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권의 횡포... '보나파르티즘' 등장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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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추고, 속이고, 대못박기에 여념이 없는 文정권!
- 권력형 부패, 총체적 아노미, 국가폭력에 정당성 부여!!
- 윤석열, 어떻게 싸울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

 

필자가 영국유학 당시, 어렵사리 돈을 모아 쉽지 않았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여행했던 적이 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필자는 두 가지 광경에 크게 놀랐다.  

하나는 엄청난 노르웨이 산맥에 이리저리 터널을 뚫으면서,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도로들을 만들어 내는 노르웨이의 터널 공법이었다. 둘째는 핀란드 젊은 청년들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높은 자살률이었다.

 

북유럽 청년들의 놀라운 자살률

 

당시 핀란드 6백만 인구 중 30%정도가 수도인 헬싱키에 살았고, 경제력과 국가투명성 정도에서도 단연 앞서나가는 선진국가였지만, 문제는 핀란드 젊은이들의 정신세계가 우울했고, 많이 아팠다. 헬싱키 관광지 여기저기에서 아침부터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청년들이 적지 않았고, 술 취한 청년들의 자살률은 여행객의 상상을 초월했다.

보다 못한 핀란드정부가 청년들에게 일주일 중 화요일 하루에만 술을 팔아야 한다는 비민주적인 결정을 내릴 정도까지 청년들의 알코올문제가 심각했다. 마치 영혼을 상실해버린 것 같은 핀란드 청년들의 모습에 필자도 그 원인을 캐묻지 않을 수 없었다.

 

주된 원인은 지나친 포퓰리즘(Populism) 복지제도에 따른 청년들의 미래에 대한 ‘상실감’이었다. 노력해도 미래가 없는 사회, 잔뜩 미래세대에게 빚만 지우는 기성세대, 적당히 일하지 않고 놀아도 제공되는 청년 실업급여 등등... 삶의 지표를 상실한 핀란드 청년들은 그래서 술 취했고, 그렇게 쉽게 인생을 포기했다.

물론 핀란드정부는 이런 사회문제를 직시했다. 그래서 복지제도를 축소했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정신상담사들을 고용해서 적극적으로 청년들의 심리상태를 개선해 나갔다. 그 결과, 2천년대 이후로는 명실 공히 선진국으로서의 건전한 국가위상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공산전체주의 사회에서의 고통과 삶

 

20세기 역사 속에서 청년들이 자살하던 시대는 많았다. 특히 소련의 압제에 시달리던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동구권에서의 청년자살률은 극단적으로 높았다. 당연히 그 이유는 소련의 압제 하에서, 미래를 상실했던 젊은 세대들의 고통과 삶의 ‘좌절감’이었다.

그런데 20세기 동구(東歐)와 북구(北歐)라는 유럽지역에서의 역사적 갈등 상황 속에서 존재했던, 그래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내었던 대한민국하고는 질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도 너무나 먼 나라들의 이야기여야만 하는 그런 문제들이 文정권 말기인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미 양식과 상식이 파괴된 지 오래고, 각종 권력형 부정부패와 타락한 정의와 공정이 ‘내로남불’의 일방적인 정신세계에서 ‘수호(守護)’되고 있는 대한민국이 되어 버렸다. OECD회원국 중에 유일하게 미래세대를 희생시키는 폭발적인 포퓰리즘과 대한민국의 자살을 유도하는 것 같은 외교안보와 정치경제정책들은 대한민국 청년세대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케 만들었다.

지금까지 언론의 지적을 받았던, 그래서 ‘여적죄(與敵罪)’의 처벌이 불가피할것으로 여기지는 원전 폐기, 울산선거 조작, 종북적 대북정책 등은 고사하고, 여전히 부동산, 가상화폐, 불법 정치자금과 연관된 수많은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행위가 방해받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박범계 법무장관의 대대적인 검찰숙청작업을 통해 한마디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감추고, 속이고, 대못 박는 文정권

 

필자 또한 당면한 모순된 현실이 이렇게 참아내기 어려운데, 한창 피어나야 할 젊은 세대의 실망, 절망, 상실감, 위기감은 언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싶다. 심각한 사회적 아노미현상을 경험하면서, 사회적 정의와 공정을 상실한 젊은 세대는 분명히 튀르켕(Emile Durkheim)이 강조하는 그런 종류의 ‘사회적 자살’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자살유도자들은 모든 것을 숨기고, 거짓말하면서, 위선적·기만적인 몸짓으로 자신들은 자나 깨나 대한민국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명분으로 모든 정책분야에서 소위 ‘대못’들을 박고 있다.

 

이 정도 되면 국민들의 정권에 대한 사회적 분노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다. 그런 분노는 또 다른 정치적 극단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의회민주주의국가 내에서 이런 극단적 현상에서 또 다른 극단적 현상으로 이어지는 과정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론이 바로 ‘보나파르티즘’ (Bonopartism)이다.

흔히 나폴레옹 I세의 배경을 업고, 1842년 혁명이후 대통령으로 등장한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III세)이, 결국 쿠데타를 통해 제2공화정을 제거하고, 황제로 등극한 현상을 일반적으로 ‘보나파르티즘’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보나파르티즘’ (Bonopartism)

 

대한민국의 현대사속에서도, 어설픈 식자들의 농간으로 인해 박정희 전대통령의 리더십이 보나파르티즘으로 쉽게 언급되기도 한다. 외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드골이나 대처, 심지어 레이건이나 최근의 트럼프 전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보나파르티즘’이란 정치적 수사 (Rhetoric)로 묘사되는 특정 정치적 리더십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민족주의와 군국주의,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혁명과 반혁명, 공화국과 군주국 등의 정치체제 정도에서, 한 몸에 두 얼굴을 가진 ‘키메라’(Chimera)의 존재감 정도로 쉽게 구분되고, 맘대로 이해되어지는 부분도 있다.

 

대한민국을 자살케 하려는 文정권發 사회적 ‘아노미현상’은 분명히 文정권 스스로 국민들이 보나파르티즘에 대한 향수를 느끼도록 만드는 ‘사회공작’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보여진다. 이들은 보나파르티즘 자체를 권위적 중앙집권체제하에서, 합법적 폭력을 가용한 ‘철권통치’ 또는 ‘군사독재체제’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의 ‘민주팔이’로 구축된 사회적 ‘진지’와 ‘성역화’ 결실물들이 당당하게 자신들을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에, 현재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이 '좌파적 보나파르티즘'(Left Bonapartism)을 더욱 강화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우파적 보나파르티즘(Right Bonapartism)과 반발이 집단적인 사회폭력현상으로 나타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마치 가두리 양식하듯 고기떼들이 그물 망 안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하지만 국회의원, 언론인, 관료와 군인, 기업인 등등의 사회적 엘리트들이 사분오열하고 있다. 자유와 인권에 대한 가치가 상실되고 있으며, 계층을 대표할 대표자 또한 획일적인 평등의식으로 말소되는 과정에 있다면, 분명 국민들은 이런 혼란을 바로 잡아줄 ‘보나파르트’ (Bonaparte)의 출현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기대는 필자의 생각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전직대통령들을 구속하는 등 文정권에 부역한 사실을 국민들이 다 알지만, 文정권 얼치기 위정자들의 범죄를 단죄할 수 있다는 '기대' 또한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국민이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윤석열에게 원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정권을 교체해서 문재인과 그 일당들을 정죄(定罪)해 달라는 거다. 그렇게만 된다면 X파일이고 뭐고, 그의 가정사 문제쯤은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文정권 얼치기 위정자들은 바로 이점을 노리지 않을까.

만약 윤석열이 의회정치와 정당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기반으로 전 국민의 열망을 담아서 개인적 차원의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을 행사할 경우, 이는 文정권이 원하는 우파 보나파르티즘이 구축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압도적인 표차이로 윤석열이 당선된 후에 강력한 리더십으로 文정권을 정죄하면,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속이 시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감성정치'에는 항상 정치적 함정 (Loophole)이 따라다닌다. 그리고 너무나도 무능한 文정권 위정자들이 딱 한 가지 잘하는 바로 그 기술, 정치공작에 말려들어갈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사회적 진지와 성역화를 구축한 이들 주사파 위정자들은 언제든지 막판 뒤집기 시도로 정국을 혼란케 할 수 있는 존재들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니 윤석열은 비록 엄청나게 비루하고, 국민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는 ‘꼰대’처럼 보이더라도, 의회정치와 정당정치의 틀속에서 경쟁하고 협력하여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

물론 지켜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다소 '드라마틱' (Dramatic)한 묘미는 없을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현실과 미래세대의 안녕을 위해 한 단계씩 분명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백번 옳다.

 

 

강 · 량 <정치학박사 / 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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