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통령 이승만과 부국대통령 박정희, 그리고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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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8.15 건국사와 링컨 게티스버그 연설의 유사성
- 자유민주주의체제 공고화를 향한 숭고한 대의
- 그런 대의를 위해 지금 대한민국은 내전 중인데...

“합리적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제도는 각 나라가 갖고 있는 전통적·문화적 습속(Mores)을 넘어서기가 무척 힘들다. 그리고 이를 무시한 채, 맹목적으로 자유와 평등, 인간의 가치를 강요할 경우, 민주주의는 내부적 갈등의 온상이 될 수 있다.”

이는 200년 전, ‘미국의 민주주의’ (Democracy in America)를 저술했던 토크빌 (Alexis de Tocqueville)의 명언이다.

 

 

자유민주주의가 겪는 도전

 

걸프전 이후 민주주의의 전파를 위해 시도되었던 미국의 ‘자유주의적 헤게모니’(Liberal Hegemony) 대외정책은 작금의 카불공항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을 끝으로, 처절하게 실패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형국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 세계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확산시키면, 지구촌의 영구적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았던 미국의 생각은 각 나라의 전통적 습속과 부족주의 같은 개별적 민족주의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모멸스런 참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을 통한 폭발적인 성장은 근대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소위 국가 간의 이동과 교역을 배가시켰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여권 (Passport)제도였다. 구체적으로 국경선과 여권이란 것이 생겨나서, 인적·물적 교류와 이동을 제한했던 역사적 시간은 불과 250년 정도밖엔 안 된다. 그 사이에 인간의 합리적·이성적 지혜는 여러 형태의 근대국가 유형을 만들어 냈었다.

영국과 미국형의 자유주의에 기초한 근대국가, 거듭된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 속에서 근대국가 형성 후 170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착시킨 프랑스형, 인종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를 앞세워 1-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후에서야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화한 독일형과 사회주의적 전체주의 근대국가, 다시 말해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국가 유형을 추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서 혁명과 반혁명, 전쟁과 평화조약 사이에서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소위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압도적인 우위가 노정되었던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갈수록 이념과 체제, 지정학, 국익, 민족주의 등과 같은 관점에서 여러 가지 국제문제를 발생시켰다. 그 결과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제도가 마치 퇴화하는 것처럼 보여 지는 듯하다.

 

인간의 문제와 자유민주주의

 

일본의 ‘닌텐도’ 게임의 슈퍼마리오처럼 재빨라 보이는 일본인 철학자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모든 이념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끝이 났다”(The End of Ideology)고 강변하다가 소위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를 다시 언급하고 있다. 다시말해 후쿠야마도 인간의 문화적·역사적·인종적 습속은 이념의 역사적 발전단계를 고약하게 흔들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제도를 운영하는 인간이 문제였지, 올바른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근본적인 사회문제의 온상이 된 적은 근대 역사이후 어디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조선조의 폐망과 구한말, 일제 식민지시대, 해방정국, 전 국민의 70%가 선호했던 사회주의 제도... 그 속에서 이승만이란 인물이 전통적 습속을 뛰어넘어 자유민주주의체제로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사실은 과히 기적에 가깝다.

미국은 1776년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4년에 걸친 남북전쟁 (American Civil War, 1861-1864)이란 어마어마한 희생을 감수했다. 전쟁의 전환점이 되었던 게티스버그 전투에서만 남북 양측 모두 6만여명의 병사들이 희생당했다. 당시 한여름이었던 7월 1일부터의 3일간 전투 후에,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는 죽은 병사들의 시체와 전쟁에 동원된 말들의 사체를 치우는 데만 꼬박 3달이 더 걸렸다.

 

11월에야 전장이 정리되자, 링컨은 한걸음에 달려가 사망한 병사들의 숭고한 헌신을 기념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링컨의 남북전쟁은 바로 “체제전쟁”이었다.

 

미국의 체제전쟁, 그리고 게티스버그

 

1차 세계대전 이전에 링컨이야말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내는 내전의 당사자였고, 그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켰다. 수많은 동족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현재 링컨의 동상은 수도 워싱턴 DC 한복판 메모리얼공원에 세워져 있고, 그 동상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국가들의 지표와 표상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이승만은 이런 미국의 역사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박사논문에 미국의 건국전쟁과 남북전쟁의 의미와 정치적 상징들이 올곧이 다 들어있다.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의 체제이념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일생 삶의 지표로 삼고 이를 실천했다.

그는 소련과 김일성의 한반도 적화야욕을 간파했고, 5·10 총선을 방해하려는 남로당세력의 테러와 무장봉기를 제압하면서 제헌국회를 통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그는 1948년 8.15 건국기념사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의미를 제대로 담았고 이를 널리 전파시켰다.

 

이승만의 건국사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연상케 하는데, 이는 이승만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에서 미국의 링컨과도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확립을 위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온전히 알려주는 징표다.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서서, 변함없는 자유민주주의의 모범적 국가임을 세세토록 국제사회에 표명 한다”는 그의 약속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의 영속성을 약속했던 링컨의 감동적인 울림과도 일치하고 있다.

 

게티스버그 연설과 8·15 건국사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부국대통령 박정희의 권위주의정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나름대로 국가건설과 국가발전을 위한 분명한 정치적 명분들이 존재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빌미로 공산좌익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거짓 선동했고, 마침내 여러 차례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정권이 거듭될수록 좌우의 이념적 내전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는 극심한 사회적 문제들은 배가되었다. 급기야 문재인정권은 그들이 강조하는 전체주의로의 거짓된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을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 정치적으로는 전체주의 형태로 체제를 전환시키려고 하고 있다.

 

 

1980년대 권위주의정권에 맞서서 진보적인 사고로 사회변화를 원했던 소위 586세대들 대부분이 보다 선진화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갈구하며, 청춘을 희생하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보면, 체제타락과 체제전환에 이어서 체제전복을 노리는 작금의 얼치기 주사파 문정권 위정자들에게 속절없이 속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소위 1987년 6·10 민주화항쟁은 체제전복을 노리는 작금의 주사파 위정자들의 대한민국 반역을 위한 원년이 되었다. 자유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원했던 당시 100만 학도들의 청춘과 염원은 위선과 기만, 사기와 거짓말로 무장한 양아치 악령들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간 셈이 되었다.

 

현재 문정권이 소위 시민단체를 이용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대한민국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행위는 무력을 앞세우지 않는 “보이지 않는 전복전”이라고 볼 수 있다. 링컨이 주도한 체제수호 전쟁이었던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6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체제전쟁에서 사망자는 거의 없다. 하지만 총과 칼이 아니라, 간교하게 합법을 가장한 전복 파르티잔(Partizan) 전략·전술로 자유를 갈구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농락하고 있다.

만약 이대로 자유대한민국이 무너진다면, 그 결과는 미국의 남북전쟁 결과보다도 더 비참하고 심각한, 주권자인 국민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사회적 자연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

 

 

정권교체로 다시 시작해야

 

겉으로 보여지는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동시에 엄청난 역사적 파국을 유발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종북세력들과의 전장 속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치열한 내전 중이다. 해방직후 공산주의의 거친 도전 속에서 이승만이 다졌던 건국정신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초심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자유진영의 협력전선을 가다듬고, 종북세력들과의 당면한 내전을 ‘정권교체’라는 대선 승리로 일차적인 마무리를 해야 할 것이다.

게티스버그 전투의 능선을 넘어서도 링컨이 2년 이상 내전을 치뤘듯, 정권교체 이후에도 자유대한민국의 험난한 여정은 계속되어야겠기에...

 

 

강 · 량 <정치학박사 /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초청시론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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