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돼지-소-개... 그리고 전쟁

- ‘신(新)중동전쟁’ 언급되는 급박한 상황 접하지만...
- 북녘 핵 위협과 기습공격 가능성 외면한 채 정쟁을
- 9·19 군사합의가 남북 간 충돌 막는 방화벽이라고?
- 가짜 평화쑈와 ‘항복 주도 평화’ 철저히 배격해야

 

  “미친 북한 체제를 쓰러뜨려야 할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감케 한다.”

 

  북녘 돈왕자(豚王子)가 ‘최고 돈엄’(最高 豚嚴)에 등극하기 전에 지시했다는 ‘연평도 포격 도발’(2010년 11월 13일)... 당시 '유태(猶太)나라' 외무장관이 발표한 성명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걸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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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7일 ‘하마떼’가 유태나라를 기습공격하여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다. 이후, 유태군(猶太軍)이 ‘하마떼’ 본거지(가자지구)에서의 지상전을 준비 중인 가운데, 확전(擴戰)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신(新)중동전쟁’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지구 저편으로 이 나라와는 엄청난 거리지만, 그 전쟁이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닌 지척(咫尺)일 수밖에 없다. 이 나라 경제·외교·안보와 국민 심리에 미치는 파급영향은 매우 크고 직접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하마떼’의 기습공격이 북녘 ‘최고 돈엄’(最高 豚嚴)에게 격한 고무(鼓舞)가 될 거라는 지적은 벌써 널리 알려졌다. 또한 ‘하마떼’가 북녘제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뻔한 소리지만, ‘하마떼’에 무기를 제공했다는 걸 부인하면서...

 

 

“이번 사태의 근원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비법적으로 강점한 동맹국을 공공연히 비호 두둔하며 가장 반동적인 대중동 정책을 추구해온 미국에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내린 결론...”

 

  이렇게 북녘의 나팔수들은 ‘양키나라 책임론’을 짖어대고 있다. 그런데...

 

  북녘 ‘최고 돈엄’(最高 豚嚴), 즉 반도(半島) 북쪽에서 가장 살찐 녀석의 속내는 과연 어떨까? 미루어 짐작하건대, 내심 ‘하마떼’에 섭섭했을 듯도 싶다.

 

“이번 기습공격 전술은 여차즉 하면 우리가 써먹으려 했는데, 그 아제들이 먼저 써먹었구먼. 이제 남조선 괴뢰가 양키들과 철저하게 대비를 할 텐데... 예방주사쯤 됐으니, 그거야 원...”

 

  ‘속내 짐작’이 그럴듯한지 아닌지의 판단은 ‘읽는 분’들께 맡기면서... 이 나라에서는 그 전쟁과 관련하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고 단편적이지만 다시 짚어본다.

 

  그 전쟁이 일어나기 3일 전(前)이었다. 그때까지도 ‘대화(對話) 주도 평화(平和)’의 잠꼬대를 했다. 지난날, 아니 최근까지도 북녘 ‘최고 돈엄’(最高 豚嚴)의 손아귀에 든 핵무기를 악수로 포기하게 하겠다거나, ‘종전’(終戰)이라고 쓴 종잇조각이면 반도(半島)의 ‘완전한 비핵화(非核化)와 평화’가 가능하다고 주절댔었다. 그리곤 늘 공치사(功致辭)도 덧붙였다.

 

“역사적 선언(2007년 10·4 선언) 이후 11년의 긴 공백과 퇴행이 있었지만, 평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으로 4·27 판문점 선언9·19 평양공동선언으로 되살아남으로써, 우리가 바라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우리가 바라는 목표’...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하여간 ‘개 버린’ 신세가 된 이후에도 이런저런 일에 수시로 개X에 뭐 끼듯 장광설을 늘어놨는데...

  물론 예기치 못한 기습(奇襲)이었으니, 그 잠꼬대를 전쟁과 직접 연관시키는 건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현재까지 ‘입 꾹’이다. 이 대목에서 뜬금없는 의문이 들었다. 삶은 대가리를 가진 소는 살았을까 죽었을까? ‘읽는 분’들 판단에 맡기고...

 

 

  이번 ‘하마떼’의 기습공격으로 인해, 지난날 남녘 정권과 북녘 ‘최고 돈엄’(最高 豚嚴) 일당이 악수로 약속한 ‘9·19 군사합의’ 도마 위에 올려진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 아니겠는가. 그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 또는 폐기가 합리적인 이유는 여러 군사전문가가 제시했다. 그리고...

 

  “우리는 합의를 지키고 있지만, 북한은 무인기 침투 등 최소 17차례에 걸쳐 명백하게 합의를 위반했다”는 유(類)의 문제 제기는 순진무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南)과 북(北) 사이의 숱한 ‘성명’·‘선언’·‘합의’들... 남녘 정권은 그것들에 얽매어 아등바등 절절맸다. 이에 반해, 북녘은 그 종이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X간 휴짓조각’ 취급하지 않았나. 언제라도 자신들에게 거추장스러우면 개무시하곤 오히려 남녘을 협박하는 도구로도 활용해왔다. 그럼에도...

 

“9·19 합의 이후 접경지역의 남북 간 우발적 충돌 위험이 감소했다. 9·19 합의는 남북의 우발적 오판에 의한 충돌을 막는 방화벽이다...”

 

  ‘집권 야당’(執權 野黨) 여럿의 주장이란다. ‘남북 간 우발적 충돌’... 참 한가한 소리다. 북녘의 ‘돼지군대’가 “우발적”으로 도발을 한다고? 삶은 소대가리가 웃겠다. 반면에, 이 나라 ‘국민의 군대’는 우발적이건 계획적이건 선제 도발을 할 마음이 아예 없다. 따라서...

 

  “9·19 군사합의는 위장평화 공세이며, 대북 감시범위를 제약할 뿐”이라는 아무개 논객의 말씀에 훨씬 공감이 가질 않는가. 비단 ‘하마떼’의 기습공격 때문만은 아니다. 합의 당시부터 합리적인 지적이라고 했었다. 이에 더하여...

 

“대량 살상 후 승전하는 것이 지는 것보다 낫겠지만, 그게 그리 좋은 일인가... 최근에 정전·종전을 가지고 논란이 많이 생기고 있다. 우리가 뭐라고 얘기하더라도 전쟁보단 평화가 낫다.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긴 전쟁보다는 낫다는 건 분명한 사실...”

 

  그 ‘집권 야당’(執權 野黨) 대표가 ‘단식(斷食) 호소(呼訴)’ 전에 지껄인 말씀이다. 이번 중동(中東)의 전쟁을 지켜보고도 변함이 없으신지? 요즈음 ‘재판 불출석 호소’ 외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모양이다.

  저 ‘유태(猶太)나라’를 향해 ‘항복(降服) 주도 평화’를 강력하게 외쳐볼 만도 하구먼. ‘항복 호소인’으로 국제적 명성 거머쥘 수가 있을 텐데... [여기서 그저 사족(蛇足)으로 한 마디... ‘개딸’ 아범은 분명 ‘개’다. 괴담이 아닌 생물학적 정론이다.] 그나저나...

 

  전쟁이 언제 그치고 평화가 따라올지 알 수 없는 국면이라고 한다. ‘하마떼’가 독하다지만, 독하기로 따지면 ‘유태나라’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들 이르지 않던가. 다만, 이번 전쟁은 ‘유태나라의 방심(放心)’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그들이 생존·번영해 온 방식으로 미루어, 결코 전쟁에서 ‘항복’(降服)할 거 같지는 않다. 항복이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 또한 너무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북녘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이 나라와 국민들은 어떠한가. 참담한 전쟁의 비극을 겪어봤음에도, 너무 느슨한 상태?

  사기(詐欺) 평화쑈굴종(屈從)의 연속극으로 나라를 보존하고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무리들에게 곁을 내주고 있지는 않은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마떼’가 이 나라에 결코 도움이 될 수는 없다. 반면에 이 땅의 ‘돼지’와 ‘소’와 ‘개’는 우리 곁에 있다. 많은 이득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거죽’을 덮어쓴 ‘것’[사람(인간)이라고 표현하기조차 좀 거시기 해서...]들은 이 나라의 국익과 안보에 ‘해코지’만 하고 있다는 사실(史實+事實)을 직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쯤에서 두서없는 넋두리를 마감하며...

 

  ‘하마떼’가 ‘유태나라’를 기습공격하고 3일 후 아무개 일간지에 실린 관련 기사 한 토막을 적는다. 부럽기까지 하다.

 

하마스 공습 이후 항공편이 결항하면서 이틀 이상 세계 각지 공항에 발이 묶였던 이스라엘인들은 공항이 재가동되자마자 비행기에 올라 텔아비브로 향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하마스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며 이스라엘로 향한 예비군이다.

이틀 가까이 운항하지 않던 텔아비브행 비행기가 다시 뜬다는 안내가 이스탄불 공항에 나오자 기다리던 1000여 승객이 일제히 카운터로 몰려들었다. 가까스로 탑승권을 손에 쥔 이들은 환호하고 손뼉 치며 기뻐했다. 전쟁 중인 조국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전쟁을 각오한 자만이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평화는 강한 자의 전리품이다.”

 

 李 · 斧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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