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자(觀戰者)가 될 것인가... 방관자(傍觀者)로 남을 것인가

-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가 되어서야
- 국민을 미혹하는 숫자놀음은 불신만 조장
- 비현실적 탁상 정책에서 벗어날 때

 

영국의 축구 프리미어 리그 및 미국의 야구 메이저 리그를 보면 선수들은 월드 클래스(class)에 어울리게 수준 높은 경기를 한다. 경기의 관전자들도 자기편 선수의 뛰어난 플레이에 열화와 같은 응원을 보내고, 상대편의 반칙에는 폭우와 같은 야유를 보내며 경기를 함께 즐긴다. 간혹 심판의 오심에 대해 감독이 나서서 항의를 하고 또 상태편의 도를 넘는 반칙에 대해서는 선수들이 나서서 상응하는 응징을 하거나 몸싸움을 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이와 같이 영·미의 축구·야구 리그는 경기에서 방관자보다 관전자가 되는 사람이 많았기에 면면히 발전을 해 오면서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사회관계망에서는 간혹 공유되는 댓글들이 일방적으로 삭제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대체로 이런 일이 발생하는 사회관계망은 극히 일부에 의해 운영되거나 통제되고 있기 십상이다.

결국 이런 사회관계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정의 능력조차 상실하고 서로의 이해충돌로 몰락한다. 즉, 일부에 의한 운영과 통제에 의존하였기에 자신에게 얻어지는 것이 없어지면 스스로 방관자가 되어 떠나는 것이다.

서로가 사회관계망을 통해 이익을 좇아 전기적 접촉은 하고 있었지만, 인간적 연결은 없었기에 관전자가 아니라 방관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8·15 광복절 경축식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에 의한 경제보복의 위기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경제가 실현되면 일본은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천명했다.

문재인 정권의 이러한 레토릭 (rhetoric)은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망각한 것으로 과대망상이었지만, 반일이라는 요술방망이의 효과는 톡톡히 누렸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고 문재인 정권의 이런 과대망상에 대해 기업과 국민들은 관전자가 되지 못하고 방관자로 전락했었다. 그리고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망연자실(茫然自失)해야만 했었던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정보보호의 날' 기념식에서 하이브리드(hybrid) 전쟁에서 사이버 안보가 중요하다며 “10만명의 화이트해커를 양성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보안전문가인 “화이트해커”와 사이버 부대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실적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에 이 수치는 지나친 부풀리기로 어딘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어느 정책 입안자가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차용하여 이런 말을 하도록 대통령에게 건의 하였을지 모르나, 우리나라 육·해·공의 국군 숫자가 60만 남짓인 것을 고려한다면 “화이트해커” 10만명은 어불성설이다. 또 현실적으로 대학에서 정보통신기술 학과 모두가 화이트해커 양성에만 매달리지 않고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이다. 더 나아가 10만명의 화이트해커 양성의 정책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막대한 피해만 남길 것이다.

 

 

현 과기부 장관은 향후 5년간 반도체 설계 인력 3천명을 양성하겠다고 했으며, 교육부는 향후 10년간 반도체 인력 15만명을 양성하고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의 증원을 최대 5.7천명 하겠다고 했다.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력의 양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현실적 제반여건을 고려할 때에 이 수치는 지나친 과장으로 이 또한 신뢰가 가지 않는다.

특히, 반도체 인력 15만명의 양성은 정권의 임기 내에 30%도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다.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6만명 남짓, 하이닉스 반도체 3만명 남짓, 그 외 중소기업 등 3만명(가정)이라 하더라도 12만명 정도가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 제반여건을 고려할 때, 과기부 장관이 발표한 석·박사급에 해당하는 설계 인력의 양성도 그 실현성에 의문이 가는 수치이지만, 교육부의 반도체 인력의 양성은 거의 실현성이 없어 보인다.

 

향후 몇 년간 대학입학자 수는 46만명(대학 33만, 전문대 13만) 정도일 것이다. 이 대학입학자 수의 1/4~1/5이 물리·화학 관련 이학전공과 기계·전자·전기·화학·재료 관련 공학전공을 한다고 가정하면, 대략 9.2만~11.5만명이 된다. 실제 반도체 인력의 양성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의 조성과 대학입학을 하고서 기업에 취업하기까지의 기간 등을 고려한다면 지금으로부터 5년이 경과한 후부터는 적어도 매년 대략 2만명의 반도체 인력의 양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9.2만~11.5만명에서 대략 20%를 점하는 2만명 정도를 반도체 인력으로 한다는 것은 너무나 지나친 부풀리기로 현실성이 전혀 없는 단지 종이에 적힌 탁상 정책의 수치에 불과하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실현성이 거의 없는 비현실적 탁상 정책에 대해 방관자가 되기보다 관전자가 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의 몫이 될 뿐이다. 특히, 현실적 제반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탁상에서 그려진 공중누각의 정책 수치는 잠시 사람을 미혹할 수 있지만 결국은 불신만 조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국가와 사회의 정책에 대해 방관자가 되기보다 스포츠에서처럼 적극적인 관전자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노예의 길을 걸을 것인지, 주인이 될 것인지를 결심해야 할 때다.

 

채 · 시 · 형 (蔡時衡)  <자유기고자>  

 

              ※ 초청시론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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