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3년 6월 13일 조선의 왕 연산군 앞에서 김감불(金甘佛)과 김검동(金儉同)은 은광석에서 순은을 추출하는 화학발명인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 또는 단천연은법(端川鍊銀法)의 기술을 시연하였다. 이 기술은 일단 은광석과 납을 섞어 태워 납과 은의 혼합물을 만든 뒤 다시 가열하여 녹는점이 낮은 납은 재에 스며들게 하고 순수한 은만 남게 하는 것으로 융점의 차이를 이용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중종반정 이후 연산군 시대에서 적폐청산을 한다는 명목으로 은광개발을 억제하는 등 연은분리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은본위제의 화폐경제를 실현시킬 수 있었지만 실기하고 말았다.
1533년 일본은 조선에서 경수(慶寿)와 종단(宗丹)이라는 두 기술자를 초청해 연은분리법을 습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1539년 8월에는 조선의 조정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벌어지는데, 유서종이라는 종4품 판관이 일본인들을 끌어들여 연은분리법 기술을 유출한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의 여러 기술자를 초청하고 기술을 빼내 간 일본은 시마네현에 있는 이와미은광(石見銀山) 개발하고 은본위제의 화폐경제를 실현하였다.
그리고 천하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은으로부터 얻은 막대한 재정을 바탕으로 대항해시대의 포르투갈 등과 무역을 통해 조총인 남만뎃포(南蠻鐵砲)를 수입해서 무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은 조선이 발명한 기술을 이용해서 군자금을 충당할 수 있는 막대한 재정을 갖게 되었고, 1592년에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한 것이다. 다시 1597년에는 정유재란을 일으켜 재차 조선을 침략하고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앞선 도자기 기술의 사기장(沙器匠)을 강제로 끌고 갔다. 도자기를 구을 수 있는 고온인 1,300~1,350도를 다루는 사기장은 조선에서는 신분이 미천하여 천시를 받았으나, 일본에서는 영주의 보호와 대접을 받았다.
강항이 남긴 간양록(看羊錄)에 따르면, 당시 끌려온 사기장을 비롯한 조선의 첨단 기술자 대부분은 일본에서의 삶과 대우가 훨씬 좋았기 때문에 조선으로의 귀환을 거부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한국인 도공은 주로 사쓰마번(薩摩藩), 카라츠번(唐津藩), 죠슈번(長州藩)의 영주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켰다. 특히, 이삼평(李參平)은 1616년은 아리타(有田)에서 백토를 발견하고, 고급 도자기인 아리타야키를 굽는 데 성공하고서 카라츠번을 크게 번성시켰으며 영주로부터 높은 사무라이의 대우도 받았다. 그런데, 이삼평이 만약 사농공상의 조선에 남았으면 이런 대우를 받지 못했을 것이며, 도자기의 신으로도 추대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은 조선으로부터 가져간 기술로 만든 최고급 도자기의 수출을 통해 청나라가 아편전쟁으로 몰락하기까지 큐슈 지방의 번을 중심으로 재정을 축적하고 거대한 대포 등을 수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쓰마번과 죠슈번은 도자기를 굽던 1,300~1,350도의 고온을 반사로 용광로에 적용하여 제철을 하고 대포·철포 등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쓰마번과 죠슈번은 도자기 무역을 통해 쌓은 재정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갖추고 동맹을 맺고서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켰다. 일본이 강제로 끌고 간 사기장 이삼평이 고급 도자기를 구운지 250년 남짓 지난 1875년에는 운양호(雲揚號) 사건을 계기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제국으로 발전해 간 것이다.
그런데 지난 정권에서 있었던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정책으로 원전과 관련된 많은 핵심기술자가 우리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직했다. 그 중에 일부 핵심기술자가 중국기업으로 이직하면서 원전기술이 유출된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같은 정책의 폐해는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피해를 안겼음이 분명하다.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바이오 등 첨단산업을 국가보존의 전략자산으로 여기는 냉엄한 국제사회를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한시바삐 첨단산업의 핵심기술자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조선의 연은분리법과 도자기 기술의 유출로 일본으로부터 침략과 지배를 당한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든 기술의 유출을 통해 부강해진 이웃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는 안타까운 역사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윤석열 정부는 이공학 전공자가 법학·경제학 등의 전공자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첨단산업의 핵심기술자는 국가의 전략자산으로 여겨 대우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반도체·바이오 등의 첨단산업에서는 핵심기술자 한 사람이 백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잊지 말고 이를 지원하고 응원해야 한다.
深 · 思 · 翁 (심사옹) <객원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