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藝能)에 드리운 포퓰리즘

- 미스트롯2 열풍이 던져준 기우(杞憂).
- 마스터라는 어르신들의 훈계(訓戒)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사회..
- 대중인기와 영합만 판치는 그런 아수라에서는 미래 없어..,

경의선 타고 미스트롯2 이야기 만발

 

 

통일되면 신의주로 연결될 경의선(京義線)을 자주 이용하는 요즘이다. 주말을 맞아 양평행 기차 칸에서 오랜만에 여유 아닌 여유를 부려본다. 조용히 눈을 감고 지난주의 잔상(殘像)들과 다가올 한주의 계획(計劃)들을 떠올려보는데 안성맞춤의 공간이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본격적으로 누려볼 요량이었는데, 어느 역에선가 무더기 등산객들이 기차 칸을 점령(?)했다.

 

우한 코로나로 인해 닫혀있던 일상에서 그나마 벗어나 보려는 몸부림으로 이해하면서 여정은 계속 됐다. 대부분 남녀 어르신들이 자리한 곳에서 재잘재잘 터져 나오는 대화의 소재가 며칠 전 막을 내린 미스트롯2 이야기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효녀가 1등한 게 참 잘되었다’, ‘그래도 노래는 홍씨가 잘하던데..’, ‘1등한 친구가 친정(親庭) 이야기만 하고 시댁은 언급도 안하니 좀 그렇더라..’ 등등..

 

마스터 장윤정이 곡할 정도의 심사평을 해대는데, 문득 마지막 결승전날 예능이란 어쩔 수 없구나 하며 새벽녘 TV를 껐던 기억이 되살아나, 휴대폰 메모창에 열심히 떠오르는 단어들을 나열했다.

 

미스트롯2에 대한 열풍은 가히 태풍급이었다. 하지만 그 끝은 왠지 씁쓸함을 던져 주었던 거 같다. 필자가 염두에 두며 흥미를 갖고 접한 트롯 열풍은, 여타의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오픈 오디션’ 장르여서 더욱 그랬다.

 

정치권도 탐내는 오디션 예능물

 

그래서 한물간 정치권이 신인들을 발굴한 즈음인 공천 시절이 다가오면, 의례 나오는 이야기들이 트롯방식의 열린 오디션을 통해 인재를 뽑겠다는 실험(?)들이 철마다 나타나곤 하는 현상들이었다.

올해의 인기가수를 뽑는 게 아니라 오디션 프로그램은 온갖 혈연·학연·지연, 거기에 금권까지 보탠 우리사회의 특수성(?)에서 벗어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실력들이 우선적으로 선택받을 수 있는 경연장이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날 수 있는 통칭 보통사람들의 희망통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연유로 몰아치는 열풍이 아릅답게 까지 보였던 미스트롯2는, 몇가지 아쉬운 문제로 인해 크게 빛을 바랬다는 소리들도 들린다. 

 

- 우선 학교폭력(學暴) 문제다.

미스트롯2의 유력 우승후보였던 가수 진달래의 학폭 의혹이 터졌을 때, 왠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주변의 청년들에게, 이 사태가 단순한 게 아니라 광우병 사태와 같이 예전의 미투현상처럼 번져갈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들을 던져보았었다.

 

 

청년들의 대답들은 의외였다. "설마 그렇게 번져갈까요, 욕 먹을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학폭 문제는 일방적이지 않아요..”, “소위 일진들의 문제인데 옛날의 학폭과 근래의 학폭들은 좀 달라요,” “사회적 복수라는 차원으로 이해해야겠죠, 근데 예능일인데 왜 신경쓰세요?”

 

청년들의 고민거리와는 거리가 멀게 여겨졌던 학폭 문제는 체육계로 옮겨 붙어 점차 광풍이 되어갔고, 아직도 끝은 어딘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대중인기영합주의 라는 괴물

 

- 두번째는 소위 국민참여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포퓰리즘이다.

예능에 무슨 심사가 필요하냐 라는 질문도 가능하겠지만,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전문적인 영역의 하나인 심사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최소한의 기준들은 있기 마련이다.

마스터로 참여한 박선주·조영수·장윤정 등의 심사평은 단순한 노래의 감상을 떠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귀감이 될 수 있는 귀한 내용들이었다. 예전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사라지고 없는 어르신들의 소중한 훈계로 들려줌으로써 시청자는 물론이고 참석자들 역시 그 시간이 마냥 아깝지만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예능의 특수성을 최대한 살리는 차원과 시청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발상에서 비롯된 대국민 응원 투표, 실시간 문자투표 등은 이러한 전문영역을 모조리 덮어버리는 무서운 괴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바람직한 일일까..

실력(實力)이 객관성을 상실한 인기라는 것에 주눅 들고,

능력(能力)이 여론이라는 상상의 존재앞에 무릎꿇는 현실이 과연 정의로운 것일까..

 

 

문득 학폭에 관한 질문에 답했던 어느 청년의 대답이 떠올랐다.

“예능을 두고 무슨 그런 고민을 하세요. 예능은 예능일 뿐,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예능에 드리운 포퓰리즘 탓에 특정지역 향우회는 수십만건의 문자투표를 독려했다고 하고, 거리에 응원 현수막이 나붓기도 했다고 한다. 평소 잘 연락도 안하던 일가친척, 동문들에게 소식을 전하게 되는 본의 아닌 소통들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필자의 기우(杞憂)는, 마스터라는 어르신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사회, 대중인기와 영합만 판치는 그런 아수라 같은 사회가 지금 여기의 우리가 아닐지 하는 것이다.

 

수개월간 진행된 신명나는 열풍이 오히려 독감을 불러온 찬바람으로 변해버린 게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밤이다.

 

 

도 희 윤  <대표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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