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서 과장들, 현장 아닌 사무실…’안이한 대처 논란’

 

이태원 참사 당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저녁을 함께 한 경비과장과 정보과장이 압사가 벌어지기 직전인 현장 대신 경찰서로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이 용산경찰서에서 받은 '서장·과장 등 출입기록' 자료에 따르면 이들 과장 2명은 참사가 난 10월29일 오후 9시47분께 이 전 서장과 식당을 나와 용산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경비, 정보과장이 경찰서로 복귀한 후 약 15분 뒤 참사가 시작됐다. 이미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가 잇따라 접수되고 있었다.

 

이들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것은 각각 오후 11시40분과 45분께로 참사가 발생하고 약 1시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무실에 복귀했을 때부터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1시간 40여분 간의 공백에 그들이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그들이 무전, 휴대전화를 통해 관내 비상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데도 참사 일보 직전인 현장으로 출동하지 않고 사무실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또한 10만여명이 모이는 핼러윈이었던 만큼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과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특별수사본부에 입건됐고 9일 대기발령 됐다.

 

한편, 용산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장, 형사과장, 생활안전과장, 여성청소년과장, 교통과장 등이 처음으로 ‘압사’가 언급된 112 신고가 들어온 저녁 6시34분부터 참사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밤 10시15분 사이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을 지나가거나 순찰한 것으로 확인됐다.

 

112치안종합상황실장은 저녁 6시37분∼7시9분 용산경찰서에서 이태원파출소로 이동했다. 지하철 남영역 인근에 있는 용산경찰서에서 이태원역 3번 출구 앞 이태원파출소로 가려면 참사 현장을 지날 수밖에 없다. 112치안종합상황실장이 참사 현장에 몰린 인파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활안전과장은 저녁 6시30분에 자택에서 출발해 저녁 8시께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생활안전과장이 참사 현장을 지나갈 시각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에서 교통 통제를 지휘해야 하는 교통과장은 저녁 8시께 서울 용산구 삼각지 인근에서 열린 집회 통제를 마치고 밤 9시께부터 이태원 인근에 있다가 밤 10시께 용산경찰서 사무실에 돌아왔다.

 

용산서 교통과 교통기동대(20명)가 당일 오후 9시30분께 이태원에 투입됐음을 고려해보면 교통과장은 이들에게 교통통제를 맡기고 현장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 · 상 · 만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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