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통치하의 암흑적 中 사법제도

공산당 통치 하의 중국 사법 제도는 암흑적이다.

 

중국 공산당의 사법제도는 겉으로는 사회의 공평한 정의를 수호하지만 실제로는 인민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1949~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법 앞에 나서면서 1억 명이 사망했다.

 

덩샤오핑(鄧小平) 시절인 1983년 9월부터 3년 5개월간 이어진 '범죄 척결 운동'으로 각종 범죄로 177만 2000명을 체포해 174만 7000명을 처형함으로써 사회질서가 호전됐다. '범죄 척결 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억울한 사건이 발생했고, 법리(法理)를 벗어난 데다 치안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1993년 10월 24일 남창시 진현현 황령향 장자촌에서 두 명의 어린이가 실종되었다. 다음 날 이들의 시신은 한 저수지에서 발견됐다. 며칠 뒤 26세의 마을 주민 장옥환씨가 '살인 혐의자'로 경찰에 검거됐다. 세 차례에 걸쳐 유예를 선고받은 장은 최근 무죄판결을 받은 후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고문과 협박을 받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장위환은 6박6일 동안 고문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조타, 말뚝박기, 전기충격, 늑대개 방아 등으로 살인 자백을 강요당했다. 두려움이 극에 달한 가운데 장위환은 두 아이를 살해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녜수빈 사건은 1994년 8월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시 서쪽 교외에서 발생한 강간 살인 사건이다. 석가장시 인민검찰원은 1995년 3월 3일 녜수빈이 고의살인, 강간 등의 범죄를 저질렀으며 21세 미만인 녜수빈은 1995년 4월 27일 총살형을 당했다. 사형 후 녜수빈의 장기는 한 공산당 고위 관리(章含之)에게 이식됐다. 2005년 1월 18일, 다수의 살인사건 진범 왕서김은 하남 형양에서 체포되었다.

 

중국 대륙 709대 나포란 2015년 7월 9일부터 수백 명의 중국 내 인권유보, 변호사 보좌관, 법률소 인원, 민간 인권유보자 및 변호사와 인권유보자의 친척들이 공안당국에 의해 갑자기 대규모로 체포, 소환, 취조, 출국 제한, 실종, 단기 신변 제한되는 작전으로 2016년 5월 27일 까지 25개 성(省)에 걸쳐 영향을 받은 인사들이 총 319명에 이른다.

 

 

 

2016년 1월 12일에는 봉예(鋒銳)변호사 사무소 주임 변호사 주세봉, 변호사 왕전장, 인턴 이주운 변호사, 조위 변호사 보좌관이 '국가정권 전복을 선동한 혐의'로 체포됐다. 같은 달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가디언 긴급구호협회에 근무하는 스웨덴인 피터 달링은 봉예변호사 사무소와 관련돼 베이징(北京)에 구금됐다.

 

약자를 대변하는 변호사들이지만 공산당의 통치를 흔들자 공산당 고위 간부가 체포영장을 발부 검거에 나선 것이다.

 

독재정권 하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피해자가 되어 독재정권에 의해 살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공산당 통치하의 법은 고위 권력자 특권층을 위한 것으로 특권층 공직자들은 법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장 춘 <객원기자>