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고진, 비행기사고로 사망... 모스크바 떠난 전용기 추락

- 프리고진 등 탑승자 10명 전원 숨져
- 친바그너 소셜미디어 "방공망에 요격돼"

 

러시아에서 무장 반란을 시도한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반란을 중단한 프리고진을 처벌하지 않기로 했으나, 프리고진을 둘러싸고 끊이지 않던 신변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됐다.

 

23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재난 당국은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엠브라에르 레가시 제트기가 트베리 지역의 쿠젠키노 주변에 추락했다"며 "탑승한 10명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텔레그램을 통해 밝혔다.

 

러시아 항공 당국은 "탑승자 명단에 프리고진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고 확인했다.

러시아 연방 수사위원회가 사고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추락 현장에서는 시신 8구가 확인됐으나 프리고진의 생사 여부는 즉각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 항공 당국은 "프리고진과 드미트리 우트킨이 해당 비행기에 탑승했다"고 밝혀 프리고진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드미트리 우트킨은 프리고진의 최측근으로서 프리고진과 함께 바그너그룹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친(親)바그너 텔레그램 채널 그레이존은 러시아군 방공망이 바그너그룹의 전용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고, 일부 현지 매체들도 이륙 후 30분도 안돼 해당 비행기가 방공망에 요격됐다고 보도했다.

 

AP 통신은 항적 추적 데이터를 근거로 비행기가 이날 저녁 모스크바에서 이륙한 지 몇 분 후에 비행 신호가 끊어졌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현지 매체를 인용해 프리고진과 우트킨 등 일행이 사고에 앞서 모스크바에서 국방부와 회의를 가졌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한쪽 날개가 떨어진 비행기로 추정되는 물체가 연기와 함께 수직으로 추락하는 모습의 동영상이 게시됐다.

 

요식업 경영자 출신의 프리고진은 젊은 시절 푸틴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뒤 크렘린궁의 각종 행사를 도맡으면서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고, 2014년에는 바그너그룹을 창설하고 아프리카와 중동 등 세계 각지 분쟁에 러시아 정부를 대신해 개입하며 세력을 키우고 이권을 챙겼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동부 요충지 바흐무트를 점령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으나, 이 과정에서 러시아 군부와 갈등이 생겨 지난 6월 23~24일 러시아 군 수뇌부 처벌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바그너그룹은 반란 직후 러시아 서남부 로스토프주 군시설을 장악한 이후 곧바로 모스크바를 향해 북진했고 하루도 안돼 모스크바에서 200㎞ 내 거리까지 진입했다.

 

그러나 그는 돌연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협상을 통해 반란을 중단하기로 했고, 러시아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가는 대신 그와 바그너그룹 용병들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안팎에서는 푸틴 대통령에 반기를 든 프리고진에 대한 신변 우려가 끊이지 않았으나, 이후 프리고진은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여러 차례 확인됐었다.

 

안 · 희 · 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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