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민주운동 유혈진압 거부한 쉬친선 장군 별세

 

중공군 38군단장 군단장 쉬친선(徐勤先)이 8일 별세했다.

 

1989년 쉬친선은 학조진압 계엄령 집행을 거부해 당적에서 제적당해 군사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고 생전에 스자좡시에서 장기간 연금됐었다.

 

많은 중국 국내외 민주 인사들도 한결같이 침통한 애도를 표시하고 있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쉬친선(徐勤先) 전 인민해방군 38군 군단장이 8일 오전 허베이(河北)스자좡(石家莊)에서 86세로 별세했다.

 

1989년 5월 17일, 서근선은 상부의 명령을 받고, 그에게 정예 부대 38그룹군을 이끌고 입경하여 계엄령을 집행하도록 했다.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하는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장소를 청소하다.서씨는 "목숨을 빼앗을지언정 역사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며 진압 임무를 거부했다.

 

안질이 심해 거동이 불편했던 쉬씨는 최근 스자좡(石家莊)의 병원에 장기 누웠으며, 당국이 전담 인원을 파견해 탐방객을 통제하고 사진촬영이나 녹화를 금지했다고 홍콩방송은 전했다.

 

쉬친선(徐勤先) 1935년 산둥(山東)성 예현(掖縣)에서 태어난 1950년 한국전(韓戰)에 참전했다가 38군에서 전차사단 통신원, 1987년 38군 군장으로 근무했다.

 

1989년 5월 하순경,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학생 민주화 운동은 절정에 이르렀다.

 

덩샤오핑을 수반으로 하는 중공 원로들이, 수뇌부들을 끼고 베이징에 '계엄령'을 실시하며 시위대를 향해 발포 진압을 명령한다.

 

베이징(北京) 군구 소속의 쉬친선(徐勤先) 당시 38군장은 간판군의 책임자로, 양심 차원에서 중공의 계엄령에 복종하지 않고, 병력을 이끌고 상경하여 학생운동 탄압을 거부하다 결국 면직,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장 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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