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前) 대통령 장례에 비친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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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시절과 현실을 관통한 노재봉의 추도사
- “역사는 언제나 휘어져 진행된다...”

 

전설의 새 ‘봉황(鳳凰)’은 우는 소리가 퉁소소리와 같고, 살아있는 벌레나 풀들을 먹지 않으며, 무리 짓거나 난잡하게 날지 않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오직 대나무 열매만을 먹는 새다. 그래서 예로부터 청렴하고 고귀한 기품을 가진 ‘군자’ 또는 ‘성인’을 상징하는 새로 기억되고 있다.

 

유족을 겁박한 ‘조사(弔辭)’ 

 

노재봉 전 총리는 10월 30일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國家葬)에서 추도사(追悼辭)를 낭독하며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극심한 이념대립과 6·25로 인한 분단을 극복하고, 지도자와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만들어내었던 자유대한민국의 기적이 21세기 들어 민족, 민중, 인민을 강조하는 좌파세력들에 의해서 국가역량이 총체적으로 망가지고 있는 작금의 위기상황을 깊이 염려했던 것 같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끝까지 주저했던 문대통령은 특유의 아리송한 비아냥거림을 뒤로 한 채, 로마교황의 방북을 종용해야 한다며 외유해버렸고, 노 전 총리의 추도사 전에 김부겸 총리는 슬픔에 잠긴 유족들에게 대를 이어서 광주에 대해 사죄하라는 겁박성의 ‘조사(弔辭)’를 했다.

 

내로남불, 자화자찬, 아시타비로 상징되는 운동권 출신 총리의 무식하고 가학적인 反헌법적 언사를 접하자, 100석 규모의 내외 귀빈석에서는 육두문자를 비롯한 볼멘 아우성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현직 총리라는 인물이 전직 대통령을 보내는 국가장 조사에서 인간 각자의 양심에 따라 선택되어야 하는 ‘사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그것도 대를 이어서 마치 ‘연좌제(緣坐制)’처럼 남은 가족들이 사죄를 하라니...

이를 듣는 조문객 모두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장례식장이 아니었더라면, 더 큰 소요로 번질 수도 있었던 장면이 연출되었다.

 

 

차원이 다른 품격의 추도사((追悼辭)

 

이어서 진행된 노재봉 전 총리의 추도사(追悼辭)는 김부겸 총리의 조사 내용과는 지적인 품격 차원에서 너무나도 비교되는 내용이었다.

노 전 총리는 서울올림픽의 역사적 의미와 대한민국을 민주화로 이끌었던 6·29선언이 한국 현대사에서 갖는 역사성을 분명하게 밝혔다. 북방외교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전방위 외교정책 노력으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이끌어 낸 과정들이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공동의 선을 이루었던 역사적 의미들을 함축적으로 설명했다.

 

국민 직선 대통령 선거를 표방했던 노 전 대통령의 6·29선언은, 단지 대선 승리를 위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혁명과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혁명, 전두환 대통령의 확실한 대한민국 흑자경제 기반 위에 비로소 가능했던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역할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을 정치경제, 외교안보 측면에서 당당한 중견국가로 만들어 놓자, 그로 인해 성장한 수많은 중산층들이 자발적으로 시민사회를 형성했으며, 시장과 권력을 견제하는 선진사회로 나아가는 초석을 놓았고, 그 확실한 시발점이 바로 노대통령의 6·29선언이었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스스로 국민들로부터 ‘물태우’라고 불려지기를 원했고, 국민들이 자신을 그런 친근하고 소박한 물통령으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그만큼 선진화된 결과라고 스스로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엘리트 군인들의 숙명적 현대사

 

필자가 보기에는 위대한 중산층의 시대가 지나자,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좌파정권을 기반으로 작금의 문정권이 탄생했다. 그 세력의 선전 선동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계층을 개념없이 적대시하는 것으로 조작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조작으로 ‘적(敵)’이 된 ‘부르주아’가 지난 세월 위대한 지도자들과 함께 피와 땀, 눈물로 만들어 내었던 대한민국 ‘중산층’이란 사실을 일부 국민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그러니 조국이란 자가 국민들을 가재-붕어-개구리로 묘사하고, 여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도 위대한 보통사람인 대한민국 국민들을 ‘부나방’으로 취급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추도사에서 노재봉 전 총리는 국가에 대한 군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6·25전쟁 중에 만들어졌던 4년제 육사 정규생도였던 육사 11기생들과 기타 엘리트 군인들은 한국 현대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시 6·25라는 처참한 전쟁을 몸소 겪었고,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였던 국가역량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해외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가장 유능한 엘리트그룹이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이 가졌던 국가에 대한 역사의식 그리고 사명감 등이 국가위기상황에서 국가통치에 그들이 불가피하게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국민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으로 작동했다고 노 전 총리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자신들이 가졌던 숙명, 그 의무감과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고 누누이 언급하며, 자신이야말로 마지막 군 출신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노태우 대통령이 꿈꿨던 평화의 길

 

또한 노 전 대통령이 프랑스로부터 KTX를 들여온 것은 남으로는 일본열도를 잇고, 북으로는 유라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평화의 길을 만들려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일 그리고 호주-대만-동남아를 잇는 해양세력을 발판으로, 북한과 중국을 넘어서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당당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했으나, 그 꿈은 작금에 심각한 도전정도를 넘어, 안과 밖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실존적 위협으로까지 제고되고 있어서 그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노 전 총리는 끝으로 “역사는 인간들이 만들면서 그 역사를 인간들이 잘 이해하기는 정녕 어려운가 보다”라며, “역사는 언제나 휘어져 진행되지 않느냐”는 의미심장한 내용으로 추도사를 마무리했다.

 

노 전 총리의 마무리 언급 대목은 헤겔(G. W. F. Hegel)과 칸트(Immanuel Kant)의 역사철학론을 떠올리게 한다. 노 전 총리의 추도사는 온갖 거짓과 사기로 오염된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명확한 정리였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쳐 왔던 스승의 진심과 영혼이 담긴 따뜻한 가르침이기도 했다.

 

또한 노 전 총리의 눈물에는 격동의 시기에 자신이 모셨던 지도자의 역사적 업적과 그 속에 함께 했던 추억을 기리고, 작금의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상황을 염려하는 충정의 마음이 들어있었다고 보여진다.

일생에 단 한번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 봉황의 울음처럼, 그분의 눈물이 작금의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수많은 자유애국시민들의 영혼도 함께 움직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강 · 량 <정치학박사 /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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