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이 외부의 힘을 받아 평형 상태가 무너져 기울어졌을 때에 중력과 부력 등이 외부의 힘보다 우세하게 작용하여, 선박이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본래의 평형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힘을 복원력이라 한다. 선박은 무게 중심을 가능한 낮게 하고 부력을 크게 하여 태풍· 파도 등의 외부의 힘에도 복원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설계한다. 그러면서도 선박은 운항할 때의 무게 중심을 잡기위해 탑승객과 적재물의 중량 등을 고려하여, 선박의 밑바닥이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적당량의 바닷물 등으로 평형수(平衡水)를 채워 넣는다. 복원력을 상실하지 않고 평형수에 오류가 없는 선박은 거친 파도에도 전복되지 않고 항해해 나아갈 수 있다. 반면에, 복원력의 상실이 일어나고 평형수에 오류가 발생하게 되면 선박은 잔잔한 파도에도 항해해 나아가지 못하고 전복되고 만다. 당나라의 정관정요(貞觀政要)에는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 :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나, 역시 뒤집기도 한다)"라면서 “군주인수(君舟人水 : 군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라 하고 있다. 그런데 왕이 주인인 왕권 시대가 아닌 국민이 주인인 민주 시대에 있어서도, 투표에 의해 선출된 위정자의 정권이 배가 뒤집히듯이 복원
“한국갤럽이 (7월)2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지난 26~28일 전국 성인 1000명 대상)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3%p 하락한 28%를 기록했다...” 요즈음 저잣거리의 가장 큰 얘깃거리가 아닌가 한다. 글쎄, 그 무슨 ‘여론조사’에 대해 늘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국민이 꽤 여럿이고 보면... 믿거나 말거나 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과가 그러하다니, 일단 그러려니 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여기저기 훈수(訓手)꾼들이 설쳐댄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과 배경, 다시 오르게 할 여러 책략 등과 관련해서 설왕설래(說往說來)한다. 이런저런 기사와 칼럼 등등을 뒤적이다가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정치는 타협과 연합을 통해 성격과 지지기반이 다른 세력을 붙여가면서 계속 확장해 가는 건데, 대통령은 뺄셈정치를 하고 있다...” 뺄셈이 아니라 ‘덧셈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아주 명쾌한 분석과 해법 같기도 했다. 그래서 여러 매체에 실린 정치 기사를 훑어봤다. “양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팔지 말라했더니, 이제 개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팔기 시작하려는 것 같다... 저 자들의 우선 순위는 물가안정도 아니고, 제도개혁도 아니고, 정치혁신도
8월이 되면서 이제 여름도 절정에 이르고 있다. 나이가 백년은 족히 되보이는 미국 중서부 시카고 지역에서 빼곡하게 자라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은 초록을 힘차게 뽑낸다. 부자나라로 상징되던 이곳 미국도 끝이날 것 같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살림살이가 무척이나 팍팍하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확산은 미국경제와 세계경기를 불황으로 더욱 몰아가고 있다. 북한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국경이 봉쇄되어 많은 주민들이 병마와 굶주림에 고통을 받는다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런 상황속에서 탈북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으나, 요즘은 강화된 경비로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최근 미국에 거주하면서 ‘북한을 바꾸다’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무궁화구조대’라는 탈북지원단체를 운영하는 탈북민 출신 허강일 대표가 있어 우리의 마음을 한껏 안심시켜 준다. 허강일 대표는 요사이 탈북이 쉽지 않아 합법적으로 나온 북한사람들을 중심으로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허대표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탈북이 예전과 같이 쉽지 않고, 북한내부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매우 적다고 한다. 그렇지만 중국이나 특히 러시아 같은 곳에 합법적으로 나온 인력은 여전히
일본에서는 1972년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수상이 일본열도 개조론을 발표하면서 산업단지를 전국에 재배치하고, 도시와 지방을 고속철도인 신칸센(新幹線)이나 고속도로로 연결하는 구상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60년대 고도성장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경제성장의 정체, 도시와 지방간의 격차의 확대, 그간 산업화에 따른 공해 등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서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수상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데이터 센터 및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인프라, 재생 에너지 전력의 공급에 적합한 에너지 인프라, 고속통신망 사용의 자동운전 및 자동배송의 물류 인프라 등을 정비함으로써, 국민에게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디지털 일본개조를 구상하고서 잃어버린 30년 극복과 재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동남 임해권을 중심으로 중화학 산업을 육성하고 고속도로를 건설·연결함으로써 산업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촉진하였다. 이에 수반하여 산업화에 따른 도시로의 인구 유입에 따른 사회적 문제는 다소 있었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과밀에 의한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옛 신라 서라벌의 어느 사찰에 한 석공이 있었다. 석공장은 문하의 석공에게 작은 돌 조각이 튀어도 무의식적으로 눈을 먼저 감지 말고 망치로 정을 똑바로 치라며, 기본을 열심히 가르쳤다. 하지만 이 석공은 스승의 말과 주위 동료의 말은 듣지 않고서, 작은 돌조각이 튀어 눈에 들어갈까 두려워 망치로 똑바로 정을 치는 것보다 눈 깜박이는 것을 먼저 배웠다. 동료 석공들은 불상·연화석 등을 조각하는데, 이 석공은 불상이 정좌할 연화석을 받치는 기단을 만드는 것이 고작 그의 역할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석공은 기단을 자기가 만들지 않았다면 불상을 연화석에 정좌시켜 모실 수 없었다고 큰 소리를 쳤다. 사찰에 들른 많은 불자들은 이 석공의 말이 어불성설인 것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잘 하겠지 하면서 토를 달지도 않았다. 많은 국민들이 국정의 시비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 잘 하겠지 하면서 토를 달지 않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 정부에 있어서 중요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 중에는 이 석공과 같이 망치로 정을 똑바로 치기보다 눈 깜박이는 것부터 먼저 배운 자들이 많다는 의심이 든다. 국가와 국민만을 위해 눈을 부릅뜨고 국정을 수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변방에 불과하였던 척박한 섬나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다. 프랑스 혁명시대에도 나폴레옹은 파리이공과 대학을 설립·운영하였으며, 많은 자금을 투입하면서 과학에 대한 연구를 적극 지원하였지만 프랑스는 산업혁명을 선도하지 못하였다. 영국은 옥스퍼드 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에서 과학에 대한 연구의 지원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산업혁명을 선도하였다. 역사학자 알프레드 크로즈비가 “태양의 아이들”이라는 책에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이유의 하나로, “장인들이 가진 기술의 가치를 인정해 준 것에 있다”고 했듯이, 영국은 “재산권으로서 특허권”을 제도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 초기의 과학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였거나 기술발전에 그다지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에 미치지 못하였다. 오히려 기술이 먼저 발전하고, 이에 자극을 받은 과학자들이 기술자들을 뒤좇아 연구를 할 정도였다. 영국의 기술혁신을 선도한 와트, 트레비식, 스티븐슨 등도 원래 과학자도 아니었다. 학교에 다닌 적이 한 번도 없거나 기초교육만 겨우 받은 기계공이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과학자들보다 앞서 기술을
지금까지는 2개의 패권주의 국가, 미·중의 군사·경제 패권전쟁은 지정학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나 이제는 첨단과학기술 패권전쟁으로 옮아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과 같은 첨단과학기술을 자국존립의 전략자원으로 진단·인식하고 그 기술의 타국이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정학적 약점을 가진 우리나라가 인류발전에 지속적인 공헌을 하면서 자주적인 존립을 보존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국가 지도자를 비롯한 지도층이 첨단과학기술에 대해 냉정하고 장기적 안목을 가졌는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진단·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중국은 국가가 통제적 지도권을 가지고 첨단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을 주도하면서, 거의 미국에 필적하는 금액을 투입하고 있으며 연구자 수는 이미 미국의 연구자 수를 넘어서고 있다. 반면에 중국이 논문·특허 등의 양적인 지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아직 핵심 첨단과학기술에 있어서는 서구 선진국, 특히 미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중국에 비해 미국은 압도적인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 많은 외국태생의 우수한 유학생과 연구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연구개발의 성과물
배가 불룩하고 덩치가 큰 TV의 브라운관을 퇴출시킨 평판 디스플레이 산업을 살펴보자. 일본의 디스플레이 기업인 파나소닉과 샤프는 PDP와 LCD에 있어서 한 때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최강이었다. 파나소닉의 PDP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LCD에 비해 처음에는 패널의 대형화 등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였으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LCD에 있어서의 기술적 난제를 극복하고 패널의 대형화를 이뤄내면서 가격 경쟁력 등에 뒤처져 몰락하였다. 샤프의 LCD는 시장 트렌드에 바로 적응하는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놓친 투자와 중국의 LCD 및 우리나라의 OLED 등과의 가격 경쟁력 상실로 쇠퇴하고 몰락하였다. 파나소닉과 샤프가 시장 트렌드에 바로 적응하는 변화와 혁신에 실패하면서 무너져 갔듯이 일본의 다른 전자기업도 마찬가지로 무너져 갔으며, 전자왕국 일본은 그 패권을 대한민국에게 넘겨주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살펴보자. 일본은 한 때 전자왕국이었으면서 세계의 반도체 시장을 거의 제패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산업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반도체인 집적회로는 크게 스택 방식과 트랜치 방식으로 제조된다. 이 두 기술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
위대한 발명가이자 과학자인 토마스 에디슨은 동료였던 니콜라 테슬라와 전력의 송전 방식을 둘러싸고 1880년대 후반에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에서 패하였지만, 1892년에 자신의 “에디슨 전지회사”와 “톰슨휴스톤 전기회사”를 합병하여 제너럴일렉트릭(GE:General Electric)을 창립하였다. GE는 거의 130년 동안 세계의 전기 산업계를 제패하였으나, 2001년 전설의 경영자 잭 웰치가 물러난 후 20년 만에 크게 항공-헬스케어-에너지 등 3개 분야로 분할되면서 그 종언을 맞이하였다. GE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따른 시장 트렌드(trend)에 바로 적응하는 변화와 혁신에 실패하면서 몰락했다. 마치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면서 몸집만 키운 거대한 공룡이 기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멸종한 것과 같이, 발명왕 에디슨의 명성을 뒤로한 채 GE도 같은 전철을 밟은 셈이 되었다. 카메라 산업에서 코닥-폴라로이드-후지필름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코닥은 1935년에 카메라의 필름을 생산하기 시작해서 2012년 종언을 맞이할 때까지, 1970~1980년대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최초로 개발하였다. 하지만 이의 활용을 주저하고 과거의 필름 시장에 대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대통령 기록물이다. 대통령 기록물 지정 법률의 입법 취지는, 국내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의 외교·국방·안보 등과 관련된 기록물이 함부로 공개됨으로써 논란이 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물러나는 정권은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하고 떠나버렸다. 예를 들면, 바로 지난 정권에서도 영부인 옷값 등의 특수활동비 내역 등에 대해서는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시민단체에 의한 헌법소원과 가처분신청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국민들은 물러난 정권에서 잘한 것과 못한 것을 알고 싶어도 알 수 있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고, 또 새로이 들어선 정권조차도 물러난 정권에서 잘한 것과 못한 것의 참고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그 입법취지를 벗어난 지나친 대통령 기록물 지정은 국민에게 이득을 가져다주기보다 오히려 피해만을 남기고 있다. 근간에 약 2년 전의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서해상 피살 사건을 두고서 “실수에 의한 추락”이니 “자의에 의한 월북”이니 하고 논란이
옛날 어르신들에 따르면 “마음 씀씀이는 넓은 바다의 물과 같고 입은 태산처럼 무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널리 마음을 쓰고 입은 무겁게 하라는 뜻으로 “입이 바로 화의 문”이라는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과 상통하는 말이다. 그래서 조물주는 가벼이 말하기보다 듣기를 중시하고, 또 말을 함에 있어서 자신을 낮추고 치우치지 말라는 뜻으로 귀와는 달리 얼굴의 중앙 아래에 횡으로 편평한 단 하나의 입만을 가지게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자가 정치인과 기업인, 언론인 등의 존안(存案) 자료를 뜻하는 이른바 ‘국정원 X파일’의 존재를 언급하질 않나, 사사건건 새정부의 국정운영에 훈수 아닌 훈수를 두는 것을 보면, 마치 영양분을 받아들여야 입을 노폐물 내뱉는 항문처럼 쓰고 있음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어느 때인가부터 탐욕을 성실한 능력이라 하고, 망언을 강직한 성품이라 하는 것이 나타나더니, 근간에는 국가의 최고위층을 지낸 자의 입에서 분뇨가 터져 나오고 있다. 마치 이렇게 하는 것이 시류를 잘 좇아 훌륭한 막후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오랜 세월을 산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지는 것은 보지 않아야 할 것은 보지 말라
북한군의 침략에 의해 3년간 지속된 참혹한 6·25전쟁이 일어난 지도 벌써 72년을 맞이한다. 이 전쟁에서 한국군 및 유엔군의 인명 피해를 살펴보면, 전사·부상·실종 및 포로는 대략 17만 6천명·55만 4천명·4만 3천명으로 전체 77만 3천명이었다. 전사·부상·실종 및 포로 중에서 한국군은 대략 13만 8천명·45만 1천명·3만 3천명으로 전체 62만 2천명이었으며, 유엔군은 3만 8천명·10만 4천명·1만명으로 전체 15만 2천명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민간인 인명 피해를 살펴보면, 사망·학살·부상·납치·행방불명은 대략 24만 5천명·12만 9천명·22만 7천명·8만 5천명·30만 3천명으로 전체 98만 9천명이었다. 이 수치에 포함되지 않는 기아·질병 등으로 인한 민간인의 인명 피해까지 고려한다면, 한국군과 민간인의 전체 피해는 약 2백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 발발시의 한반도의 인구는 대략 3천만명 남짓이었으며, 한국은 2천만 조금 못 미치는 정도였으니 인구의 10%가 희생된 것이다. 당시 가족 구성이 농업경제의 대가족이었음을 고려하면 4촌내에 피해자가 없는 집안이 거의 없다시피 한 아주 참혹한 전쟁이었다. 특히, 낙동강을 경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