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무기 실험을 준비하며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마치 휴전 중인 상태를 깨뜨리고 바로 전쟁을 개시할 듯이 위협을 하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북한과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는 군은 정치·행정하는 군이 아닌 전투하는 군으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자신의 희생도 반드시 동반하는 전쟁에서,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싸울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이길 수 있는 전력을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 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외면하고서 국민들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없으므로, 어떠한 전쟁에서도 이기기 위해서는 지도층이 앞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일반 국민과 일치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총으로 하는 것이기에, 어떠한 전쟁에서도 이기기 위해서는 지도층과 일반 국민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에 발발한 6·25 전쟁의 참상을 되새기며, 다시는 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쟁에 패배한 나라에는 남자는 노역에 희생되고 여자는 성적 학대에 희생되는 노예만 남는다.

전쟁의 승패는 단순히 무기의 우위에 의해 결정되기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과 이를 따르는 국민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잊는다면 전쟁에서 패자는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6·25 전쟁 72년을 맞으면서 다함께 꼭 기억하자.

 

채 · 시 · 형(蔡時衡)  <자유기고자>  

 

              ※ 초청시론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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