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세계사는 칭기즈칸(成吉思汗·1162~1227)에 의해 황인종의 세계 지배, 이른바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내지 팍스 타타리카(Pax Tatarica)가 열렸다. 5세기 훈족 아틸라(Attila)의 유럽 공격 이후, ‘푸른늑대’라 불리는 몽골군대가 지치지 않는 기마술과 신무기인 투석기(회회포)로 유럽을 기습해, 황화(黃禍·The Yellow Peril)가 나타나 아시아의 타타르(달단)가 라틴어에서는 타르타르(지옥)가 됐다. 아시아에서도 힘의 균형이 파괴돼 몽골의 세력권 아래에 놓이는 변화가 나타났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세조)가 대원제국을 건설해(1271), 한족(漢族)의 남송을 멸망시켜(1279) 한족의 역사가 단절됐다. 당시 고려는 ‘최씨 무신정권’으로, 강화로 천도까지 하며 무려 6차례 대몽전쟁을 치르며(1231~1259) 항몽의지를 불태웠다. 몽골도 고려의 끈질긴 항쟁에 놀라 고려를 복속시키기 보다는 부마국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설정해 황금씨족인 원나라 공주들이 고려 국왕과 혼인을 했다. 곧 원과 고려는 천자·제후라는 조공·책봉의 사대관계를 처음이자 유일하게 체결했다. 그런 과정에서 몽골풍(체두변발·만두·증류식소주·설렁탕
=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우리역사의 오류와 편견 등을 바로 잡아보기로 했다. 그간 이 방면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오신 '이영철' 교수를 필진으로 모셨다. 필자가 밝힌 바대로 "코페르니쿠스적이고 르네상스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편집국> = 인구에 회자되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단심가'는 이러하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此身死了死了一百番更死了, 白骨爲塵土魂魄有也無, 向主一片丹心寧有改理也歟) '단심가'는 이방원(후일 태종·1367~1422)의 '하여가'에 대해 포은의 고려에 대한 충절을 읊은 불후의 시조이다. 그런데 「포은집」에 수록된 한역시를 우리말로 옮길 때, ‘更’을 ‘다시’로 번역해야 옳은데 ‘고쳐’로 오역해서 비롯된 일이다. 아니 사람이 어찌 고쳐 죽을 수가 있겠는가. 이는 개항 이후 추진된 조선의 근대화 프로젝트인 갑오경장(甲午更張)을 보면 명확해 진다. 우리는 1894년의 이 개혁을 ‘갑오갱장’으로 읽지 않고 ‘갑오경장’으로 읽는다. ‘경장(更張)’은 거문고 줄을 조율(고쳐 맴)한다는 뜻이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