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말... 이 나라 대학가의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인천(仁川) 부둣가에서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膾炙) 되던 전설(?)이 있었다. 청바지와 통기타, 그리고 긴급조치와 장발(長髮) 단속이 한창이던 1970년대 말의 어느 여름날... 서해(西海)의 아무개 섬을 향해 인천(仁川) 연안부두를 떠난 정기여객선이 30분 남짓 파도를 가르고 있었다. 여객선 뱃머리에는 여름방학을 맞은 서울의 아무개 대학 써클[동아리] 회원들이 모여 앉아 노래를 부른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통기타와 노랫소리가 시원한 바닷바람에 한참 어울리는 순간, 갑자기 배가 덜컹하더니 뱃전에 앉았던 여학생 하나가 물속에 ‘풍덩’ 빠졌다. 당황한 대학생들이 승객들을 향해 소리친다. “사람 살려! 사람이 바다에 빠졌어요!” 뱃전과 객실의 승객들이 거의 모두 모이고 뛰쳐나왔다. 동승한 경찰·군인도 있었고, 승무원들도 뱃머리로 달려왔다. 급기야 선장(船長)까지도... 그리고는 바닷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여학생을 향해 고함을 지른다. 너도나도, 여기저기서... “헤엄을 쳐!” “팔을 힘차게 저어!” “다리로 물을 차란 말야!” 얼마나 지났을까. 그 여학생이 몇 번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은 자유민주주의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가정체성의 본질이요 우리가 누리고 구가해온 체제의 기반이다. ‘인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선의 제도’라고 칭송되어온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수많은 체제전복의 도전 앞에서도 우리는 끈질긴 극복의 길을 꿋꿋이 걸어왔다.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국가 중 유일하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했던 국가이다. 이조 왕조체제와 식민지배 체제를 넘어 8·15광복 후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에 누가 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접목할 수 있었던가? 이승만이라는 영웅이 없었다면 과연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이 존재했겠는가? 민족통일에 대한 열망이 상황을 혼미하게 하던 시대적 상황에서 1946. 6.3. 전라북도 정읍에서 이승만의 고뇌에 찬 발언은 가히 한반도 역사에 혁명적 전기를 이루는 순간이었고, 통일부장관 후보자 김영호 교수는 이것을 ‘이승만 독트린(doctrine)’이라고 규정했다. 불확실한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공산주의자들의 속셈을 꿰뚫어본 고독한 국가 건설자 이승만이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해야겠다는 벼랑 끝 선택에 대한 확고한 가치의 공감이었다. 해방후 문맹율 80%로 세계 최빈국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간혹은 마찬가지일 것 같지만 마찬가지가 아닌 사람을 만난다. 첫 번째는 주인이면서 주인이 아닌 것처럼, 겸손하게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주인이 아니면서 주인인 것처럼 당당하게 요구만하며 불손하게 타인을 무시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주인의식으로 행동이 방정(方正)하지만,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주인행세로 행동이 방정맞다. 특히 일부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는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의 본분을 방정하게 행하기보다, 주인행세를 하며 자신의 본분을 방종(放縱)하게 행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다. 이런 사회는 겉으로는 멀쩡한 듯이 보이지만 속은 썩어서 언제인지는 몰라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직업에 따라서는 그 의무를 다 할 것을 서약한다. 하지만 의무를 다할 것을 서약하고서도 실제의 현실에서는 직업윤리마저 팽개쳐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여타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인인 국회의원은 국회법에 따라 임기시작과 함께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추위로 유명했던 이곳 미국 중서부도 이제는 온통 녹색의 나무들과 풀들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목덜미에는 연신 땀이 흐르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무더운 날씨속에서도 새벽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음식사업을 통하여 미 전역을 강타하고 있고, 최근에는 이곳 중서부 시카고에 까지 음식사업을 확장하려는 탈북민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탈북민은 한국인, 심지어는 외국인들 조차 그맛을 잊지못하는 전통적인 평양식 순대와 족발 사업을 하고 있는 마영애 회장이다. 마영애씨는 평양출신으로 지난 1999년 탈북을 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에서 3년 반을 평양예술단장으로 활동하다가, 지난 2004년에 미국에 입국하여 북한인권활동과 사업을 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영애 회장은 평양식 순대등 음식사업을 통해서 남긴 이윤 중 상당부분을 불우한 미주 탈북민과 한국내 탈북민들 돕기에 쓰고 있다. 마영애 회장은 직업을 무엇이라 불러야 가장 적합할까를 고민할 정도로 탈북후 그리고 미국에 온 후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들을 해왔다. 한국과 미국 대통령, 미국 상하원 국회의원들이 그녀를 만나고 있다. 새벽4시면 기상을 하는 마영애씨는 새벽 4시40분이면 집에서 나온다. 10분 거리인 순대공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새신을 신고 달려보자 휙휙 / 단숨에 높은 산도 넘겠네 ‘국민학교’ 시절부터 부르던 노래다. ‘초등학교’로 바뀔 즈음에는 이른바 ‘운동하는 족속’(운동권)이 무척 좋아했다던가... 그리고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 + + + + +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 민주당은 당의 혁신기구를 맡아서 이끌 책임자로 사단법인 다른백년 이래경 이사장 모시기로 했다”며, “우리 지도부는 혁신기구가 마련한 혁신안을 존중하고 전폭적으로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그 이후에 벌어진 사연은 널리 알려졌다. 세간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세세히 적지 않아도 될 듯하다. +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하여 남북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들이... + 아마도 지난 한국 대선에도 이들 미(美) 정보조직들이 분명 깊숙이 개입... + 미국 바이든의 하수인 역에 충실한 청맹과니 윤가 정권이 한미동맹이라는 몽유병에 걸려... + 법치를 가장한 조폭집단 윤가 무리 / 이재명은 든든하고 박식하고 깨끗한 사람... 등등등... 주옥(珠玉)에 버금가는 내용의 어록(語錄)을 남겼다.
3·1절 기념사, 닷새 후에 발표된 일제(日帝) 강제 동원에 대한 배상안, 그 뒤를 이은 정상회담... 세간(世間)에 말이 넘친다. 이 나라 ‘국민’들은 상념(想念)에 잠길 수밖에 없다.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 온다. 현시점에서 평가는 너무 이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강제징용 배상 청구권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인권이다. 피해자 동의 없는 ‘제 3자 변제’는 명백한 위법... 그런데도 윤석열 정권은 ‘대위 변제’를 강행한다. 일본 비위만 맞춘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굴욕적 태도... 강제동원 배상 해법과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원상복구를 통해서 한일 군사협력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한반도에 항구적 위협이 될 일본의 군사 대국화와 평화헌법 무력화에 동조하는 것...” ‘대장동의 대장’ 목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하다. 흔히 죽창가(竹槍歌)를 부른다고들 한다. 일인(一人) 일(一) 스마트폰, 반도체와 인공지능... 전투기와 드론이 충돌하는 시대다. 죽창(竹槍)을 들자고 한다. 날아오는 핵미사일도 잠자리채로 낚아채면 된다고 우길 태세다. 그런가 하면... 그 ‘대장’이 이끄는 무리와 이 나라에 그저 거주하는 ‘주민’(住民)들은 계속
북한 김정남의 장남 ‘김한솔의 행방’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한솔은 아버지 김정남이 피살된 후 자유조선(구 천리마민방위)을 통해 구출되었으며 위협으로부터 도피하여 미국 정부의 신변 보호를 받고 있다. 미국 정부 보호 아래 행방이 묘연한 그가 앞으로 어떻게 등장할지,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2년 전 김한솔이 미국 워싱턴 근교 맥클린에 있는 쉐이크쉑버거 매장에서 목격됐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목격담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솔이 미국에 있다는 보도와 추측이 많지만, 한 곳에만 머물게 되면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여러 거처를 옮겨 다니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철저한 비밀에 부쳐진 김한솔의 행적은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최근 김한솔의 근황을 파악한 국정원에 의하면 김한솔은 안전한 상태에 있지만, 갇혀 지내는 생활에 대한 답답함과 아버지 죽음에 대한 원한으로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분석이 전해졌다. 통제받고 있는 생활과 원한으로 생긴 복수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에 그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드
호숫가를 거닐다 보면 부패한 고기가 떠오른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부패 정도가 심해서 그냥 가라앉아 있지 못하고 떠오른 것이다. 부패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작은 고기는 자중(自重)에 의해 바닥에 가라앉은 채 떠오르지 않고서 사라져가지만, 부패가 심한 고기는 반드시 떠올라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성현들은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표리부동의 인간들과는 사귀지 말라고 하였다. 그것은 “근주자적(近朱者赤) 근묵자흑(近墨者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의 노모는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들이 너의 흰빛을 시샘하나니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며 아들이 부패하지 않고 바른 길로 가게 하였다. 조선의 공신 이직은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은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고 부패한 위선적 충신(?)을 질책하였다. 이는 모두 부정을 삼가고 언행에 모순이 없기를 바라며 심저(心底)에 부패가 들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전직 대통령이었던 분이 북한의 김정은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풍산개 문제로 온 나라를 소란스럽게 한 적이 있었다.
오늘 중동의 석유부국 중의 한 나라인 카타르에서는 우리나라도 출전하여 선전한 월드컵 결승전이 있었다. 이 월드컵 경기에서는 전지전능의 신이 아닌 인간의 판정에 대한 오심을 조금이라도 없애도록 하기 위해 비디오 보조심판이 첫 실험되기도 했다. 이는 모두 사실에 근거하여 판정을 함으로써 불신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듯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모든 것은 점차적으로 신이 내린 판단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몇몇 국회의원들의 언행을 들여다보면 사실을 왜곡하는 정도를 넘어서 기망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국회의원들을 들어보자면, 김의O·장경O·고민O·김용O·황운O·윤미O·최강O 의원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귀로 들을 때에 사실대로 자세히 듣지 않아 오류가 생겨나고, 눈으로 볼 때에 사실대로 자세히 보지 않아 과오가 생겨나는 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오류와 과오에 기인한 언행이 국민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든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하고,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채 주관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듣고 보는데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들이 어떤 말을 하거나 행위를 하
뉴턴은 1687년 프린키피아에 인류의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3가지의 운동법칙을 발표하였다. 이 운동법칙은 힘이 작용하는 물체가 어떤 운동을 하는지를 기술하는 자연법칙으로 고전역학의 토대를 이룬다. 첫 번째, 관성의 법칙은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적으로 그 상태로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적으로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속도의 법칙은 “힘이 가해졌을 때 물체가 얻는 가속도는 가해지는 힘에 비례하고 물체의 질량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이는 물체의 질량이 클수록 가속도는 적어진다는 것이다. 세 번째,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모든 작용에 대해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두 물체의 서로에 대한 상호작용은 언제나 크기가 같고 방향만 반대인 것으로 힘은 오로지 외부로부터 오며 물체가 물체 자신에게 힘을 작용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10월말 할로윈 데이를 앞두고 이태원에서는 150명 남짓의 사람들이 압사하고 또 150명 남짓의 사람들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있었다. 어떤 사건에 대한 원인을 알고자 하면 그것과 관련한 것이 과거에 어떠한 상태
거리를 거닐다 수북히 떨어진 낙엽을 보면서 얼마남지 않은 한해를 아쉬워하게 된다. 미국에서의 삶은 그 어느 곳 보다도 바쁘게 돌아가는 거 같다.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정착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본주의의 본 고장답게 자신의 삶은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야 기회가 오고 미국의 꿈을 이룰수 있다. 미국에 온 탈북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은 지난 2009년 김정은 정권의 압박으로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고향 북한 평안북도를 뒤로 하고 탈북하여, 2010년 출산 한달만에 아버지가 먼저 와계신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생활을 하다가, 2019년 미국에 와서 정착한 사라 김씨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라 김씨는 북한에서 굶주림과 북한당국의 여러가지 박해로 인해 먼저 남한으로 탈북을 했었다. 현재 남성용 정장과 여성용 드레스 맞춤형 양복점에서 양복기술자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현재 어느 정도 탄탄해져가는 기술과 미국 생활에의 적응으로 점차 미국의 꿈을 이뤄가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녀의 미국 생활이 녹녹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미국 이민에 대한 준비가 잘되지 않은 채 갑자기 미국에 온 그녀는
계속 추워져가는 날씨가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울창하고 푸르렀던 나무잎들은 하나둘씩 누렇게 변하며 떨어져가고 날로 초라해지는 모습이다. 이렇게 겨울이 성큼 다가오니 얼마남지 않은 한해를 돌아보며 많은 생각에 잠긴다. 특히 북한의 폭정을 피해 온 미주 탈북민들이 이곳에서 잘 정착하고 있는지가 무엇보다 궁금해진다. 오늘은 지난 2014년 1월에 북한의 반인권적 행태를 참다못해 탈북, 중국과 태국을 거쳐 2014년 11월에 이곳 미국 시카고에 와서 약 8년간 생활을 하고 있는 탈북민 김마태씨의 의견을 중심으로 미국에 온 탈북민들의 만남과 정착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려 한다. 마태씨는 지난 5년간 한국정부가 북한과의 우호관계를 중시하며 탈북민들을 박대했기에, 많은 단체들이 준비했던 행사들이 열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주 탈북민들의 모임의 장들이 만들어지지 못했다고 큰 불만을 터뜨리기도 하였다. 마태씨는 많은 탈북민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새정부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미국생활을 하며 한인사회에도 잘 정착한 것으로 알려진 김마태씨는 주빌리 기도회 모임들이나 기타 다른행사등에서 탈북민들을 만나곤 했었지만, 현재는 모이는 열의가 작아졌다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