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자’ 이병주와 ‘적폐청산’의 윤석열

- 역사인식 없이 역사 쓰는 한국 언론...
- ‘현재’와 ‘여기’를 관통할 수 있는 인물인가?
- ‘적폐청산’으로 등장한 윤, 제대로 전공 살려야

 

소설가 이병주는 ‘패션이스트 자유주의자’였다. 언론사 주필로 있을 당시 5·16혁명의 취지에 반하는 논설로 혁명정부로부터 10년형을 선고받고 2년 6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출옥 후 곧 바로 소설 <알렉산드리아>로 문단에 등단했다.

독재에 저항하는 민중의 이야기인가 해서 좌파들은 이병주를 하늘처럼 칭송했지만, 자세히 겪어본 후에는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희대의 자유주의자라며 온갖 저주를 퍼붓고는 곁을 떠나갔다.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주

 

그가 일흔 즈음에 세상 떠났으니 결코 길게 산 인생은 아니었다. 죽기 전에 백담사에 찾아가서 전두환 전 대통령도 면담했던 바 있다. 동갑내기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평생 아주 친한 사이를 유지했다. 혁명정부 하에서 옥살이까지 했음에도 말이다...

 

짧은 시간 내에 그는 80권이 넘는 소설책을 썼다. 과히 원고지 위에 펼쳐진 신기에 가까운 그의 펜 속도는 5선지 음표 위의 천재 작곡가보다 더 빨라서, 모차르트의 작곡 속도와도 견주어 비교될 수 있었다. 모차르트의 클래식이 감동적이듯이 이병주 소설도 무척 감동적이다. 특히 그의 이야기 전개는 남성적이면서 야릇한 재미가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먼저 받은 신문사 원고료를 ‘도박장’에 가서 모두 탕진하고 빈털터리의 생활고로 고통 받았듯이, 술과 여자를 좋아했던 소설가 이병주는 친구들과 함께 기생집 가기에 정말 바빴다. 그 결과 빚만 잔뜩 남긴 채 어느 날 갑자기 자유주의자 이병주는 바람으로 흙으로 돌아가 버렸다.

 

 

가히 사상가로 불려 질 수도 있는 이병주의 역사관은 칸트(Immanuel. Kant)와 헤겔(G. W. F. Hegel)의 역사철학을 관통한다. 면소재지 시골도서관 수준 이상이었던 그의 서재는 대부분 일본서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문명과 서양사상에 대한 다양한 번역서들이 사상가 이병주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대표소설 <산하>의 서문은 한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그런데 사실 일상에서 이병주는 여기에다가 하나를 덧붙인다.

“별빛에 비추면 소설이 된다”는 말을...

 

역사, 신화, 소설과 공산주의

 

인간의 역사의식 속에는 이 햇빛, 달빛, 별빛 3가지가 함께 작동한다는 것이 그의 역사관이다. 대명천지 환한 낯에 이루어진 ‘정식 역사’도 햇빛에 조금씩 바래나가는데, 하물며 달빛아래 도깨비들과 귀신들이 오락가락하는 어스름한 어둠속에서야 어떻게 현장과 사건과 인물들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자기 생각 또는 이념에 맞는 엉터리 이야기들을 마음대로 지어내고, 그럴싸하게 사기치는 ‘신화’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도 한 발 더 나가서, 카뮈(Albert Camus)의 소설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Meursault)가 사형 집행 전 감옥 창틀 넘어 보았던 별빛에 다다르면, 몽상과 환상의 이야기들은 마침내 판타지 ‘소설’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를 종합해 보면, 역사에서 완벽한 절대적인 사실(Fact)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독일 관념주의철학자들은 이성에 기반을 둔 영국과 프랑스 계몽주의철학자들이 강조했던, "역사는 반듯한 직선상에서 '진보'한다"는 가설에 저항한다.

 

또한 공산주의 창시자 마르크스는 이런 정황을 이해하고, 한 발 더 나가서 기획된 ‘역사의 끝’을 예기했다. 마르크스가 역사의 불확실성을 부인하고 역사를 움직일 수 없는 발전 과정으로 만들어버린 결과, 공산주의 역사 결정론은 종교가 되어버렸다. 이런 공산주의적 역사 인식을 소설가 이병주는 자신의 영역인 ‘소설’의 영역 그 자체라고 평가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보면, 박정희의 5. 16-전두환의 12. 12-김대중의 광주-노태우의 6. 29- 노무현의 부엉이바위-이명박·박근혜의 투옥 등등...  과연 본인들이 의도했던 역사적 행로가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발현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항상 역사는 휘어져서 진행된다”고 하는 역사인식이 현실과 진실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소설가 이병주의 역사관은 문학적이면서도 사상의 깊이가 있다.

 

오타쿠와 덕후의 시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신문쟁이들이 신문사를 나와서 유명한 소설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만큼 언론인들은 범상치 않다. 일반인과는 DNA자체가 많이 다르다. 소위 ‘오타쿠’(특정 대상에 강하게 몰두하는 사람, 일본 신조어) 거나, 프랑스 사회학자 튀르켕이 강조하는 사회적 아노미현상을 즐기는 ‘소시오패스’ 성향이 아주 강하다.

그러나 공통점은 자신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공부한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상황은 21세기 작금의 한국 언론인들은 이기적인 사적 이해에만 천착한 결과, 너무도 몰역사적이라는 사실이다. “인간”(Human)은 라틴어 “Humus"에서 왔다. 다시 말해, ‘흙으로 가는 존재’에서 따온 말이다.

언론인이자 소설가 이병주는 그렇게 인간적으로, 인도주의적으로 살았다. 일제시대와 해방,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경험했던 한 세대 위의 언론인들은 지적 내공의 깊이가 달랐다.

 

예를 들어, 필자가 좋아하는 조선일보 선우 정 기자가 그의 부친이었던 선우 휘 기자의 수준을 따라가기가 벅차게 보여 지는 것과 견줄 수 있다. 위대한 언론인들을 그리워하는 이런 향수는 필자만의 외로운 고독은 아닐 것이다.

 

 

며칠 전, 국민의 힘 대선후보 최종경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 문정권의 명령으로 적폐청산을 하다가, 자신도 휘어지는 역사의 진행 속에서 이제 부패와 무능의 문정권에 대해 적폐청산하라는 국민들의 요청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5천만 국민과 북한까지 상대해야하는 통치의 행위는 심대한 사상적 결단이 필요하다. 시간으로서의 ‘현재’(Now)와 장소로서의 ‘여기’(Here)를 관통해 내는 역사인식과 정치사상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검사출신의 윤후보에게 이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그의 사상적 빈곤으로 인해 또 한번 대한민국 역사가 휘어질 까봐 심히 불안하기도 하다.

 

거짓의 적폐청산을 넘어

 

그래도 위선과 기만, 거짓과 사기극으로 점철된 문정권에 대한 누적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윤후보의 전공인 적폐청산만이라도 제대로 해준다면 일단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크게 길어질 수는 있을 것 같다.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과 함께, 문정권이 획책했던 자유대한민국 체제 파괴행위에 대한 적폐청산의 체계적인 청사진을 윤후보가 제대로 국민들에게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설사 적폐청산의 정-반-합 과정에서 대한민국 역사가 조금 휘어진다 하더라도...

 

 

강 · 량 <정치학박사 /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초청시론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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