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예비군 대상 부분적 동원령을 내린 가운데 러시아 전국 곳곳에서 동원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오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주권과 영토 보호를 위해 예비군을 대상으로 부분 동원령을 내린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에서 동원령이 내려진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구체적인 동원 대상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규모는 전체 예비군 2500만명 중 30만명이 될 예정이다.
이에 러시아 각지에서 동원령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러시아의 인권단체 ‘오브이디 인포’(OVD-Info)는 이날 푸틴 대통령의 동원령에 항의하는 시위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전국 37개 도시에서 일어나 8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수도인 모스크바에서는 시내 중심가에 모인 시위대가 “동원령 반대” 구호를 외치다 최소 50명이 경찰에 구금됐다. 한 시위 참여자는 “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며 “그들이 빼앗아 갈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건 우리 아이들의 목숨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위가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별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내 의견을 표현하는 건 내 시민적 권리”라고 대답했다.
반전 단체 '베스나'는 "이것은 우리의 아버지, 형제, 남편인 수많은 러시아인이 전쟁의 ‘고기 분쇄기’에 끌려들어 갈 것임을 의미한다. 이제 전쟁은 모든 가정과 모든 가족에게 닥쳤다"고 목소리를 냈다.
국외로 탈출하려는 러시아인들도 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무비자로 갈 수 있는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 아르메니아 예레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아제르바이잔 바쿠 등과 연결되는 항공편은 매진됐다.
러시아 정치 분석가 드미트리 오레시킨은 "러시아 사람은 뇌물이나 출국 등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통해 이번 동원령을 피할 것. 절박한 행동으로 보인다"며 “이제 전쟁은 이들 집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입대를 피하기 위한 뇌물이 앞으로 훨씬 더 흔해질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처럼 시위 소식과 참여를 독려하는 목소리가 퍼지자, 러시아 검찰은 누구든 시위를 호소하거나 독려하면 최대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또 통신 당국은 언론사에 동원령과 관련해 잘못된 정보를 올려놓는 웹사이트는 접속 차단 조치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러시아 국방부는 동원 대상에 대학생과 징집병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동원 대상자의 채무 상환을 유예하는 등의 지원책을 내놨지만 시위는 계속에서 확산되고 있다.
김 · 정 · 훈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