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정담(政談)] 이 나라 청춘들이 거지냐? 바보냐?

- 공정과 정의를 실종시킨 무리가 활개치고
- 돈으로 표 사려는 사탕발림이 난무하는데
- '잠룡’ 아닌 ‘잡놈’ 수준의 공약(空約)일뿐
- 청춘들이 절규한다... “청춘을 돌려다오!”

 

李  ·  坤  ·  大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鼓動)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라떼는[나 때는]’ 중학교 국어책에 실렸던 글이다. 그 이후에도 쭈욱 ‘청춘’은 그랬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우울감이 심해지면서 자살을 고려해 본 사람도 급증하는 추세다. 조사에 참여한 사람 중 16.3%는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비율 역시 젊은 세대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20대와 30대는 각각 22.5%, 21.9%로 높았고, 50대는 12.5%, 60대는 10%였다...”

 

  이 나라 ‘청춘’들 5명 중에 1명‘극단적인 선택’까지 머릿속에 그려봤단다. 보건복지부에서 며칠 전 발표한 ‘코로나 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라고 한다.

  과연 이러한 황망한 일이, 단지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그 ‘돌림병’ 때문에만 벌어졌을까? 결코 아니라는데 많은 국민들도 동의할 거라고 믿는다. 더군다나 자연발생적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게다.

 

  어느 누군가가 주절댔듯이 청춘은 아프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래야 청춘이라고도 한다. 때문에 그 아픔은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원동력이었다. 즉 살아있다는 징표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바로 이 나라에서, 바로 지금, 그 아픔을 ‘스스로 죽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청춘’들이 널려있다.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많은 ‘청춘’들은 “앞날이 캄캄”하다거나, “희망이 절벽”이라고 머리를 떨구며 한탄한다.

  말 돌리지 말고, 말따먹기 치우고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짚어나가자.

 

  한 달여 전, ‘주물럭 심판’ 과정에서 엄정한 국가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인(公認)한 바대로 ‘위선’(僞善) ‘무능’(無能) ‘내로남불’(Naeronambul)주체세력이 책임을 져야하지 않는가? 공교롭게도 그 주체세력이 ‘주체사상’(主體思想)과 관련이 있다고들 저잣거리에서는 수군거리는데...

 

  ‘공정’(公正)을 ‘空正’(공정)으로 만들었다.

  ‘정의’(正義)를 물구나무서게 했다.

  ‘일자리’는 통계(統計)로만 늘려왔다.

  '네 탓'과 ‘돌림병’을 여전히 핑계로 들이댄다.

  ‘영혼을 끌어 모아’ 투기판에 나서게 떠밀었다.

  ‘주물럭 심판’ 때는 “역사에 대한 경험치가 낮다”고 멸시했다. 그리고는 이제 와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는 청년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경기도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세계여행비 1000만 원을 지원해주면 어떨까...”

  단순한 제안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군 가산점제는 위헌이라고 판정이 났기 때문에 제대할 때 사회출발자금을 3000만원 정도, 가능하면 장만해서 드렸으면 한다... 군대에 안 간 친구들이 그 시기에 저축할 수 있는 돈보다 비슷하거나 좀 더 많이 드려서 제대 후에 취업할 때까지 일단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괜찮아 보인다...”

  여기에는 ‘청춘’을 남(男)과 여(女)로 슬쩍 갈라치기 하려는 흉계마저 섞여있다고 지적을 받는단다. 지난 ‘주물럭 심판’에서 이른바 ‘이대남’의 뜨거운 맛을 봤던 터라...

 

“모든 신생아가 사회초년생이 됐을 때 부모 찬스 없이도 자립 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20년 적립형으로 1억 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설계 중...”

  이왕 내지르기 시작한 거니, 통 크게 나가자는 심보인 듯도 하다.

 

  주둥이는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 그저 입을 옷이 부족해서, 먹을 음식이 없어서 이 나라 ‘청춘’들이 고통을 겪고 있나? 여행을 다니지 못해서 아픔을 호소하는 건가? ‘부모 찬스’의 원조가 어떤 작자들인 줄 모르나? 단언컨대...

 

  이 나라 ‘청춘’들은 자신들의 권리, 즉 선거판의 ‘표’(票)를 팔아서까지 끼니를 때울 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 몇 푼으로 희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특히, 저들 사탕발림의 속마음까지 꿰뚫고 있다질 않나.

 

“우리 자식새끼들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니들이나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개천에서 그럭저럭 살도록 하라니까...”

 

  더군다나, 그 막대한 ‘표’(票) 값이 어디 저들 주체세력의 지갑이나 통장에서 나오는가? 나라 곳간을 털겠다는 건데...

  ‘청춘’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자신들의 허리가 휘어지게 될 애물단지를 키우는 격이란 걸 모르고 지나칠 만큼 바보가 아니다. 여차하면, 남의 나라에 대고 앵벌이를 해야 하는 신세가 될 가능성도 직시하고 있단다.

 

  때가 때인지라, 이 나라 ‘정치권력’을 손아귀에 넣어보겠다는 그 무슨 ‘잠룡’(潛龍)들이 설쳐댄다. 그러나 이 나라의 실질적인 주인인 ‘청춘’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짓거리를 벌리는 작자들은 ‘잡룡’(雜龍), 아니 ‘잡놈’에 불과할 뿐이다.

  저들에게 떠돌이 논객(論客)이 수 년 전부터 지껄여왔던 짧은 넋두리를 들려준다,

 

“국가 또는 공공의 이익으로 포장된 개인의 욕심과 허황된 꿈이 국민들을 몹시 피곤하게 하고, 나라와 본인 모두에게 장기간 해악(害惡)이 된 사례를 수 없이 보았다.”

 

 

  이에 더하여, 지금 이 나라 ‘청춘’들이 외치고 싶을 절박한 한마디를 이 꼰대가 읊어보련다.

 

  “우리들에게 청춘을 돌려다오!”

 

  ‘라떼’ 중학교 국어책에 실렸던 90여년 전의 ‘청춘’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을 게다. 그래서 ‘청춘’일 테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현실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대다. 우리는 이 황금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역동하자!”

 

<時節 論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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